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앨리스 _ 엄마의 라떼 _ 추억 소환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 A는 대학교도 나와 함께 다녔다. 시크한 그녀는 이과생으로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안경 너머의 눈은 예리하고 냉철했다.
빙빙 에둘러 말하는 내 화법과 달리 그녀는 직설적인 사이다 화법이었고, 쉽게 흥분하고 날뛰는 나와 달리 그녀는 매사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녀는 잔디밭에 떨어져 버린 벚꽃 때문에,
저 파란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기 때문에,
서늘한 바람이 무척 외로워 보이기 때문에,
오늘은 꼭 술을 한 잔 해야 한다는 나를 맹하게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아 잔을 들곤 했는데,
딱 한 잔의 술에 통통한 얼굴이 가을 노을처럼 붉어지는,
아주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수능이 끝난 후, 맨 처음 팬시점 알바를 소개한 것도 A였다.
나는 햄버거를 공짜로 하나씩 먹을 수 있는 롯데리아에 이력서를 넣을 생각이었는데, A는 롯데리아보다는 팬시점의 시급이 몇백 원쯤 더 많으며, 한 달로 계산하면 얼마만큼의 차이인지를 계산기도 두드리지 않고 나에게 설명했고, 나는 A의 암산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작정 그녀를 따랐다.
하지만 팬시점 알바는 생각보다 고단했고, 무엇보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퀘퀘한 창고에서 사장님이 싸 온 맛없는 점심을 서서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한 달 후, A는 햄버거값까지 따져보니 롯데리아가 더 나은 것 같다며 내 손을 잡고 팬시점을 그만두었다.
그렇다, A에게 뭔가 어설픈 면이 없지 않음을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계산을 해야 하고, 따지고 분석해야 하는 일은 주로 A에게 의지했고, A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비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어설프고, 훨씬 더 막 어리바리했으니까.
그해 겨울방학에도 나는 눈썹이 휘날리게 알바를 할 예정이었는데, A가 사회 봉사활동을 함께 하자고 했다. 시간 좀 내보라고.
학점을 인정해 주는 사회봉사 중 봉사 시간이 적어서 완전 인기가 많은 활동인데, 지금 운 좋게 딱 2자리가 비어있다고 했다. 얼른 신청하지 않으면 마감될 수 있다며 나를 닦달했고, 나는 엉겁결에 '문화재 보호 관리'라는 사회봉사 활동을 신청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곧 그녀에게 쌍욕을 날리게 될 것을.
기록적인 한파로 서울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나는 A와 함께 경복궁의 마룻바닥을 닦았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넓은 마룻바닥을 4시간 동안 박박 닦고 또 닦았다.
앞으로 이 짓을 이 겨울에 7번이나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왕비의 피가 흐른다고 믿었던 내가 콩쥐처럼 구박받는 무수리의 설움을 막 뼛속 깊이 느끼고 또 느끼면서.
나는 경복궁의 마룻바닥을 온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도록 닦고 또 닦았다.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때, 내 눈치를 슬슬 살피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친구야, 이것 좀 봐봐. 그래도 여기 아무나 들어오는 데가 아니라니까."
그녀가 가리킨 것은 [들어오지 마시오]의 경고문이었다.
"뭬야?!!!"
*
얼마 전 아이들과 창덕궁 산책을 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아이가 "엄마, 여기 누가 들어갔나 봐~"했다. 누군가가 열심히 광을 내놓은 마룻바닥에 선명하게 신발 자국이 찍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막 그 옛날 무수리의 설움이 느껴졌다.
임금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닦고 닦고 또 닦았을, 사계절 내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저 닦고 닦고 또 닦았을… 그 옛날 손 작은 무수리의 설움이.
그리고 그녀를 따라 사회봉사 1학점을 위해 끝내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봉사 시간을 꽉꽉 채워 낸 나의 설움이… ㅋ
저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안된다고 눈을 부릅뜨고, 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하늘은 어쩌자고 이리 아름다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