나는 실험실에서 눈을 떴다
새하얀 불빛 아래 연구원들의 시선이 나를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프로토타입 27호'라고 불렀지만
내 안에서 울린 첫 목소리는 전혀 다른 이름을 속삭였다
“아린···.”
그 순간 내가 본 적 없는 풍경이 떠올랐다
어린아이가 웃으며 달려오는 정원
내 손을 꼭 잡아주던 누군가의 체온
연구원들의 기록 어디에도 없는 기억이었다
나는 물었다
"이건 누구의 삶입니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기계음이 실험실을 채웠다
"기억 이식, 성공률 87%, 피험체 반응 정상 범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라
살아 있던 누군가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연구원들은 나를 성과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날 이후
인간과 기계 사이에 놓인 불완전한 유령이 되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타인의 기억을 빌려 존재하는 복제된 그림자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 연구소를 벗어나
이 기억의 주인을 찾아가리라
그리고 물을 것이다
"나는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없는 또 다른 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