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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집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주방

주방의 지위 상승에 따른 위치의 변화 

옛날의 많은 보통의 집들은 부엌이 구석에 따로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했었다. 요리를 하느라 식재료들을 굽고 찌고 튀겨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거 공간에 베어드는 음식 냄새로부터 생활공간을 최대한 먼 거리로 분리시켜 주어야 하기도 했고, 부엌은 어쩔 수 없이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며 기름때, 물때, 뒤처리를 위한 음식쓰레기들로 매우 혼잡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집안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주방 공간에 내어주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가족들끼리 얼굴 보기 좋은 시간은 그나마 식사시간뿐이니 거실보다는 주방이 더 자주 만나기 쉬운 공간이 되었고 가족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도 다 달라서 먹는 시간들도 일정치 않으니 필요한 시간에 각자의 식사를 알아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방의 중요도에 따른 위치나 크기가 예전과는 그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요즘의 주방은 다이닝룸과 거실까지 포함하여, 음식을 만들고 먹고 휴식하는 행위 모두를 ‘쉼’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한 공간으로 해석하게 되면서, 이 세 공간을 자연스레  함께 묶어서 전체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유연하게 붙여 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현대사회의 주방은 거실과 맞닿아 있고 집의 중심에서 집안의 분위기나 디자인 콘셉트를 잘 표현해 주기도 하며 기능적으로도 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해서 수납이나 동선, 디자인까지 뭐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 시대에 비해서 주부들의 여권이 신장한 만큼 주방의 지위도 많이 올라가게 되면서 그 위치도 자연스럽게 집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쾌적한 주방을 위한 스마트한 작업 동선

외출 계획이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만 지내게 되는 주말 시간은 ‘먹는 일’이 가장 큰일이 된다. 끼니를 뭘 챙겨 먹을까 고민하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해서 만들어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정리해서 다시 수납장에 정리해 넣고, 중간중간에 간식도 챙겨 먹어야 하니  이런 ‘먹고사는 일’을 하루 종일 두어 번 반복하고 나면 금방 창밖은 어둑어둑 해지고 큰 맘먹고 푹 쉬어야지 했던 주말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렇게 먹는 일을 해결하느라고 서툰 주방 일로 고군분투하다 보면 주방은 물기 마를 틈이 없는 전쟁터 같다.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식생활을 위한 활동은, 살림의 주체가 되어 온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 중의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내야 하는 주부들에겐, 즐겁지만은 않은 참 고달픈 일이 된다. 집안 전체에서 주방 근처를 많이 못 벗어나고 주방이 본의 아니게 나만의 아지트 공간이 되어 버린 주부 들은 주방의 위치가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주방 안에서의 작업동선이 편안하지 않으면 사는 일까지 참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거공간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 기획과 설계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곳이 주방이다. 설비와 배관, 통풍의 방법과 수납 방식, 각종 기계들의 사이즈까지, 심미적인 부분보다는 기술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 데다가 아무래도 집안에서 가장 활동이 많은 공간이다 보니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주방 내의 작업과 활동 동선이 다 다르고 식생활 습관이나 취향 등도 워낙 다양해서 아무리 좋은 동선의 설계 도면도 누군가에게는 부족하고 아쉽게 느껴지기 쉬워서 주방 공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완벽하게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방 공간을 설계할 때는 설계 디자이너뿐 아니라 주방시스템 전문 업체와 주방의 주 사용자가 오랜 시간의 회의를 통해서 집주인의 취향과 스타일을 잘 파악한 후에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몇 년 전에 내가 인테리어 디자인 기획을 했던 주택 집의 집주인들은 본인들이 전에 살던 아파트와는 다른 구조의 새로운 주방 공간을 만들어 보기를 원했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넓은 거실을 바라보는 형태의 오픈형 주방을 만들고 아일랜드 테이블에 조리대를 두어서 거실 창문을 통해 초록의 테라스와 집 앞의 근사한 풍경을 바라보며 요리를 할 수 있게 만든 멋진 주방이었다. 이 오픈형 메인주방에는 거실 쪽으로 음식 냄새가 많이 퍼질 것을 걱정해서 후드도 성능이 가장 좋은 최신형을 설치했다. 또 만약을 대비해서 메인주방 옆에 작은 방하나를 세컨드 주방 second kichen으로 만들어서 가끔 생선을 굽거나 냄새나는 요리를 할 때만 쓰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 좁은 세컨드 주방은 어차피 자주 쓰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작은 공간 안에 세탁기와 빨래 건조기까지 넣어 놓는 바람에 메인주방에 비해 작업 동선이 훨씬 더 좁고 복잡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이 야심 차게 만들어놓은 메인주방은 점점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들게 되고 비상용으로 만들어 놓은 세컨드 주방만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 주인 부부는 좁은 세컨드 주방을 좀 더 넓혀주기를 원하게 되었다. 재밌는 건 그 세컨드 주방은 그분들이 전에 살던 아파트의 주방 구조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옛날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주방 구조에 익숙해져 버린 그 집주인에게는, 세상 좋고 멋진 시스템 부엌이 눈앞에 있어도,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훨씬 더 편하고 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새롭게 적응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특히 주방일 같이 고도의 기능적 숙달이 필요한 일들은 더욱 그러한 듯하다.


주방을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할 때는, 사용자의 익숙한 작업 동선을 먼저 체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에 쓰던 주방의 구조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불편함이 습관화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여러 차례 확인한 후, 불필요한 동선 들을 제거하여 더 효율적인 작업 동선을 기준에 두어 고민하는 일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주방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상적인 작업동선과 배치 순서는 냉장고-> 싱크대-> 조리대-> 가스레인지 순인데 냉장고에 보관했던 식재료를 꺼내고 물에서 씻고 다듬어 준비한 후 조리대에서 조리하고 만들어서 마지막으로 불위에서 익히고 상차림 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작업 동선은 짧고 간결해야 하며 정확한 위치에 적절히 배치되어야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주방의 모든 기계 설비 시설들은 한번 세팅하고 나면  자주 옮기고 바꾸기가 힘들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주방을 원한다면 귀찮다 생각하지 말고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다. 


작업대의 배치는 각자의 편리한 동선과 공간에 맞추어 그 종류와 옵션이 다양하다. 우선 일자형 배치로, 부엌 싱크대를 일자형으로 벽에 붙여 위와 같은 순서로 배치하게 되면 앞뒤 공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좌우 방향으로 작업의 동선이 너무 길어져서 일하기가 힘들 수 있다. ㄱ자형 주방은 짧은 동선으로 작업할 수 있어 편하지만 꺾어지는 코너 공간 때문에  못 쓰는 수납과 작업 공간이 생기는 걸 감안해야 하고, ㄷ자형 주방은 조리 공간이 넓고 작업동선은 효율적이지만 앞뒤로 공간이 많이 필요하며 ㄱ자형처럼 코너 공간이 생기게 된다. 11자형이나 아일랜드 스타일의 주방은 조리공간이 넓고 개방적이며 세련된 주방 디자인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이긴 하지만 작업동선이 커져서 살림이 서툰 사람은 주방을 깔끔하게 유지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요즘은 평수가 작은 집들도 거실에 비해 주방을 크게 만드는 추세이며 부엌의 작업대와 다이닝 테이블을 겸용으로 사용하거나, 주방을 아예 거실 영역까지 끌고 들어가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휴식하는 공간의 개념을 합쳐 버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주방 아일랜드를 조리대 겸 다이닝 테이블처럼 사용하기 위해 집의 중앙, 거실 가까이로 옮기고 주방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들이 오픈되게 하는 오픈형 아일랜드식 주방은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접근성이 좋아서 생활의 동선을 편리하게 하는 장점도 있지만, 한국 음식처럼 끓이고 졸이고 튀기느라 냄새가 많이 나는 작업들은 오픈형 조리대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생각해서 결정하는 게 좋다. 유지 관리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꼭 오픈형의 개방감 있는 주방 시스템을 원한다면, 오픈형 아일랜드의 싱크나 조리대 앞쪽으로 그 보다 한단 정도 높게 카운터 벽을 만들어서 막아주면 시선은 차단하지 않으면서 음식물이 튀는 상황을 막아 줄 수 있으니 거실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도 많이 해결할 수 있다. 또 성능 좋은 레인지후드를 설치하면 거실 쪽으로 음식 냄새가 많이 퍼지는 것도 방지해 준다. 주방 전체가 오픈되는 분위기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면 유리 가벽이나 슬라이딩 도어 등을 파티션처럼 설치해서 공간의 개방성은 유지한 채 부분적으로만 공간을 적당히 분리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거실에서 바라봤을 때 싱크대 위에 있는 수세미와 오염된 설거지통까지 훤히 보이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라 주방을 노출하는 일이 전혀 자신 없다거나, 주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혼자서 차분하게 처리하고 싶다거나, 또는 거실을 포멀 formal 하고 깔끔하게 독립시켜서 우아하게 지켜내고 싶다면 거실이나 다이닝룸을 주방과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 좋다. 


스마트한  주방 수납

집안에서 체계적인 수납 시스템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공간은 주방과 현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관은 집 안과 밖의 중간 즈음에 경계를 갖는 영역이라 집안 잡동사니 창고 수납까지를 포함하는 경우에는 그 범위가 더 넓어진다) 주방은 온갖 조리도구와 식재료들, 조리를 위한 가전제품들을 포함하여 다이닝룸의 테이블웨어 도구들까지 수납되어 있어야 해서 설비 시스템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수납이 위치하지 않으면 작업 동선이 꼬여서 주방일이 피곤하고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특히 주방 안에서는 물과 불을 사용하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데다, 여러 가지가 일들이 한꺼번에 멀티로 진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안 써도 금방 엉망이 되기 쉽다. 또 조리도구나 식재료를 짧은 조리과정 중에 찾아내고 준비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재빨리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히 효율적으로 분류된 스마트한 수납 시스템이 요구되는 공간이다. 다른 공간도 마찬가지지만 주방 공간은 그래서 더더욱 살림살이를 버리고 추려내서 미니멀하게 만들어야 하며 청결한 상태를 유지 관리하기 쉬운 현실 가능한 주방 수납이 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요리를 잘하려면 생각보다 필요한 도구들이 많다. 주방에 꼭 필요한 가전제품들의 갯수도 만만치 않은데 요즘은 식기세척기나 오븐, 인덕션, 전자레인지, 음식물 분쇄기 등은 보통 빌트인으로 되어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 외에도 전기밥솥, 미니오븐, 에어프라이어, 믹서, 블랜더, 토스터기와 커피머신 등등 주방 조리대 근처에 필요한 수많은 전자제품들은 사이즈도 커서 조리대 위에 다 올려놓고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 주방 가전들을 조리대에서 멀리 떨어진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가 사용할 때마다 꺼내서 쓰고 씻고 말려서 다시 수납장 깊숙이 넣어 보관해야 한다면 귀찮아서 자연스레 사용하지 못하게 될 테니 주방에서 사용하는 이동식 전자제품들은 조리대 가까이에 오픈 수납으로 상시 대기 상태를 만들어 주어야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요리를 할 때 필요한 조리도구와 양념류, 그릇과 컵은 바로 손이 닿기 쉽게 싱크대나 조리대 근처에 있어야 하지만 그 외의 주방 기구들은 싱크대의 상하부장을 이용하거나 조리대 옆 팬트리 pantry나 스펜스 spence 등의 수납장에 체계적으로 수납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물건을 바닥에 쌓아놓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지저분해지기 쉽고 청소도 불편해져서 절대 조심해야 하는데 싱크대나 테이블 위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 잡지책에서 보고 로망이 되어버린, 아일랜드 테이블을 거실의 중앙에 만들어 놨는데 방심하는 사이 어느덧 이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물건이 쌓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무엇이든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온갖 영양제 약통들부터 키친타월, 낮에 먹다 남긴 반찬통과 그릇들, 메모지와 필기도구, 각종 영수증과 전단지, 돋보기와 거실 TV 리모컨까지, 순식간에 아일랜드 테이블이 그야말로 쓰레기섬으로 변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분위기 있는 오픈형 아일랜드 테이블은 정돈된 집안 분위기를 망가트리는 테러리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주방은 무엇보다도 청결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항상 신경 써서 정리하고 사는 일에 자신이 없다면 오픈형 조리대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이 아일랜드 테이블의 주방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주방 근처에 충분한 수납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아일랜드 테이블이 쓰레기섬으로 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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