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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우아한 독서가를 위한 사치, 서가 인테리어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주는 장식으로의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 읽기’보다 ‘책 사서 모으기’를 더 좋아한다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을 만지작거리고 커버 디자인이 맘에 드는 책을 꺼내서 휘리릭 넘겨서 펼쳐지는 페이지를 읽어도 보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책 쇼핑을 한바탕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책 무게 때문에 무겁기는 해도 마음만은 아직 읽지도 않은 그 책들이 머릿속으로 쏙 들어가서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기라도 한 듯 무척이나 든든하고 뿌듯해진다. 약속 장소를 일부러 서점 가까이 잡아서 기다리는 동안 잠깐이라도 들러서 신간 서적을 체크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는 그렇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서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주 들락거리며 책 욕심을 부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쌓아 놓은 책들 때문에 수납장과 책꽂이에 여유공간이 별로 없다. 가끔씩 다 읽은 책들은 박스에 장르별로 정리해서 창고에 쌓아 놓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강제로 읽어보기를 권유하며 맡겨놓고 오기도 하지만 절대로 쉽게 막 버리거나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내 집,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되면 제일 먼저 천장까지 닿는 크고 멋진 책꽂이를 만들어서 내가 아끼는 책들을 쭉 진열해 놓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장의 욕심이 있다 보니 사실 난 책을 고를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커버 디자인이 무척 중요하다. 같은 원작의 다른 출판사 책일 경우 번역자가 누구인지 보다 책 커버 디자인이 좋은 것을 망설임 없이 고르게 되는데 재미있는 건 이런 방법으로 ‘좋은 책 고르기’에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커버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출판사라면 번역가는 오죽 잘 선택했을 테고 그렇다면 내용이야 보나 마나 훌륭할 테니까. 


나는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하게 되면 직업병처럼 그 집의 분위기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또 무엇보다도 책이 있는 수납장이나 책상에 유난히 눈이 많이 간다. 서재 같은 곳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책상이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이 집주인의 성향이 어떤지 그의 현재 관심사가 무엇인지 등의 정보를 많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집의 서재가 아니라 침대 머리맡이나 화장실에 굴러다니는 책들은 집주인의 현재 심리상태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해서 책 제목으로 슬쩍 대화의 주제를 내놓으면 신기하게도 더 빨리 마음을 열고 친해지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나처럼 이것저것, 고전문학에서부터 의학이나 마케팅, 예술분야는 물론이고 시드니 셀던이나 존 그리샴 같은 통속적인 대중소설에 이르기까지 산만하고 다양한 장르의 도대체 심리 분석이 불가능한 선무당 같은 독서가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어쩌면 그것 역시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고 오지랖 넓으며 감정 기복이 심한 내 성격과 관심사를 고스란히 드러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집주인의 성향을 잘 드러내 주는 책들은 꽤나 근사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기도 한다. 네모 반듯한 직선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건축적인 형태미를 강조해 주기 때문에 감추고 가려 놓을 필요가 없이 높낮이와 각도를 맞추는 약간의 수고로움만 지켜 준다면 어떤 공간이든 아무렇게나 쌓아 놓아도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오브제가 된다. 그래서 집안의 다른 살림살이들과는 다르게 책은 무조건 오픈 수납이 가능하다.

내가 공간 디자인을 기획했던 국내 상업공간 몇 군데는 서가 콘셉트 인테리어의 거의 시초가 되어서 성공적으로 브랜딩을 하기도 했었다. 헤이리에 있는 아티누스 <artinus>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머스테이블 <farmer’s table>을 시작으로 인천공항의 아시아나 vip 라운지의 도서관 같은 서가 인테리어도 책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하여 공간 브랜딩을 했던 거의 최초의 공간이다. 몇 년 전에는 판교에 더라운지 <the lounge>라는 레스토랑의 공간 디자인 기획 일을 했는데 공간의 물리적이며 상징적인 콘셉트를 ‘서가’로 잡고 공간 전체를 프라이빗한 멤버십 클럽 라운지처럼 만들어서 노출 천장의 높은 위치까지 책꽂이를 짜올렸다. 책을 가지런히 쌓거나 세웠을 때 수직 수평의 직선이 보여주는 긴장감 있는 임팩트가 라운지의 편안한 느낌과 균형을 이루어서 묘하게 매력적인 공간이 탄생되었다. 책꽂이에는 각종 도자기와 장식 소품들의 높낮이를 책을 쌓아 올려 조절하고 콘솔 위 테이블 램프나 화병들의 받침대로도 건축자재인 벽돌처럼 책을 쌓아 올려 완성했다. 여기 쓰인 책들은 헌책방을 돌며 싼값에 사들인, (읽기 위한 책이 아닌 상업공간의 인테리어 마감재처럼 쓰일) 책으로서의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무심한 듯 차곡차곡 쌓아 디스플레이 해 놓은 ‘책’ 오브제 object는 밥을 먹는 본능적인 행위를 하는 식당 공간에서 지적 허영심까지 만족시키며 공간에 브랜드의 성격을 확실하게 주입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남자들의 로망이 된 서가 인테리어

언젠가 책을 좋아하는 동네 지인인 K선생님 댁에 놀러 갔었는데 거실부터 방, 현관을 포함한 모든 공간의 벽체를 시스템 책꽂이처럼 수납장 스타일로 만들어서, 침대나 옷장을 붙여놓을 공간을 제외하고 모든 남는 벽들과 중간 파티션, 수납장까지, 온통 책꽂이로 붙박이 가구처럼 짜 오려놓은걸 보고 그 가성비 좋은 멋스러운 아이디어에 한눈에 반했던 적이 있다. 집안의 살림살이 장식 소품들과 TV, 가전제품들까지 다 함께 벽체 책꽂이에 수납되어 책과 함께 정리돼 있어서 집 전체가 거대한 워크인 클로젯 같았다. 이렇게 책장으로 벽 마감을 하는 인테리어는 천장까지 책꽂이 수납장이 되어버리기에 남는 벽면이 없어서 벽을 위한 도배나 칠 비용이 안 들어가 경제적일 듯하나 집 안의 벽체 전체가 두꺼워지는 꼴이므로 바닥 공간이 많이 좁아지게 된다. 또 그런 경우 오픈형 책꽂이에 보이는 수납들에도 신경을 많이 써주어야 하며, 문짝이 달린 여닫이 수납장을 적절히 배치해서 감추어야 하는 물건들의 수납도 가능하게 해주어야 하기에 수납장 문짝의 여닫이 동선을 감안한다면 공간은 더 좁아지게 될 수도 있으니 일부만 적용한다면 모를까 주거용 인테리어로는 별로 추천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사실 서재 인테리어는 40-50대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하다(내 주변의 40-50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 집 인테리어 공사를 의뢰할 때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다른 곳은 별 관심 없어하면서 서재 방에 대해서는 유난히 까다롭고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이나 집안의 잡다한 활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만의 공간 속에 잠깐이라도 숨어 있고 싶을 때, ‘서재’는 이 남자 어른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개념으로의 서재는 더 이상 책을 저장하는 방이 아니다. 온종일 일하느라 힘들었던 지친 두 다리를 책상 위에 걸쳐 올리고 지친 몸을 푹신한 암체어에 눕히고는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장면은 광고에도 나오는 남자들을 위한 힐링의 상징적 코스이다. 하지만 도시의 좁은 아파트 생활에서 자기만의 동굴인 서재까지 갖추고 살기가 쉽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거실 장식장에 책을 잔뜩 꽂아 놓고 소파와 한 몸이 된 채 TV 리모컨을 소유하는 것 정도로 만족하기도 한다. 어쨌든 남자들이 숨어서 쉬고 싶어 하는 공간에 책이 있었으면 하는 건 책이 상징하는 지적인 이미지와 ‘사색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도 ‘쉼’이라는 행위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비생산적으로 쉬어도 되나 싶을 때 ‘나는 지금 쉬는 것이 아니라 더 생산적인 다음 활동을 위해 지금 여기서 책을 읽으며 사색할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야’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집이 넓어서 여유로운 공간이 많거나, 특별히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거나, 가족 중에 공부하는 학생이 있거나 하지 않더라도, ‘책상과 책꽂이’는 침대처럼 가족들 각자에게 모두 따로 한 개씩 필요한 가구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정집들은 1인 1 책상이 힘든 경우가 더 많다. 침실은 침대와 화장대와 옷장들로 꽉 차 버리고 거실도 엄청나게 큰 평면 TV가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해 버리는 데다 그나마 작은 코너 공간들도 장식장이나 수납장, 콘솔들이 꽉꽉 들어차게 되니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 아닌 이상 각자의 공간에 1인 1 책상을 위한 공간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책을 서재나 서가 밖으로 탈출시켜 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물들과는 다르게 책은 특정 주인이 필요 없는 물건이다. 취향만 같다면 가족 중 누구든 책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읽던 추리소설이 딸 방에 있어도 되고 아이들의 만화책이 화장실에서 온 가족에게 읽힐 수도 있으니 책에게만은 자기 수납공간을 지정해 주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살림을 하느라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주방의 아일랜드나 식탁 테이블을 크게 만들어서 식사 외시 간에는 책상 대신 사용할 수도 있다. 부엌과 아일랜드 테이블에 딸린 널찍한 수납장에 그릇과 책이 공존하는 모습은 어딘지 고상하면서도 섹시하다. 본능에 충실하여 살기 위해 끼니를 해결하는 처절한 느낌의 부엌보다는 책이 함께 있어서 견물생심으로 언제든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내게 되는 셈이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혼자 밥 먹을 때도 심심하지도 않고 가끔은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일 수도 있으니 부엌 가까이 책이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인간적 일 수 있다. 식탁도 기성 제품보다 조금 더 크고 길게 제작해서 들여놓으면 여기서 신문도 접지 않고 크게 펼쳐놓고 읽을 수 있고 또 책 읽을 때 커피랑 과일접시랑 과자봉지도 늘여 놓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근사한 서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단 주방은 불과 물을 쓰는 공간이라 종이로 만들어진 책 아이템을 장기 보관하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최대한 불이나 물과 거리를 둔 다이닝룸의 수납공간에 두어도 되고 유리장을 짜서 보관할 수도 있다. 요리와 건강 관련 잡지를 포함하여 고전 역사책과 에세이 등은 책상 위보다는 부엌 테이블 위에서 더 집중하기 좋을 것도 같다. 나는 물건들을 곱게 소중히 다루는 편이지만 책 만은 좀 예외다. 난 책을 읽을 때 굳이 책갈피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대충 접어 놓기도 하고 색연필로 중요한 부분은 쭉 줄을 그어 놓기도 한다. 많이 읽어 낡은 느낌이 나는 책, 손때 묻어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랜 책이 훨씬 더 느낌도 좋고 애착이 가고 특히 고전문학 소설들은 적당히 기름때가 묻어서 시간이 만들어준 클래식한 느낌을 일부러 연출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침실 또한 책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의사들은 숙면을 취하려면 TV나 책 같은 것들은 침실에 놓지 말라고 하지만 ‘책과 침대’처럼 잘 어울리는 물건들이 또 있을까. 난 눕자마자 잠이 드는 축복을 받지 못해서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잠들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 누워서 소설책을 읽는 그 시간이 나에겐 힐링을 위한 행복한 루틴 routine 이 되었다. 침대 헤드보드를 책꽂이처럼 선반장으로 제작해서 테이블 램프와 함께 놓아도 좋고 평소 잠자리에 들 때 읽는 책을 무심히 쌓아 놓아도 멋스럽다.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밑이나 스탠드 램프 근처에 차곡히 쌓여 있는 책들은 침대와 잘 어울리는 소품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숙면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온도 차이가 심한 다락방이나 지하실만 아니라면 책은 보관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어디에나 잘 어울리며 약방의 감초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버리기 아까운 소장용 책들은 계단 밑이나 층계, 복도처럼 스쳐 지나가는 여유 공간들에 적당히 쌓아 올려놓아 두면 지식이 넘쳐나는 우아한 포스를 뿜어 내 줄지도 모른다.   


허영심 많은 우아한 독서가의 꿈

영화로도 제작된 미국 티브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 시리즈를 보다 보면 마놀로 블라닉 구두에 미친 듯 열광하는 주인공 캐리의 ‘신발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몇 회째 에피소드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사랑하는 연인 미스터 빅이 캐리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겠노라고 하자 주인공 캐리는 다이아몬드 반지 보다는 크고 넓은 신발장이 필요하다고, 자기가 아끼는 구두 컬렉션을 위한 진열용 방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신발들에게 방이 필요하다니, 어이없어하던 캐리의 연인 빅처럼 이 세상에는 책꽂이나 서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고 서가 인테리어 따위에는 1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랑하는 구두들을 전시하듯 진열하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캐리처럼 나도 여기저기 공간 속에 제 모습을 숨기고 방치되어 있는 나의 소중한 책들을 한데 모아서 그들만의 방에 전시를 해주고 싶다. 사실 아직도 e-book이 아닌 종이 책을 읽고 그걸 소장까지 한다는 개념은 요즘 대세인 미니멀리즘 트렌드에 역행하는 일이며 가뜩이나 좁은 도시의 아파트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겐 시대착오적이고 한심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조선시대 선비도 아니고 인터넷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다 읽은 책을 고이 보관했다가 다시 찾아 읽게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의지일 테니까. 한 뼘의 공간도 소중한 도시 생활인으로서 다 읽은 책은 미련 없이 처분하고 분리수거도 잘해야 쿨하고 개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이 책을 만지는 느낌이 셀레이고, 책 냄새가 비싼 향수 냄새만큼 좋고, 정돈이 잘 된 책꽂이가 유명 작가의 조각 작품처럼 멋있고 근사해 보인다. 

언젠가 지구가 포화 상태가 되어 지구인 한 명당 최소의 자기 공간만 갖고 소유한 짐들을 다 버려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된다면, 난 내 소유물 중에 가장 먼저 책과 책꽂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비록 집 안 곳곳에 여기저기 모양 빠지게 널브러져 있는 내 사랑스러운 책들이 그래도 언젠가 높고 넓고 우아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 내게 될 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종이 냄새가 커피 향만큼이나 좋은 집 앞 서점에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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