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확장과 이별의 시간
작은 공방은 곧 한계에 다다랐다.
나는 40평 규모의 상가를 임대했고,
더 많은 회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쇼핑몰 서포터즈를 운영하며 인지도를 넓혀갔고,
맞춤 가구 제작 주문까지 들어왔다.
내 하루는 리폼으로 가득했고,
내 삶은 불타고 있었다.
공간이 넓어지면서 공방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회원님들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중엔 구리에서 오는 회원 두 분도 있었는데,
오래된 엔틱 의자를 직접 들고 와 리폼해 가기도 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공방에서 만나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공방은 자연스레 리폼 사랑방이 되어갔다.
나는 리폼과 목공방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이 일은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밤이 되면 온몸이 쑤셔
남편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며 졸라대곤 했다.
무엇보다, 공방을 열고 사업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시댁 살림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두 아들에게는
조금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집에서 맞아주지 못했고,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 놀아주지 못한 시간도 많았다.
그때는 내 자신을 지키는 게 먼저라 여겼지만,
돌아보면 그 빈자리를 아이들이 감내했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조금 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건강이었다.
알레르기 비염은 점점 심해졌고,
사포질만 하면 콧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마스크와 고글도 소용없었다.
보다 못한 남편은 말했다.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다.”
내 손끝에서 헌 가구가 새 모습으로 바뀌고,
예쁜 색을 입으며 공간을 바꾸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지만,
건강이라는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 건강이 허락했더라면 좋아하는 일을
좀 더 오랫동안 즐기며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때로는 더 큰 사업장으로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건강을 핑계 삼아 좋아하던 공방을 접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찾아
지인이 운영하는 영어교습소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쓰라림조차 내 삶의 일부였기에,
결국 나는 그 길을 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다음 편 예고
공방의 불을 끄고 나니, 문득 이런 질문이 남았다.
“나는 아내일까, 엄마일까, 혹은 사업가일까?”
쇼핑몰 사장, 아내, 엄마라는 여러 이름 속에서
정작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다음 편에서는 그 복잡했던 마음의 무게와
정체성을 찾기 위한 나의 고민을 나누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