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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킴 Nov 01. 2020

지붕이 있는 야외 공간, 베란다

자연을 내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

내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였는데 주변엔 아파트 건물보다 더 높고 오래된 커다란 나무들이 무성했었다. 아침이면 창밖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싱그러운 나무 냄새, 풀 냄새가 진동을 하는 자연친화적이고 낭만적인 동네였다. 

지금은 합법화되었지만 베란다 확장이 불법이었던 그 시절, 옛날 아파트 베란다는 집집마다 워낙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밖에서 올려다보면 베란다 모습만 봐도 누구네 집인지 딱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파트라는 획일화된 구조의 껍데기를 하고 있음에도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베란다를 통해 반영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도 가장 유용하게 베란다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베란다를 정원처럼 꾸며서 각종 식물 화분들을 볕 좋은 창 밖으로 내어 두는 모습이었다. 물론 빨래건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그 시절엔 베란다가 빨래를 말리기 위한 가장 훌륭하고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날씨가 좋은 날은 집집마다 빨랫줄에 빨래가 가득 널려 있었으니 그다지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베란다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파트 단지 내 화단이나 각 동 별로 주어진 공동 공간까지도 돗자리를 펼쳐 놓고 고추를 말리거나 자기 집 화초들을 쭉 내다 놓고 햇볕을 쪼이거나 놀이터 벤치에 이불을 내다 널기도 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많았는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다양한 생존의 모습들은 공간 사용자들의 삶의 모양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 동네’ 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집은 다르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살던 그 동네에 살고 있는데 동네 전체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번화해져서 이제는 미세먼지와 자동차 매연 때문에 새소리 대신 커다란 공기청정기에서 만들어내는 기계 소음을 종일 들으며 살아야 한다. 도시는 점점 더 시끄럽고 복잡해지고 있고 미세먼지 상태를 알려주는 앱과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이 힘들 정도로 공기는 심각하게 안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시골보다는 도시가 좋다. 나이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도시 속에서 가끔 만나는 초록의 자연은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또 그런대로 참 좋고 감사하다. 도시와 자연을 함께 누리고 살 수 있다면, 도심 속에서 가끔씩이라도 자연을 만나고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만 있다면, 도시의 좁은 아파트 생활도 그럭저럭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요즘은 도시의 많은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도 일정한 비율로 조경과 녹지면적을 확보해야 하며 조경업체들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보니, 도심 속에 만들어진 인공의 녹색 자연이나 공원들도 상당히 퀄리티가 높아졌고 아파트 단지들마다 조경들도 꽤 훌륭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도심 속에서 진짜 자연을 즐기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떤 때는 도심 속 건물들 사이에 만들어진 인공의 자연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인간 친화적이며 편안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답게 잘 정돈된 자연환경을 이왕이면 내 집 베란다까지 끌고 들어와서 집 내부의 내 생활공간과 바깥의 자연환경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 준다면 내 삶의 공간도 더 넓어지게 되지 않을까. 


베란다 사용법

베란다는 그 용도와 역할이 워낙 많고 잡다하다 보니 오히려 그 임무의 중요도가 평가절하되기가 쉬워서, 베란다 확장법이 합법화되면서부터는 거실이나 방을 조금이라도 넓혀서 집의 평수를 키워 집값을 높이는데 희생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어진 많은 아파트들이 이렇게 베란다를 없애고 아예 확장형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공사하지 않고 남아있는 베란다가 그렇게 귀하고 세련되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확장이 안되고 그대로 남겨진 베란다는 집안의 부족한 수납장을 대신해 창고처럼 쓰이거나 세탁실이나 다용도실 같은 멀티룸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고 집 안에서 해가 가장 잘 드는 공간이다 보니 날씨 좋은 오후엔 베란다에서 빨래도 말려야 하기에 베란다 정원으로의 또 다른 근사한 쓸모에 대해서는 별로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가 없는 데다가 한 평이 아쉬운 좁은 아파트에서 여기저기 쓸데가 많은 공간인 베란다를 집 안의 녹지 면적 만을 위해 선뜻 모두 양보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 집에 없었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던 꽃과 나무를 위해 많은 비용과 공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며 다른 많은 유용한 쓰임새들까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집안에 자연을 들이는 일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가성비 좋은 투자가 또 없다. 비주얼적으로도 식물은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화룡정점이 될 수 있고 심리적으로 큰 위로와 안정감을 얻게 될 것이며 건물 안의 방사능 물질을 흡수하고 유해성분을 제거해 공기정화를 시켜 주기도 하니 정말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투자가 아닐 수 없다. 


베란다는 다목적으로 나누어서 쓰이기엔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지만 아파트에서 차지하게 되는 위치상 장점이 많은 곳이다. 지붕 아래서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작은 야외 공간인 베란다는 실내와 야외를 연결해주는 통로 같은 완충제 역할을 한다. 거실을 조금 넓혀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마당이 있는 집의 테라스처럼 밖의 자연을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반 실외로서의 중간 공간으로 테라스처럼 만들어 준다면, 작지만 이 복잡한 도시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어 줄 것이고 매일의 치열하고 팍팍한 도시의 삶 속에서 여유롭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베란다 전체를 빽빽하게 정원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테니 처음부터 너무 많은 식물을 한꺼번에 들이기보다 가능한 손이 덜 가는 작은 화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베란다에서 거실로, 또 집안 여러 곳으로 들일 수 있는 식물들을 찾아보고 녹색의 식물들과 함께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베란다 외부창은 단열을 위해 베란다용 새시를 하고, 내부의 거실 창은 폴딩도어로 바꾸어 주면 거실과 베란다의 경계가 느슨해져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해지고 새시가 외부의 찬바람을 막아줄 수 있으니 완벽한 확장 공사보다는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면서도 유연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베란다의 새시 쪽에 블라인드까지 달아 준다면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하고 거실을 넓게 사용하기 수월해지니 공간의 모습을 훨씬 다양하게 변신시키며 살 수 있게 된다. 단 거실과 접해 있는 베란다 창을 카페에서나 많이 쓰는 폴딩도어로 교체하게 되면, (폴딩도어는 레일 형태로 밀어서 열어젖힐 수 있어서 활짝 열었을 때 개방감이 있고 멋스럽지만 이중 유리만큼의 단열기능이 불가능해서) 냉난방이나 결로, 곰팡이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시공은 전문적이고 확실한 업체와 해야 한다. 또 베란다 확장 공사를 안 했을 경우에는 베란다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해 조립식 데크 타일을 깔거나 도톰한 러그를 두면 좋고 거실과 베란다 바닥의 레벨을 맞추어 미장 타일 작업을 해도 괜찮다. 이렇게 베란다를 거실과 분리하여 반쯤 야외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면 노을이 지는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고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야외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근사한 방법이 생긴 게 될 것이다.   


위로와 힐링이 되는 플랜트 인테리어

베란다 확장을 포기하고 베란다 공간을 이용한 실내가드닝에 도전해 볼 마음이 생겼다면 처음부터 과감하게 키가 큰 고무나무를 한 그루 들여놔 볼 것을 추천한다. 크기가 큰 나무로 시작하면 공간이 확 달라진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져서 변화를 위한 행동의 동기부여가 확실히 자극된다. 또 열대식물인 고무나무는 외부 환경의 극심한 기온차만 아니라면 실내에서 관리하기도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다. 다른 실내용 식물들에 비해 덩치가 크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고무나무만큼  실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손이 덜 가면서 근사하게 생긴 나무도 별로 없는 데다 유해물질을 제거해 실내 공기정화에도 큰 도움을 준다. 게다가 굵고 통통한 나무줄기가 멋스럽게 공간의 모양에 제 몸을 맞추어 쑥쑥 잘 자라나 주고 반짝반짝한 넓은 이파리는 진한 청록색으로 이국적이고 강렬해서 그 존재감만으로도 집 안의 큰 조각 작품처럼 멋진 인테리어 오브제 역할을 해주니 허전하고 차가운 공간에 고무나무 한그루 면 따로 다른 장식품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기특한 고무나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데커레이션 오브제이기도 해서 주거공간이든 상업공간이든 공간 기획을 할 때, 특히 무채색의 차분한 공간에는 포인트로 생동감을 주기 위해, 자주 애용하게 된다. 


식물을 집안에 들여놓을 때 인테리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화분을 잘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잎이 진한 녹색인 고무나무의 경우는 검은색 돌화분이 잘 어울리고 선명한 초록색이 싱그러운 몬스테라 같은 식물은 매트하고 내추럴한 테라코타 화분이 잘 어울린다. 테라코타 화분은 처음엔 연한 주황색을 띠지만 흙소재가 물기를 머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얼룩과 오염으로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변해서 빈티지한 장식품이 된다. 처음부터 화분이 아닌 장식 화기 용도로 만들어진 도자기나 그릇들도 화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화기에 식물을 옮겨 심을 때는 배수 구멍이 없으므로 안에 돌멩이를 깔고 원래 화분 그대로를 그 안에 끼워 넣어 밑에서 돌멩이 틈 사이로 물이 빠질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요즘은 콘크리트와 다른 물질을 혼합해서 무게를 가볍게 만든 내추럴한 돌 느낌을 내는 화분들도 그 종류가 무척 많고 시멘트를 거칠게 게어낸 듯한 텍스쳐가 아름다운 다양한 디자인의 예쁜 화분들이 많아서 공간에 내추럴한 멋스러움을 살리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다.  


현관 콘솔 위나 거실 수납장, 텔레비전과 컴퓨터 근처나 볕이 잘 안 드는 욕실 같은 곳에도 장식으로 가볍게 두기 좋은 작고 예쁜 선인장이나 다육식물들은 식물 초보자들이 가장 부담 없이 키우기 좋다. 이런 작은 식물들은 그 모양이나 생김들이 무척 다양하고 한 개씩 두어도 예쁘지만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그랗거나 길쭉한 것, 옆으로 넓게 퍼져서 면으로 덩어리 져 보이거나 위로 솓아올라서 부슬부슬 흩어져 보이는 등, 다채로운 모양의 식물 컬렉션을 한데 모아서 넓적한 트레이에 올려놓으면 한꺼번에 물 주기도 좋고 가끔씩 햇빛과 바람도 맞기 좋은 자리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편해서 유지 관리가 수월하다. 이렇게 트레이에 올려진 채로는 베란다 공간 어디든 둘 수 있고, 벤치 위에 올려 두거나 바닥에 대충 놓아두어도 멋스럽고 예쁘다.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주변에 크고 작은 식물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놓아 주면 천정에서 떨어지는 행잉 플랜트와 함께 창밖의 시선이나 보기 싫은 풍경도 차단할 수 있는 내추럴한 자연 파티션이 되어 주며 훌륭한 베란다 정원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식물을 실내 공간에 넣어주면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생기 있게 바꿔주는데 효과가 좋지만 살아있는 생물이다 보니 손이 많이 가서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방 지저분 해지기 때문에 플랜트 인테리어는 집주인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반려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항상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하니 귀찮고 성가시기도 하지만, 식물들은 또 다행히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적응도 잘한다. 오히려 지나친 사랑과 과잉보호는 사람이나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들을 아프게 할 수도 있으니 지나친 걱정으로 미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약간의 정성과 관심, 그리고 적응하기 위한 시간과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만 있다면 내 집에 들여놓아 준 초록의 식물들은 화사한 모습으로 위안을 주고 보람을 느끼게끔 보답해 줄 것이다. 


나만의 아지트, 베란다 가든 

요즘 유행하는 플랜테리어(플랜트를 이용하여 심신의 안정을 찾는 공간 인테리어)나 퀘 렌시아(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는 나만의 아지트 공간) 같은 것들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식물들은 언제나 인간의 감성적 성장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또 자연과 가까운 환경 속에서 인간은 정서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는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시골 사람이든 도시 사람이든 사람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연 친화적 습성을 갖고 있어서 그린 컬러의 생명체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마음이 있다. 

나만해도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봄가을 날씨에는 길거리 카페의 테라스 자리에 앉고 싶어서 일부러 테라스 쪽을  오픈한 가게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야외 공간에 손바닥만 한 자리라도 비어 있다면 자동차 매연이 가득한 찻길 옆이라도 기어코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테라스 자리를 고집하게 된다. 내가 한국의 도시에 태어나 콘크리트 건물들 속에서만 지금껏 살아와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너무 많이 굶주려서일까 싶기도 하지만, 숲과 나무가 울창하고 자연환경이 훌륭한 시골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면 굳이 좁은 테라스 자리에 앉고 싶어 애쓰는 걸 보면 어떤 상황에도 항상 자연에로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인 것 같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주택 집에서 넓은 마당과 초록의 나무들에 둘러싸여 거실 창문에 접해 있는 정원 테라스에 나와 앉아 태양 빛과 산들바람 속 풀 냄새를 즐기고 살고 있다면, 손바닥만 한 베란다 정원의 고마움을 크게 못 느낄 수도 있고 그까짓 베란다에 연연하는 모습이 유난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도시의 빽빽한 건물과 좁은 아파트들 안에 몸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겐 한 뼘만 한 베란다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다. 언젠가 내 소유의 근사한 마당이 생기기 전까지는 비록 손바닥만 하더라도 상처 받은 내 마음을 위로해 줄 나만의 아지트 같은 베란다 가든을 만들어 보는 작은 사치를 부려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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