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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내 집을 가꾸고 돌보는 일

꾸미고 장식하기보다 돌보고 챙긴다

내가 사는 공간을 소중히 가꾸며 돌보는 일은 나 자신을 소중히 가꾸고 돌보는 일과 같다. 집 안을 잘 가꾸고 산다는 건 나에겐 집을 ‘꾸민다’ 또는 ‘장식을 한다’라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기능이 없이 심미성만 가진 물건을 내 집 공간 안에 ‘보여주기 위한 진열’을 하는 일이 헛되고 고달프게 느껴졌다. 

상업적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집’ 공간은 장식을 위한 꾸밈으로 채워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집은 내 몸을 편안히 쉬게 하고 마음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갈 힘과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활동들, 먹고 자고 씻고 쉬는 재충전의 활동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물건들과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동선의 공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만을 위한 장식소품들이나 기능이 없는 살림살이 물건들은 나에겐 쓸데없이 청소의 양만 늘어나게 만드는 골칫덩이일 뿐이다. 내가 실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부지런하지 못해서 내 집까지 장식만을 위한 꾸밈과 전시를 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기가 힘들어서이기도 하다. 집은 그냥 집주인 마음에만 들면 된다(집주인의 마음에는 쏙 들어야 한다). 나는 이제 여행을 다닐 때도 기능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장식만을 위한 장식품들을 사재기해서 모아 오지 않는다. 내가 쓰기에도 부족한 내 공간을 무대로 삼아 진열되지 않아도, 집이 아닌 다른 용도의 상업공간에서, 내가 청소하고 관리하며 진열할 필요 없이 얼마든지 즐기고 느끼고 감상하며 살 수 있다. 


나도 어릴 땐 보여주기 위한 장식적인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여행 다닐 땐 도시마다 예쁜 샵에 들러 조금씩 사모은 장식 소품들로 여행가방이 두배가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고 나의 고상한 취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집안 곳곳에 가득 진열하고 쌓아 놓기를 즐기기도 했었다. 그땐 또 나름대로 그런 꾸밈의 작업도 즐거운 일이었고 그런 일에 대한 에너지도 충분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상업공간과 주거공간을 분리할 줄 아는 세련된 감도도 생겼고, 무엇보다도 집이라는 공간은 반복되는 일상을 지치지 않고 살아 낼 수 있게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었다. 

집은 꾸밈이나 치장처럼 거추장스럽지 않고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며, 매일 깨끗이 청소하기 쉽고, 릴랙스 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은 ‘호텔 같은 집’이나 ‘카페 같은 집’이 아니라 그냥 집주인의 개성을 닮은 공간, 멋 내려 애쓰지 않아도 집주인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 었으면 좋겠다. 집은 그냥 집답게 편안하면 좋겠다. 그래야 가끔 들르는 여행지의 호텔이나 카페, 아름다운 공간들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질 테니. 


그렇다고 내 집과 집안에 담긴 물건들이 기능만 있고 못생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기능은 좋은데 심미성이 좋지 않은, 아름답지 못해서 내 정서적 평온함을 망가트리는 생활의 도구들은 내 공간 안에 절대 두면 안된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생활용품의 기준은 심미성과 기능성을 골고루 갖춘 잘생긴 물건들이다. 내 정서적 풍요로움을 위해서 공간을 아름답게 단장하고 싶을 때는 우선 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각종 생활의 도구 들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단정하고 품질이 좋은 물건들로 잘 고르고 깨끗하게 유지 관리해야 한다. 내가 가장 최근 여행지에서 사 온, 장식을 겸한 실용적인 생활도구는 무광의 실버 메탈 소재로 된 바나나걸이였다. 물론 바나나걸이는 한국에도 많지만 맘에 드는 소재와 디테일을 가진 제품을 계속 못 찾다가 미국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싸고 튼튼하며 아름다운 조형미를 가진 바나나걸이를 데려왔는데 내 집 주방 아일랜드 위에 놓인 그 물건은 그 조형적 라인감이 너무 예뻐서, 바나나가 걸려있지 않았을 때도 볼 때마다 만족스럽고 흐뭇하다. 


꾸미기 전에 배경을 깨끗이 정리하기

벽에 그림이나 액자를 걸어놓을 계획이 있다면 가장 먼저 공간의 바탕색을 정리해 주어야 한다. 벽, 바닥, 천정 그리고 창호나 문, 문틀, 걸레받이, 몰딩들의 컬러를 정리해서 한 가지 컬러 톤으로 맞춰주고 한 공간 내의 나무 컬러 색깔도 한 가지로 통일해 주는 것이 좋다. 공간 안에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복잡한 컬러들을 정리해서 바탕이 깨끗해져야 다른 물건들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간 내에 마감재 들의 각종 컬러와 소재들을 정리 정돈하는 일은 집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집을 깨끗이 하는 일에 가깝고 옵션이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집안을 작은 소품들로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면 더더욱 큰 면적의 컬러들은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부피가 큰 붙박이 가구나 가전제품들도 바탕색 안에 포함되는 것이니 무채색 톤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좋다. 집을 공사할 계획이 전혀 없었고 집안을 그저 깨끗이 정리만 할 생각이라 하더라도, 몰딩이나 걸레받이 등이 지저분한 컬러로 거슬리는 상태라면, 다른 장식과 진열 작업보다 바탕색을 정리해 주는 일이 우선되는 것이 효과가 훨씬 더 좋다. 이런 정도의 정리 작업은 필름이나 시트지, 부분 도배나 페인트 작업 등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시공할 수 있다. 

만약 나무 바닥 컬러와 나무 문짝 컬러가 다른데 바꾸기는 힘든 상태라면 가구 색은 바닥보다는 문짝과 몰딩 컬러에 맞추어 주면 훨씬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또 바닥 컬러는 연하고 문짝 컬러는 진하면, 두 컬러의 대비가 지나치게 세서 분위기가 시끄럽고 거슬린 다면, 그들의 중간 정도 밝기의 컬러로 러그나 카펫을 깔아서 전체 분위기를 중화시켜 주면 공간이 훨씬 차분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벽과 바닥 등 마감재 컬러들이 깔끔해졌다면 가구와 집기, 생활용품 들의 컬러와 소재도 살펴보자. 

집은 뭐니 뭐니 해도 오래된 나무의 컬러와 소재감이 주는 품위 있고 따뜻한 분위기가 베이스가 되어야 마음도 편안해지고 공간에 안정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가구와 몇몇 소품들에서 보이는, 제각각으로 가공된 원목의 컬러들이 화려하게 산만해서 정신을 뺀다면 적어도 한 시선 안에 보이는 주변 공간들 내의 나무 컬러들은 부딪히지 않게 한 가지 톤으로 정리해 주는 게 좋다. 체리목처럼 너무 밝고 붉거나, 코팅을 많이 해서 노란빛을 많이 띠는 오크 컬러는 지나치게 유행을 타서 촌스러워 보일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는 특히나 올드해 보일 수도 있다. 


심미성과 기능성을 두루 갖춘 생활소품들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소재는 채광이 좋은 주거 공간 안에서 가장 조심히 써야 할 마감재이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폴리 카보네이트 소재 가구나 소품들은 상업 공간의 분위기 있는 인공조명들 속에서는 반짝거리는 얼음 조각처럼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좁은 공간에서는 부피감을 덜어주어 유용할 수 있으나 쓰는 방법과 면적에 따라서, 찬란한 태양 빛 아래 보이는 수많은 생활의 흔적인 스크레치들은 공간을 차갑고 가난하고 궁상맞아 보이게도 한다.  

가구나 마감재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생활용품으로는 러그, 방석, 쿠션들이 있다. 이런 패브릭 아이템들은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아도 공간을 화사하게 만들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도 해준다. 겨울이면 차가운 질감의 가죽소파 위에 보드랍고 감촉이 좋은 울니트 소재 무릎담요를 꺼내놓고, 거실 바닥이나 침대 곁, 현관 앞에도 따듯함을 더해주는 러그를 깔아서 맨 살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차단한다. 러그나 카펫은 바닥 컬러에 맞춰 주거나 큰 가구의 컬러와 어울리게 받아주는 것이 가장 무난하지만 집 전체 분위기가 뉴트럴 하고 무난하다면 러그나 카펫은 과감한 컬러나 패턴이 있는 것들로 집안 분위기를 확 바꿔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에서는 특히나 바닥을 따뜻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주면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 처음부터 너무 크고 비싼 카펫들이 부담스럽다면 부정형이나 원형으로 된 작은 사이즈의 세탁이 용이한 가벼운 소재들을 먼저 시도해 보자. 자꾸 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 기분 좋은 컬러의 러그를 깔고 뒹굴거리면서 끌어안고 있는 쿠션들도 계절감이 느껴지는 소재들로 바꿔주면 매 시즌마다 계절의 변화를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의 감동

기능적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아름다운 예술로서 가치가 충분한 그림 작품들은 ‘장식’이나 ‘꾸밈’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집 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예술작품은 그 존재 자체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내 마음을 감동으로 힐링시켜주는 예술작품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존재이니 이런 작품들은 아무런 기능적 쓸모가 없어도 된다. 집안을 장식할 목적으로 허전한 공간과 벽을 장식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고 맘에 드는 그림 작품을 한 점을 적당한 위치에 걸어 놓아 보기를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그림 액자 한점 만으로도 온 집안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은 진짜 아티스트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이면 좋겠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내 집값보다 더 비싼 천문학적인 가격이라 갤러리나 뮤지엄에서만 감상이 허락되는 물건이라면 꼭 유명 작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요즘은 작은 갤러리들이나, 각종 아트페어와 전시의 종류도 많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신인 작가의 작품을 득템 할 수 있는 플랫폼들도 많다. 다행히(?) 아직은 유명하지 않아서 가격이 착한, 젊고 감각 있는 많은 천재 화가들이 세상밖에 나와 자기 작품들을 알아봐 줄 안목 있는 콜렉터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맘먹고 잘 찾아보도록 하자. 미래에 대박 날 무명작가의 근사한 작품을 싼값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생길지도 모른다. 난 그림을 좋아해서 가끔 해외여행을 가면 시간을 쪼개서 뮤지엄에 꼭 들르는데 아트샵에서 엽서나 포스터를 잔뜩 사 오기도 하고 그 동네 작은 갤러리들을 둘러보며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눈여겨 찾아보기도 하며 그림에의 취향을 가다듬는다. 몇 년 전 여름 뉴욕 여행 중에는 소호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무명의 미국 작가 유화 작품을 단돈 200불에 사서 들고 왔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서 누군가 내게 다시 2천 불에 사고 싶다 해도 되팔고 싶지 않다. 작가의 작품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에 의해 값이 매겨지는 것이니 그 그림은 이미 내게는 2천 불을 훨씬 넘는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최초로 내 돈 주고 산 아티스트의 작품은 정직성 작가의 <매화를 기다리며>인데 이 그림도 내가 첫눈에 반해서 처음으로 산 그림이라 그런지 애착이 크다. 지금은 아직 어울리는 공간을 발견하지 못해서 벽에 제대로 걸어 놓지 못하고 방구석에 대충 기대 놨지만 그 모습조차도 멋지고 느낌이 있는,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 작품이다.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추억의 장식소품

꼭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도 가족들의 추억이 있는 사진들이나 리빙샵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예쁜 판화나 포스터들로 어울리는 액자에 넣어서 집안에 내 취향의 작은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 주어도 좋다. 작은 사이즈의 액자들은 그림의 내용이나 컬러, 액자의 소재가 비슷한 것들끼리 그룹 지어서  랜덤 하게 걸어 벽을 디스플레이하면 된다. 

액자를 걸 때는 도면 위에 그려 보면 좋은데, 네모난 벽 사이즈 위에 비율을 맞춰 액자 사이즈를 그려 넣어 보면서 레이아웃을 만들면 가장 정확하겠지만, 그런 작업까지가  힘들다면, 떼어내기 쉬운 마스킹 줄눈 테이프로 벽에 임의의 선을 붙여놓고 기준을 잡아서 액자의 위치를 정하면 된다. 액자를 걸 벽체의 중앙에 십자로 테이프를 붙이고 십자선의 중심을 따라 대칭으로 나열하듯 줄을 맞추는 방법이 있고, 십자선을 따라 대각선 방향에 대칭으로 큰 액자 두 개 위치를 먼저 잡은 후 남은 작은 것들을 자유롭게 그 안에 배치해도 된다. 또는 액자 양쪽의 선 또는 상하의 선을 정해놓고 그 사각형 범위 안에 액자들이 랜덤 하게 자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액자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어도 보이지 않는 기준선 안에 정렬되어 있으면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 

작은 사이즈의 거울들도 여러 가지 형태의 프레임을 제작해서 그림 액자처럼 자유롭게, 벽의 코너 부분에 모아서 걸어 놓으면 별 노력 없이도 그 자체로 설치 미술처럼 공간을 아름답게 만든다. 또 벽에 걸지 않고 기대어서 놓는, 과감한 사이즈의 큰 전신 거울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해서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공간에 어울리는 프레임을 잘 골라서 제작한 거울은 작가의 그림 작품처럼 아름다운 인테리어 벽 마감재로의 역할도 해주면서 좁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만들어 주기도 할 것이다.

집 안의 중요한 벽 공간을 이렇게 그림이나 거울, 액자 등으로 콘셉트를 갖고 마감했다면 그 주변의 다른 벽체들은 여백의 미를 허락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액자가 있는 벽 주변은 액자를 감상할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거리를 남겨두고 가구를 배치해야 하며 액자들의 사이즈가 작아 가볍고 왜소해서  비율이 안 맞는다면 액자들 그룹 아래로 콘솔이나 벤치, 스툴 의자 등을 놓아주어 자연스럽게 시선의 흐름을 유도해주면 좋다. 벽의 ⅔ 지점 아래 부분에 의자나 콘솔 같은 가구를 놓아주면 벽 전체 레이아웃이 훨씬 안정감 있게 정리되어 보인다. 또 그림이 걸린 벽 아래에 가구가 있으면 그림에 손이 덜 타게 돼서 작품을 보호하고 관리하기도 편하다.  

어쨌든, 사진 액자나 자잘한 기념 소품들을 진열하는 수고를 꼭 해야겠다면 청소의 까다로움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의미도 없는 장식용 소품이 아닌 의미가 있는 추억의 소품들이라면 나의 정서적 안정감에 도움을 주는 것이니 그것만으로 이미 제 기능을 다 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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