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요즘 여름휴가시즌이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의뢰인을 초대하기가 조심스러워서요;-;
잠잠해지면 곧바로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하는 에피소드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8월부터 시작한 [갤러리 파헤치기]는 '작품'보다는 '작가의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쭉 훑어보는 시리즈입니다. 또다른 매력이 가득 담긴 '갤파 시리즈'도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려요;)
자! 오늘은 같은 중국 작가이지만, 북경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이죠. 상해로 넘어가 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상해를 선택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와이탄(Waitan)과웨스트번드(Westbund) 지역에 갤러리, 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기관이 많이 설립되면서,작년 가을에는 파리 퐁피두 현대미술관도 상해 아트위크를 맞아 분관을 새롭게 오픈했었는데요.
정리하자면 작가들의 스튜디오나 미술관은 북경에, 그리고 갤러리와 같은 상업 미술기관과 일부 컬렉터들이 설립한 신생 사립미술관은 주로 상하이에 위치해 있죠.
그 외에도 상해 곳곳에서는 매년 'ART021'과 'Westbund Art Fair'와 같은 아시아의 주요 아트페어들이 모여 상해의 가을을 매년 꽃 피우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 역시 북경에서 학부생활을 지냈지만, 가을마다 빠지지 않고, 심지어 졸업여행도 상해로 망설임 없이 떠났을 만큼 정말 애정이 듬뿍 담긴 도시라고 할 수 있죠.
그동안 상해에서 감명 깊게 본 작품과 전시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상해의'메이딘 갤러리(MadeIn Gallery)와 대표 전속작가 쉬젠(XU Zhen)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MadeIn Gallery 소속 작가들과 쉬젠(XU Zhen)
우선 쉬젠(XU Zhen)은 중국 개혁개방 시대의 시작과 함께 상해에서 태어난 작가입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2세대라고도 불리는, 장 샤오강, 웨 민준, 쩡 판즈와 같은 4대 천왕들과는 달리, 작품에서 풍자적인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데요.
다시 말해, 먼저 언급한 작가들은 자신을 형상화한 인물이나 캐릭터를 등장시켜 당시 예술 행위에 가해졌던 압박에 억눌렸던 모습을 표출한 것인 반면, 쉬젠은 사람들의 방심을 틈타 그만의 독특함과 은유적인 방식으로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혹되어 스스로 다가오게 만드는 작품을 선보여왔죠.
이러한 특징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duality'(이중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총 3 작품에 걸쳐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VPN의 한계를 뛰어넘다- ART BABA
예술가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쉬젠은,'예술'만이 중국의 사회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생각해, 각 지역에서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과 그 발자취를 조명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바로 2006년 “아트 바바(ART BABA)”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함과 동시에, 정부의 인터넷 방화벽을 뚫고 사람들이 VPN(중국에서 SNS 및 일부 사이트를 제한 없이 이용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 없이도 국제사회와 현실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하죠.
이를 통해 이전의 기성 예술인 세대와 달리,비교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제약을 받지 않는 젊은 예술가들의 관심까지 끌어오면서, 동료 작가들을 포함한 후배들의 시야를 넓히는데 한 몫을하게 됩니다.
XU ZHEN®, “Art-Ba-Ba”(www.art-ba-ba.com), 2006
이렇게 정부의 눈길을 피해 당시 문제 되었던 정치체제를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던 중, 쉬젠은 2009년 “메이드 인 컴퍼니(MadeIn)”라는 법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작가명 또한 “XU ZHEN®”으로 브랜드화시켜 자신을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다각화시키는데요.
다시 말해, 자신의 디렉팅에 따른 각 분야(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뉴미디어), 퍼포먼스)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방면으로 실현시킴으로써, 이후 그의 손을 직접 거쳐서 작품이 탄생하는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죠.
일각에선 마치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 시스템을 공장화 시켰던 것처럼, 작가의 과도한 상업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의 동시대 작가들 중에 쉬젠만큼 활발한 작업을 보이고 있는 작가가 잘 없기에, 그의 작품성만큼은 널리 인정받게 됩니다.
2. 질소로 포장된 예술작품- SUPERMARKET
“요즘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 물건을 믿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그 작품을 믿기 바란다(2017, TATESHOTS)”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쉬젠은 예술 작품의 소비구조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곧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에서 여러 차례 팝업으로 전시했던 <XUZHEN SUPERMARKET>이라는 설치 미술이자 개념미술 작품으로 구현되는데요.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여느 편의점과 다름없이 평범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장소는, 지나가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죠...
XU ZHEN®, <XUZHENSUPERMARKET>, 2016
그러나 밝은 백열등 빛을 내뿜고 있는 내부로 들어가, 진열된 상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록달록 먹음직스러운 색채로 채워져야 할 음료병들은 이상하리만큼 투명하고, 심지어 가볍게 느껴지죠.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자와 사탕으로 가득 있어야 할 포장 용기는 황당하게도 질소만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처럼 쉬젠의 슈퍼마켓에서는 실제 상품의 내용물을 싹 비워내고 재포장해서, 오늘날 소비자들이 가게에 들어와 물건을 고를 때, 더 이상 그것의 사용가치와 노동가치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 현상을 작가는 직시했고, 작품을 통해 그 안의 내용물(성분, 맛) 이외에도 포장, 디자인(패키지), 심지어 브랜드에 의해서도 결정할 수 있다는 보는 이들의 고정관념을 뒤바꾼 것이죠.
또한 자신이 전시한 예술품이, 그저 내용물을 비워낸 빈 캔과 과자 봉투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이 또한 교환가치가 있는 예술품으로 인정하고, 본래 가격 그대로 구매할 것이라 예견한 것도 이 작품의 킬링 포인트인데요.
물론 우려했던 대로 해당 작품은 모두의 환영을 받진 못했습니다. 실제 전시 기간 동안 이런 쓸모없는 쓰레기조차 제값을 받고 판매하는 모습에 극도로 분노하며 현대미술에 허를 내두른 사람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해요.
3. Under Heaven & Made in Heaven
마지막 작품 <Under Heaven(천상에서)> 시리즈는, 철 지난 유토피아적 이상을 풍자적인 뉘앙스로 표현하는 그와 유사한 작업 방식을 가진 CEO형 예술가 제프 쿤스의 <Made in Heaven>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작업입니다.
XU ZHEN®, <Under Heaven>, Oil on canvas, aluminium, 2017
파스텔 톤의 유화 덩어리로 이루어진 정교한 외관과는 다르게, 제작 방식은 누구나 모방하기 쉬울 정도로 간단한데요. 바로 케이크 위에 생크림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짤주로 제작됩니다.
즉, 유화물감이 짤주 밖으로 나와 생성되는 각기 다른 모양과 그라데이션 된 색감의 조합은 구상과 추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게 되고, 이를 통해 쉬젠은 현 사회에서 상품뿐만 아니라, 인간마저 스스로를 치장하고 과시하는데 정신 팔려 있는 모습을 지적하면서, 결과적으로 고풍스러움을 풍겼던 유화 덩어리는 순식간에 중국인의 과소비 행태를 비판하는 화려한 껍데기로 타락하게되죠.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중국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무한대로 확장된 '자본의 힘'과 가파른 경제 성장에 따른 향락적 문화에 대한 자신의 메세지를보는 이들에게 전달하고있습니다.
자:) 오늘은 상해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쉬젠과 메이드 인 갤러리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여러분과 하나하나 작품을 살펴보니, 올 가을 상해 여행도 정말 이렇게 놓치고 싶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