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적어본다.
이 글은 2019년 초가을,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선가 나처럼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솔직하게 남겨보기로 했다.
2019년 여름, 집안 분위기는 부모님의 불화와 금전적으로 힘들어진 집안 상황 때문에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레퍼토리와 부모님 전쟁 같은 싸움에서 눈치 보며 온갖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나.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던 엄마는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 딸인 나에게 매일 하소연을 하셨다.
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친 몸으로 방에 들어간 나를 다시 거실로 불러 세우시곤 했다.
처음엔 잘 들어주다가도 어느새 엄마의 싸움 상대가 내가 될 때도 있었다.
자식으로서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고, 내가 드릴 수 있는 금전적인 도움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가을까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난 어떻게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상황과 부모님의 관계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부모님에게서 튕겨 나온 악한 감정이 나에게도 전염되었고 결국 나는 탈이 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져버린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지하철을 타고 출근 중이었고 스마트폰 속 재밌는 SNS 피드들을 구경하며 지루함을 달랬다.
피드를 넘기는 찰나, 순식간에 몸 상태가 달라졌다. 내 몸 안에 산소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 숨쉬기 힘들고 몸의 장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땀이 주룩주룩 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빈혈 증세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동안 겪어온 빈혈 증세와는 달랐다. 이렇게 몇 초 사이에 급격하게 몸이 달라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눈을 감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허겁지겁 쓰러지듯 내렸다.
한 정거장 사이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서 벤치에 누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시원한 공기를 마셨다. 그 상태로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내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바로 회사에 연락해 오전 반차를 신청하고 오후는 재택근무로 돌렸다. 그리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차로 역까지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비슷한 증세가 몇 번 더 있었고 심한 경우엔 일시적으로 앞이 안보이기도 했다. (이건 정말... 너무 무서웠다.)
뭐라도 마셔야겠다 싶어서 떨리는 손으로 자판기 앞에 가서 음료를 보는데 아무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봐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색 구분도 되질 않았다. (파란 이온음료겠거니 하고 눌렀는데 갈색 초콜릿 음료가 나왔다...)
그 시기에 영화관을 딱 한번 간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광고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이 힘들어지고 토할 것 같아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잘 마시지도 않는 콜라를 계속 마셨고 다행히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영화관을 가지 못했다.
밖에서 겪은 일들 외에 집이나 직장에선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사람처럼 초조해하는 걸 느꼈다. 가슴이 갑갑하기도 하면서 두근거려서 잠도 잘 오지 않고, 일하는 도중에도 힘들 때가 많았다.
'내가 숨을 어떻게 쉬었더라?' 한 번도 숨 쉬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숨 쉬는 걸 까먹은 것처럼 숨 쉬는 게 어려웠고, 계속 들숨날숨 하며 숨 쉬는 행동을 의식해야 했다.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두근거림이 계속되자 나는 내가 심장병이 있나 했다.
숨 쉬는 걸 의식해야 하다 보니 밤마다 '내가 이대로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내일 아침에 살아있을까? 자다가 죽는 거 아니야?' 라며 걱정했고
잠이 쉽게 오질 않아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살면서 내가 이런 걱정을 하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슬펐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검사를 받아봐야겠단 생각에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했다. 소화도 너무 안되던 시기라 내과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위나 소화기관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집안 문제에 회사 스트레스에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터져 버린 것이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신경계가 고장 났나 보네요. 몸이 상황에 맞지 않게 움직이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진료 결과는 생각보다 허무했다.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게 다라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병원을 잘못 찾아간 것 같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볼걸!
내과에서 자율신경 조절약을 처방받은 후 병원은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스스로 이 상태를 극복해보겠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병원에 다녀온 그날 밤, 또다시 나를 찾아온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나한테 하소연 안 했으면 좋겠어. 안 들을래. 나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고 안타까워. 근데 지금 내 몸이 엄마 하소연을 들어줄 상태가 아니야. 엄마, 나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숨을 못 쉬겠어 죽을 것 같아."
항상 묵묵히 들어주던 내가 엄마를 붙잡고 울며 애원했다.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가 더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그러면 안됐는데 내가 힘든 마음에 자식에게 하면 안 될 행동을 한 것 같네,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엄마의 하소연은 멈췄고, 나는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증상들이 평생 갈 것 같고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생활은 할 수 있을까' 하며 걱정도 됐고 괜히 억울했다.
타인이 던진 쓰레기를 열심히 주워 담은 벌인가 싶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증상들을 '실제로 내 몸이 그런 상태가 아닌데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아질 거고 다 괜찮아질 거라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쉽진 않았지만.
밤엔 늘 한두 시간씩 산책을 하러 나갔고, 불안증세들이 찾아올 때마다 노트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들을 기록했다.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몇 개월을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하려고 애썼다.
2020년 여름이 다가올 때쯤엔 퇴사까지 결심하면서 몇 개월 동안은 온전히 휴식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을 썼다.
밤에 산책할 때마다 위로의 가사가 담긴 노래도 많이 듣고, 힘이 나는 콘텐츠들을 많이 찾아봤다. 좀 웃으려고 웃긴 영상도 일부러 보기도 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힘들었던 순간마다 나를 위로해주는 명대사들'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산책 중에 그 영상을 들으면서 걸었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
그때마저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 감정을 억누르고 싶지도 않고 울고 싶을 땐 울어서 해소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 시기였지만 그때만큼 나를 위해 애쓰는 시간도 없었다.
내가 안 아프고 덜 울고 더 웃었으면 하는 마음에 매일 나를 토닥였다.
내가 겪은 상황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다.
"저 같은 사람도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저는 잘 지낸답니다. 완전히 다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때 이후로 스트레스에 면역이 약해져 아직도 가끔은 몸이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다 잘 이겨낼 거고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