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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맥시멀 리스트의 변명

21세기 핫이슈 미니멀리즘

21세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지구인들에게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동양의 젠 사상의 영향으로 여러 가지 스타일의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거나 트렌드로 부각되었던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미니멀리즘이 전 세계인에게 사회 전반에 걸쳐 열광적으로 공감을 얻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술과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세상에는 많은 편리한 수단들이 생겨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더 심플하고 평화로워져야 마땅할 내 생활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가고 있으니, ‘단순하게 사는 삶’을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너무 많은 물건들을 쌓아놓고도 더 많은 소유를 부추기며 넘쳐나는 정보들과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혼돈으로 가득 찬 포화상태의 이 세상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미니멀리즘에 매혹되고 있는 것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비우기’의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 하며 마음을 비우고, 물건을 버리고, 인간관계도 정리하라고 부추기고, 각종 미디어에서는 미니멀리즘을 핫한 콘텐츠로 소비하면서 전문가들이 나와서 깔끔하게 ‘집 정리하는 법’을 소개한다.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인 프랑스인 도미니크 로로나 일본의 곤돌라 마리에, 또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까지 유명해진 미국인 죠슈아 필즈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 같은 작가들이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이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고 심플하게 살면 인생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미니멀리즘이 실천하는 심플한 삶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낭비를 줄이고 좋은 것을 골라 취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작은 ‘소소함’들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고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삶이다. 세상에, 이 얼마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인가. 

그러나 다른 영역에 비해 주거생활에 있어서의 미니멀리즘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세련되게 정착하기는 좀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인 것 같다. 미니멀리즘은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처럼 잘 사는 선진국들에서 소비지상주의나 물질만능주의에 회의를 느끼면서 시작된 생활방식이다. 동일본 지진의 영향으로 물건과 마음을 비우는 단사리를 실천하는 일본인들은 무슨 일이 생겨도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려고 미니멀한 라이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많이 소유하고 풍족하게 누려봤던 사람들이라, 그 부질없음을 알기에 내려놓을 수도 있었으리라.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하고 이제 좀 살만해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한 번도 넘쳐날 만큼 풍요롭게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아직은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의 즐거움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넘치게 소유하고 누려본 적도 없는데 버리고 비우기만 하라니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맥시멀 리스트 디자이너의 변명 

특히 디자이너들은 이 미니멀리즘이란 단어에 곧잘 주눅이 든다. 미니멀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디자인이 가진 속성과 미니멀함과는 태생부터 친하지 않았던 듯 느껴진다. 디자이너는 항상 새로운 쓰임의 신상품들이나 잘 팔릴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더 부정적인 측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소비자를 유혹해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필요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도록 설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소비사회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고 대량 생산된 물건들을 소비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또 다른 유행과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니 이런 일들을 업으로 사는 디자이너들은 이 먹이사슬의 우위에 선 강자들과 공범인 듯 보이기까지 한다. 소비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들은 ‘쓸모없고 사치스러운 물건들’이라는 비판의 시선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나는 디자이너로서 나만의 디자인 콘셉트이나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안목과 취향을 표현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이 있었고, 그 부질없는 소비에 실제로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기도 했으니 사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용당하는 가장 약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소비사회의 피의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로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변명을 더 하자면, 필요 없는 물건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구매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실 돈 많은 부자 유통 회사들이지 디자인이 아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세상에서도 디자인의 본질은 항상 ‘아름다운 미니멀리즘’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사치스럽고 부가적인 ‘낭비’의 뉘앙스를 가진다고 늘 오해를 받고 있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심지어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의 반대편쯤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함이나 미니멀함을 ‘디자인하다’와 반대 의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백하자면, 사실 난 디자이너지만 맥시멀 리스트에 가깝고 미니멀리즘이 목표도 아니다. 나는 가능하다면 좋은 것들은 최대한 많이 갖고 싶고, 공간은 항상 넓고 여유 있었으면 좋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큰 공간에서 부족함 없이 쌓아놓고 살고 싶기도 하다. 부족한 것보다는 여유분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가 불안하지 않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매일 쓰고 버려지는 공산품 물건을 살 때도 내 경제적 상황 안에서 이왕이면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고른다. 가끔은 그 아름다운 것들이 기능적인 편리함을 살짝 무시하게 될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에서 느끼는 정신적 힐링이 나에겐 최우선이기에 적당한 정도의 불편함 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아무리 싸고 가성비가 좋은 편리한 물건이라도 내 주변에서 시각적 감수성을 괴롭히고 볼 때마다 우울한 감정이 생기게 하는 물건들은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 집안에 들이거나 소유하지 않는다. 싸고 양이 많은 것보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쓰임새와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내게 있어서 내 집안의 물건들이 시각적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워야 함은 적당히 타협 가능한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보다 중요한 타협 불가한 기준이다. 극단적인 심플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물건의 디자인이나 아름다운 가치 같은 것들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미니멀한 라이프에서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개수가 많고 적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미적인 취향까지 무시당하는, 수도승처럼 엄격하고 건조한 미니멀리즘은 행복해질 수도 없고 별로 내 스타일도 아니다. 집을 수도원이나 절간처럼 삭막하고 쓸쓸하게 비워두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지 않은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가구도 하나 없는 집에서 감성을 바짝 말리며 살면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들 그 또한 나에겐 부질없는 일이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덫에 걸려 무기력증에 걸린 강박증 환자 같은 건조한 느낌의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법으로 미니멀해질 이유는 없다. 매일 패션을 바꿔 입으며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남들에겐 필요 없지만 나에겐 소중한)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나는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내가 이미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것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파악도 안 되는 너무 많은 정보와 물건들 때문에 불안하고 불행한 것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살 것인지, 내 물건들은 어떤 것들인지, 내가 잘 알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물건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필요할 때 잘 사용할 수도 있다면, 내 집 안에 물건이 좀 많아도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미니멀리즘 

나는 요즘, 나이가 들수록 의도치 않게 많아지는 물건들 때문에 취향을 즐기는 가벼운 마음으로의 소유가 아닌,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습관들에 불안해질 때가 많다. 영원할 줄 알았던 젊음이 멀어져 가니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외선이 피부에 남긴 흔적을 지우느라 선케어 제품은 핸드백 안에 필수품이고 건조해져 가는 피부를 위해 핸드크림과 립밤도 챙겨야 하며 환경오염을 신경 쓰는 개념 있는 어른이고 싶어서 무거운 텀블러도 열심히 챙겨 넣는다. 노안이 시작된 후로는 돋보기와 인공 눈물도 소지품 목록에 넣어줘야 하는데 또 이런 물건들은 한 개씩만 지니고 다녔다간 건망증에 깜빡 잊거나 잃어버리고 다니기 십상이라 집에도 차 안에도 사무실에도 가방에도 굴러다니는 립밤만 대여섯 개가 넘는다. 이렇게 하나둘씩 늘어나는 잡동사니 ‘데일리 케리 daily carry 용품들’ 때문에 가뜩이나 무거운 가죽 명품백은 들고 다닐 엄두도 못 내고 옷장 안에 처박히게 되었고 나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드러내는 멋내기용 패션 아이템들도 포기한 지 오래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다니기도 정신적 에너지가 모자랄 지경이라 더 이상 무언가 취향을 위한 물건을 늘려가기는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뇌 용량에 한계를 느껴서 나는 이제 어릴 때처럼 총명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니 많은 물건들을 행복하게 소유하며 관리하고 산다는 것이 점점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은 더더욱 내가 속한 물리적 공간을 포함해서 머릿속이나 마음속도 좀 홀가분하게, 가끔씩 휴지통 비우듯 비워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에너지도 부족하고 예전처럼 민첩하지도 않고 멀티태스킹이 쉽지 않아 지니 나에게 이제 미니멀리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이 참,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고상한 취향을 과시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은 돈도 없고 취향도 별로였는데 나이가 들어 취향이 성숙해 지니까 이제는 체력과 에너지가 부족해져서 어쩔 수 없이 단순하고 심플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다니! 


내 생활에 맞는 미니멀리즘 실천하기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어느 날 갑자기 식탐을 줄이고 음식 보기를 돌같이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듯 세상을 향한 끝없는 욕심과 미련은 무 자르듯 단칼에 베어지는 일이 아니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남들처럼 멋있는,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져 보겠다고 매일같이 새롭게 다짐하지만 오늘도 난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필요에 의해서 건 정신적 만족감이건, 소소한 쇼핑을 멈추지 못하고 집안 물건들을 늘리고 있다. 아직도 마음이 변덕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정리하고, 갖다 버리고, 또 후회하고, 다시 사모으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아직도 예쁜 물건들을 만나면 소유하고픈 욕망에 정신을 못 차리고 들었다 놨다 하게 되지만, 나는 아직 이렇게 내공도 없고 깊이가 얄팍하긴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힘들게 하는 포화상태의 세상으로부터 정신적으로 훨씬 자유로워질 거라 믿으며, 미니멀리스트들이 말하는 규칙대로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내 스타일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검소함과는 좀 다른 개념으로, 물건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기준의 것들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에만 집중하려는 태도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무조건 버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어 살기를 노력할 것이다. 내가 마음이 가고 좋아지는 것들은 어떤 것들 인지 생각해 보고, 그 외의 것들은 미련 없이 버리고 비워내는, 마음을 먼저 정리하는 연습을 나의 의식주 생활 모두에 적용하는 것이다. 아직은 모범적인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난 아마 죽어도 모범적인 미니멀리스트는 될 수 없을 거다), 굳이 멋있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애초부터 우리가 원하는 미니멀리즘의 목적은 행복하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 아니겠는가. 

‘낭비를 줄이고, 좋은 것을 고르고, 여유를 갖고, 느리게  사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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