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도 마음의 고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추석 명절에 큰아들과 단둘이 친정에 다녀왔다.
내 근무지 특성상 아무리 연휴가 길어도 다 쉬지 못한다.
이번에도 추석 당일 하루만 쉬고, 다음날 출근을 마친 뒤
저녁에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
올해 추석엔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었다.
야간 운전에 비까지 내려 길이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무사히 친정집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농사지으신 벼 낟알을 널어 말리고 계셨고,
엄마는 우리가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마당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혹시 주차하다가 벼를 밟을까 봐 걱정이 되셨다며 웃으셨다.
밥 생각이 없던 우리는 엄마가 내주신 송편과 전을 안주 삼아 동동주를 마셨다.
밖에서 친구들과 한잔하고 들어온 남동생은 자신이 캐온 송이를 내주며,
작년에 담근 송이주도 자랑스레 꺼냈다.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해 그 향긋한 송이향을 느낄 수 없었지만,
엄마와 남동생, 아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오랜만에 정겨웠다.
원주에 오면 꼭 마시던 치악산 막걸리 대신 동동주를 마셨는데,
역시 나에게는 톡 쏘는 치악산 막걸리가 더 어울린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막걸리를 좋아하신다면, 원주에 들를 일이 있을 때
꼭 한 번 치악산 막걸리를 맛보시길 추천드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횡성에 있는 엄마의 친정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언젠가 시골이나 바닷가에서 한 달쯤 머물며 쉬어보고 싶던 내게
그 말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다음 날, 엄마 친정집에 가보자고 엄마를 졸랐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외조부모님 산소에도 들르고 싶다 하셨다.
나는 정종과 황태포, 엄마 사촌댁에 드릴 선물 세트를 챙기고,
아들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아들도 결국 함께 하기로 했다.
원주 태장동에 사는 막내이모까지 합세해 네 명이 횡성으로 향했다.
엄마의 고향집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쓰러져 간다는 큰외삼촌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도 꼭 가보고 싶었다.
비로 질퍽한 산길을 돌아 외조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드리고,
다시 산길을 내려와 어렵게 도착한 외가댁은
비어 있는 세월만큼 낡아 있었다.
마당에는 풀이 무성했고, 중정의 기둥은 기울어 지붕이 내려앉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 벽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 속에는
여전히 웃음이 남아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목조주택,
처마 밑 석가래가 그대로 드러난 농가의 구조는
마치 시간이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했다.
사랑채 옆에는 아궁이와 무쇠 가마솥이 남아 있었고,
햇살이 잘 드는 터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곳에서 나는 잠시 ‘이대로 고쳐서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큰외삼촌은 이미 이웃에게 집을 팔기로 했다고 했다.
그 이웃은 주변 땅을 모두 사놓았고, 진입로까지 그의 소유라고 했다.
잠시 꿈꾸던 ‘외가 한 달 살이’의 상상은 그렇게 흩어졌다.
외가댁에 도착해 낡아버린 엄마의 친정집을 바라보자 마음이 아팠다.
기울어진 지붕과 풀로 덮인 마당, 오래된 벽의 금이 세월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울 엄마와 이모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외할아버지는 성실한 농사꾼이셨고 손재주도 좋으셔서
살집을 손수 지으셨다고 한다.
산과 논밭도 제법 가지고 계셨지만, 돌아가시기 전 모든 재산을
장남인 큰외삼촌에게 물려주셨다고 했다.
칠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두셨는데,
그 많은 재산이 장남에게만 돌아갔던 것이다.
이모와 외삼촌들이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씁쓸함이 묻어났는데,
막상 눈앞에서 쓰러져가는 외가댁을 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큰외삼촌이 사업을 하시다 결국 땅을 팔게 되고,
마지막 남은 집마저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와 이모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짐작이 갔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드렸다.
이번 방문이, 어쩌면 울 엄마에게 마지막 친정집과의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외갓집을 둘러본 뒤, 엄마는 사촌댁들을 잠깐 들러 인사하고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우셨다.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묘하게 먹먹했다.
만약 이 집이 아버지의 집이었다면,
나는 결코 이렇게 낡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자란 추억의 집을,
누군가의 땅 위에서 흙먼지처럼 흩어지게 두진 않았을 것이다.
이모님 댁에 들러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모님은 돌아서는 길에 우리 아들에게 용돈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덕분에 엄마아부지 성묘도 하고,
친정집도 보고, 사촌들 얼굴도 봐서 정말 좋았다.
오늘 큰 선물을 받았어. 운전하느라 수고 많았네.”
그 말에 나도 마음이 찡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이 운전대를 잡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르신들 모시고 다니는 게 귀찮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밝게 동행해 준 그 모습이 고마웠다.
‘아들, 오늘 정말 고맙고… 아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오늘 하루, 나는 엄마의 지난 세월을 바라보며
또 한편으로는 내 아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았다.
허물어져 가는 엄마의 친정집을 보고 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면 결국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걸.
낡은 집 한 채에도 세대와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세대가 다르고 시간은 흘러도,
이렇게 마음은 이어진다.
그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