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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내 공간을 위한 지속가능 수납법 찾기

우리가 수납과 정리 정돈이 힘든 이유

해마다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작년엔 무슨 옷을 어떻게 입었었는지 도대체 기억이 안 나고, 매 시즌마다 유행을 따라잡겠다고 지출한 카드값에 허리가 휠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모은 옷들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렸는지 입을만한 옷이 눈에 띄질 않으니 오랜만에 신경 써서 좀 차려입고 나가려 하면 마땅한 게 하나도 없다. 신기한 건, 쓸만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또 여기저기 수납장 안에는 짐들이 가득 차있어서 더 이상 뭘 더 사서 넣을 공간도 없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분명히 잘 정리해서 넣어 둔 것 같은데 집 안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정작 필요한 순간엔 아무리 애타게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넓지도 않은 집 안에서 물건 하나 찾으려면 반나절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 옷이나 물건은 아무리 사 들여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공간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수많은 물건 들로 가득 차 더 이상 수납할 공간도 없고 정작 내 집, 내 공간은 항상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한국처럼 좁은 면적의 나라에서 서울같이 높은 인구밀도의 복잡한 도시생활을 하면서, 사계절을 다 치르며 살아내려면 수납하고 관리하며 살아야 할 물건들이 보통 많은 게 아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어나는 옷가지와 신발, 가방 등 패션 아이템들의 수납장 자리도 교체해 주어야 하고 선풍기나 전기장판, 온열기, 제습기 등의 계절가전들도 깨끗이 닦아서 넣었다 다시 꺼냈다를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가 많이 혼재된 라이프스타일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긴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관습들이 함께 존재하니 사용하는 도구들도 많고 다양한 살림살이들이 가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침대생활을 하면서도 여분의 손님용 요와 이불 들을 붙박이장에 수납해 놓아야 하고, 다이닝룸 식탁은 근사하게 만들어 놓고도 가족들은 자주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밥을 먹게 되니 좌식용 밥상 테이블도 필요하다. 음식문화도 다양해서 그릇들도 양식기, 한식기 두 가지 다 갖추고 살아야 하고, 찜기, 튀김냄비 같은 한식용 조리 기구와 미니오븐, 토스터기 등의 양식용 조리기구들도 하나같이 필요치 않은 것이 없다. 일 년에 한 번씩 김장철이면 김장도 해 먹어야 하니 커다란 대야도 필요하고 일 년에 겨우 한 두 번 쓰는 제사상이나 각종 제기들까지 갖추고 살아야 하는 집들도 많다. 가족 구성원의 크기는 핵가족 형태로 줄어들었지만 집집마다 필요한 생활용품의 가짓수는 그리 많이 줄어들지 않으니(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저 멀리 바다 건너편의 다른 문화와 생활 방식을 가진 미니멀리스트들이 말하는 시크하고 멋스러운 집 정리와 수납법 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그저 딱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버리기의 죄책감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주거공간에서 불편하거나 취약한 부분에 대한 고민으로도 수납에 관련한 내용이 가장 많다. 그만큼 수납과 정리정돈은 누구에게나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일이며 주거생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서점에도 수납이나 정리 정돈에 대한 각종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모르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을까 해서 자꾸만 뒤적거리게 되는 많은 수납 관련 정보와 비법들을 찾다 보면 공통적으로 말하는 수납을 위한 진리는 역시 ‘버리기’이다. 물건이 쓰임과 기능을 다했거나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된 물건들을 잘 정리해서 처분하거나 보내주는 정리 작업은 수납과 정돈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일이며 내 공간을 만드는 일, 인테리어의 출발점이다. 

물론 ‘버리기’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한때는 내 소유였던 그 물건들을 하루아침에 의리도 없이 정 떼고 휙 갖다 버리기는, 필요 없는 물건을 잔뜩 무겁게 소유하고 앉아서 겪게 되는 길티 guilty 한 느낌보다 더 많은 에너지의 죄책감을 쓰게 된다. 게다가 이제는 싫증나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버리는 일은 애초에 필요도 없을, 안 사도 될 물건을 생각 없이 사들였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그 또한 어마어마한 죄책감으로 물건을 볼 때마다 마음을 더 무겁게 짓 누르며 쓸데없는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특히 그 물건이 부피가 큰 가구나 가전제품(고장 나지도 않고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이라면 버리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죄책감의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한다.       

물건에의 애착이 많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에게 버리는 일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며 혼자서 결정하기 힘든 일이어서 아예 눈 딱 감고 모른 척 남에게 맡겨 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건을 정리하는 일, ‘버리는 일’만은 꼭 스스로 해야 한다. 물건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을 수는 없기에 내 물건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잘 추려 내고 잘 보내주는 일은 결국은 나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물건들을 살 때도 분명히 그때 그 순간에는 이유가 있었듯이 지금 잘 보내주고 버리는 일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한때 애착을 가졌던 물건들과 잘 이별하고 보내주는 일이 앞으로 다시 들일 물건들을 잘 고르고 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더 좋은 취향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연습하는 일일 테니 힘들다고 피하지만 말고 반드시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


수납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또 수납에 대해 가장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수납의 궁극적 목표가 물건을 수납장 안에 잘 정돈해서 ‘숨겨 넣어둠’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버리기’ 단계에서 힘들고 어려운 감정을 피하고 싶다고 정리가 잘 안된 채, 버리지 않고 남은 모든 물건 들로 차곡차곡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수납장을 채우기만 하면 그 후의 수납과 정돈 작업은 무용지물이 되며 금방 무너져 내릴 모래성처럼 불안한 상태가 돼버린다. 수납의 목적은 수납장 안을 예쁘게 채워 넣어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 집과 공간에 얽매여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내 소유물 들의 정확한 사이즈를 파악하는 일이다. 내가 감당할 규모를 파악했으면 버릴 것 들을 처분하고, 남길 물건들을 필요할 때 잘 찾아서 사용할 수 있게 제자리를 만들어서 정돈 해 놓는 일이 수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지금 당장 버리기는 너무 아깝고 그냥 놔두자니 불필요하게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박스에 고이 접어 넣어 (자투리 창고 수납공간이 있다면,) 잠깐 치워놔 두는 것도 좋은 방법 일 수 있다. 몇 년 지나 다시 열어 봤을 때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크고 몰랐던 새로운 쓰임새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땐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을 테니 도저히 버릴 용기가 안 생긴다면 ‘잠시 보관하는 박스’를 이용해 보기 바란다. 

집 안에 여유 공간의 창고도 없고 그냥 버리기는 너무 아쉽다면 요즘은 중고 물건을 취급하는 마켓 플랫폼도 많고 쉐어링 서비스나 여러 좋은 취지의 기부 단체들이 많으니 아까운 물건들을 내 집에서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게 썩혀두지 말고 좋은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게 보내주는 것이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이다.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을 차곡차곡 접어 깊숙이 숨겨 넣어 두면서 언제 가는 또다시 유행이 되돌아와서 다시 유용하게 쓰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수납박스 안에 각 잡아서 넣어 두게 되는, 기한 없는 시간 동안 ‘꽁꽁 숨기기 수납’의 카테고리로 강등 조치되는, 그 물건들은 결코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는, 누가 몰래 갖다 버려서 사라져도 결코 아쉽지 않을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에 안 보이면 더 이상 아쉽지도 않다. 연인 사이에도 몸이 멀어지면 사랑했던 마음도 사라지게 되는 것처럼 물건도 내 눈에 가까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쓸모 또한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아끼는 물건들은 항상 곁에 꺼내 놓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꽁꽁 숨겨놔서 필요한 것인지조차 잊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라면 이제는 미련 없이 보내주어도 되는 물건들이다. 지금 당장은 그 물건이 없으면 불편해서 안될 것 같지만 버리고 나서 물건이 없어진 후의 불편함은 잘 정돈된 공간에서 느끼는 여유로움에 가려져 금방 잊히게 된다. 정리와 수납이 잘되어 있으면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이 수월해지니 당연히 생활에도 여유가 생기고 주거공간에 대한 애정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물건에 자기 자리 찾아주기

수납의 기본 개념은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다.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자리를 잘 못 잡고 있으면 집안에서의 소소한 모든 활동들의 작업 동선이 꼬여서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되고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물건들끼리도 소재나 컬러 등 생김새가 비슷하고 사용할 목적이나 의도가 서로 관련되어있는 것들은 가까운 위치에 모아 놓으면 논리적인 흐름이 자연스러워져서 물건을 찾을 때도 우리 뇌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어 보기에도 좋고 유지관리가 훨씬 수월해진다. 수납은 그래서 이렇게 비슷한 목적의 물건들에게 제자리를 지정해주는 일, 카테고리를 나누는 일에서 시작한다. 물건의 큰 카테고리(장르)만 잘 나누어 놓으면 수납의 골치 아픈 문제들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다. 거실용 수납인지 현관 수납인지, 먼저 물건의 큰 영역을 나누고 그다음에 서랍장에 눕혀 놓아야 하는지 선반장에 세워 진열해 놓을 것인지 수납 가구와의 관계도 염두하면서 물건의 소재나 형태에 따른 분류를 잘해 놓으면 정해진 장소 안에서 매일 흐트러지는 물건들을 다시 정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짐이 늘어나고 생존의 흔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불시에 급습해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는 주거 공간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곳에 ‘시크릿 공간’이 있을 것이다. 생활감이 다 드러나는 살림살이 물건들을 오픈된 공간에서 잘 정리 정돈하고 유지 관리하며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어딘가 한 군데쯤은 내 맘대로 어질러도 되는 무법지대를 만들 수 있게 허락해 주어야 내 집의 다른 공간들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 평소에는 오픈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히 어질러도 금방 회복이 가능한 나만의 수납공간, 예를 들면 다락방이나 드레스룸, 창고 룸 등을 만들어 놓는 것은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공간을 더 넓고 쓸모 있게 만드는 일이다. 공통영역에 필요한 각종 창고 수납의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면 작은 방 하나를 양보해서 아예 창고처럼 사용하거나, 거실 공간을 줄여서라도 수납을 위한 작은 창고 룸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나마도 좁은 공간이 더 좁아질 수는 있겠지만, 숨어 있어야 할 온갖 수납용품들이 다 오픈되어 쌓여 있어서 어수선해 보이는 넓은 공간보다는 좁아터져도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다용도실이나 창고, 드레스룸처럼 사람보다 물건이 머무는 시간이 더 길고 중요한, 기능적인 공간들은 그 안에 있는 수납장까지 문을 달아서 굳이 모든 물건들을 다 숨기는 수납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어차피 특정 작업만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룸으로 된 공간들은 안에 있는 수납장이 적당히 오픈되어 있어도 상관없다. 정해진 공간 밖으로 물건이 흘러넘치지만  않으면 되니 저장창고 공간 안에서는 좀 느슨하게 정리하며 살 수 있게 나만의 무법지대를 허락해 주는 게 여유 있고 편안하게 살면서  수납을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방법이다. 


좋은 수납은 기능성과 심미성, 둘 다 포기하지 않는 것

수납은 매일 쓰는 것과 자주 쓰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주변수 납’과 ‘창고 수납’으로 나누고, 한눈에 다 보이게 정렬하는 장식적 개념을 함께 가진 ‘오픈 수납’과 안 보이게 넣어 두는 ‘숨기는 수납’으로도 나눌 수 있다. 

주변에 두고 매일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 오픈 수납은 이왕이면 인테리어까지 고려해서 잘생기고 예쁜 것들로 만드는 것이 좋다. 수납 바구니나 수납용 집기들도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소재같이 찬 느낌이 나서 아늑한 공간의 분위기를 방해하는 수납용품은 피하는 게 좋고 장식적인 기능까지 있는 내추럴한 라탄 소재나 우드, 페브릭 소재 등이 오픈 수납도구로 더 적당하다. 

또 오픈 수납용 소품들은 같은 공간의 범위 안에서는 유리는 유리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모아놓아야 산만하지 않고 수납도구의 면적과 덩어리 자체가 반복적으로 그룹을 만들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다. 소품들의 컬러와 크기, 높낮이 들도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서 정리하면 보기에도 예쁘고 깨끗한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컬러와 형태가 제각기 다른 물건들을 모두 보이게 꺼내놓는 오픈 수납으로 만들면 바로 꺼내 쓰기는 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주변이 다 산만하고 어수선해져서 정돈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옷장이나 신발장이나 베란다, 주방 수납장 등에 서랍과 문짝을 없애서 오픈 수납을 하게 될 경우에는 파티션으로 가볍게라도 가리는 일이 필요하다. 

또 같은 공간 안에 수납도구들, 옷걸이나 수납박스들은 한 가지 종류와 컬러로 맞추어 주는 게 좋다. 옷장 속 옷가지들도 제각각인데 옷걸이와 수납박스까지 다양한 컬러로 노출되는 일은 꼭 피해야 한다. 제발 세탁소용 철사 옷걸이는 재활용할 수 있게 세탁소에 돌려주자. 섬세한 니트 원단이 철사에 걸려 올이 풀리거나 어깨에 딱딱한 철사 모양의 볼록한 자국을 남겨주게 되는 세탁소 옷걸이는 옷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위험한 물건이며 깔끔한 옷장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흉물이다. 드라이클리닝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온 옷가지들은 재빨리 철사 옷걸이를 분리해서 분리수거함으로 보내주자. 모든 수납용품들을 다 새로 장만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수납은 인테리어의 가장 기본이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작은 수납 소품들을 무시하고 아무거나 사용했다간 비싸고 멋진 물건들도 지저분한 공간 안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테니까. 


가끔 수납 자체가 목표가 되어, 모든 물건들이 작품처럼 완벽하게 줄 맞춰 정렬되게 만드는 오픈 수납 방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옷가게 매장 진열법처럼 청바지를 돌돌 말아서 꽂아놓고 한 개씩 빼서 입으라든가 스웨터나 티셔츠는 차곡차곡 잘 접어서 길이로 세워서 보관하고 색깔별로 칼같이 딱 떨어지게 구분해서 꺼내어 입는 법, 신발을 신발 박스에 넣어서 다 쌓아 놓고 박스 겉면에 사진을 찍어 붙여 놓는 법 등의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오픈 수납법은, 주도면밀하지는 못하면서 까다롭기만 한 나 같은 사람들에겐 잘 맞지 않는다. 

내 옷들은 다 비슷비슷한 블랙 컬러들 뿐이라 돌돌 말려 있으면 구별이 불가능하기에 하나하나 다시 펼쳐봐야 하니 바지 하나 입으려면 정성껏 말고 개서 보관해둔 수납장은 금방 다시 뒤죽박죽이 될 테고, 신발도 외출할 때 그날 컨디션에 따라 이것저것 신어보고 맞춰보며 골라야 하는데 박스에 붙여놓은 사진 정보만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맘에 드는 패션의 착장을 결정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간이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 뻔하다.


수납공간은 모자라도 넘쳐서도 안된다  

200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주거 공간은 수납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아파트같이 역사가 짧아 노하우가 부족했던 주거용 건축물 들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하게 반영하여 세련되게 지어지기가 어려웠다. 건설회사는 건축법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사용 가능한 면적을 확보하고 전망을 좋게 해서 집값을 올리는데 더 많이 집중해야 했고 살림의 경험이 없는 유명한 건축가 선생님들은 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납공간을 줄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려면 스마트한 수납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 각 공간별로 한눈에 찾기 쉽게 잘 갖추어 놓은 수납공간은 좋은 전망과 넓은 거실보다 더 깊은 만족감으로 삶의 퀄리티를 높여 줄 것이다. 


수납공간은 주거 공간에서 꼭 확보되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이며 너무 부족하거나 좁아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여기저기 수납을 위한 빈 공간이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다. 

과도하게 남아도는 수납공간은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두게 만들고, 빈 공간을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한다. 집안일의 특성상, 언제든 필요할 때 빨리 찾아서 타이밍에 맞게 사용해 주어야 하는 살림살이 물건들은 눈에 잘 띄어 찾기 쉽게, 작업공간 가까이에 비치되어 있어야 꼭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데 물건들이 제자리를 벗어나 여기저기, 멀리 있는 빈 공간까지 채우기 시작하면 작업 동선은 엉망이 되고, 쓸데없는 짐도 늘어나게 되어 심플한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손도 닿지 않는 높은 천장 구석까지 필요도 없는 수납장을 가득 만들어서 물건들을 채워 놓거나, 공간이 남는다고 필요치도 않을 수납 박스들을 이중 삼중으로 쌓아 놓게 되면 이사 가느라 짐을 빼야 할 때까지는 다시는 들여다보지도 않을 죽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내 에너지를 빼앗기고 사는 것이다. 

남아도는 공간이 있다면 차라리 여백의 미를 살려서 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비워두도록 해야 한다. 수납하는 물건들 사이사이의 공간과 틈 들은 통풍이 되게 해서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고, 집 안의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흐르게 하며 시각적으로도 답답하지 않게 숨통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 준다. 각 공간마다 꼭 필요한 수납 장소를 확보했다면 남아도는 수납장 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음습하게 죽은 공간이 되는 것이니 내 살림살이 물건의 수량과 종류 등을 잘 파악해서 적당한 크기의 수납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넘쳐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물건보다 먼저 마음을 정리하자

청소와 수납, 정리정돈은 언뜻 다 비슷한 일 같지만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진행해야 할 각 단계별 다른 작업 과정이다. 정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 없이 비워져 평온해진 상태이고, 다 버리고 남은 물건들의 제자리를 정해서 꺼내 쓰기 편한 상태로 준비해 놓는 단계는 수납이며, 쓰고 난 물건들을 자기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서 잘 정렬하는 작업은 정돈이다. 청소는 정리, 정돈, 수납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계속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청소와 정리정돈, 수납 작업들은 목표가 아니라,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고 과정이다. 


만약 내 주거 공간이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터라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대대적인 정리 작업이 필요해서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면, 혼자 다 해내기엔 먹고사는 일이 너무 바쁘고 수납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면,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해 줄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 이 세상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기에 우리는 더불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청소와 마찬가지로 정리정돈이나 수납은 한번 끝내고 나면 다시는 안 해도 되는, 시작과 끝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단 한 건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수납과 정리 정돈은 매일 조금씩 내 공간과 나를 가꾸고 돌보며 살기 위해 평생에 걸쳐서 몸에 익숙해진 습관처럼 해야 하는 일이니 조금이라도 스스로에게 쉽고 편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청소나 수납, 정리 정돈 작업은 한번 할 때 완벽하려 하기보다 시간이 걸려도 편안하고 지속 가능한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주변에 전문가들이나 많은 정보들을 통해서 참고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나 스스로 직접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어 나만의 방법과 노하우를 발견해야 한다. 시작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은 내 라이프스타일로 루틴 한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머지않아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물건보다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이다. 오랫동안 집착처럼 가지고 있는 미련을 버리고 과거를 추억하되 미래를 위한 보내주기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은 혼자서 해야 할 일이다. 내 공간 안에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상황들을 정리하고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 일이다. 내 공간을 깨끗이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나가다 보면 작고 초라해도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내 취향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세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내 방식대로의 정리정돈 수납법을 발견해서 편안해질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정리정돈 관련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쓴 책이나 미디어에서 하는 말들은 그냥 참고만 하자. 어차피 내 물건과 내 집, 내 삶은 내가 제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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