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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1인분의 밥을 지었다.

배우자, 결혼, 어른, 그리고.

by 써퍼

평소에 집에서 밥을 잘 안 먹는다. 혼자 먹어야 하는 데다 차려먹기도, 먹은 후 치우기도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식을 하다 보면 입맛이 떨어지는 편이라 그렇기도 하다.


자기 전엔 오전 요가수련을 가겠노라 마음먹고 알람까지 단디 맞춰놓고선 잠을 설치는 밤이면 깰 때마다 요가를 갈까 말까 한참 고민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인 아침.


전날 짝꿍과 서먹하게 잠든 탓에 밤새 뒤척였다. 그리고 약속의 9시 30분. 그냥 잘까 일어날까 한참 고민하다가, 기분이 안 좋을 땐 더더욱 요가원을 가야 한다 생각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요가원에 앉아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있자니, 역시, 오길 잘했지. 그리고 문득 ‘나를 위해 오늘은 따뜻한 밥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사용하시던 밥솥은 8인용 밥솥이었다. 출가하게 되면서 친구가 내게 3인용 밥솥을 선물해 주었는데, 문제는 내가 손등 높이로 밥의 물 양을 맞히는 사람이라는 점. 3인용 밥솥에는 아무리 손을 구겨 넣어도 손등으로 물 양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밥솥으로 5번 정도 밥을 해봤는데 어떨 땐 물이 너무 많았고, 어떨 땐 물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오늘도 물 양을 맞추면서 이번에도 망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부러 취사가 끝난 밥통을 바로 열지 않고 몇 분 더 두었다. 혹시나 그 몇 분이 밥을 더 맛있게 해주려나 싶어서. 그리고 밥솥을 열고 뒤적이는데 웬걸. 느낌이 좋다.


딱 좋아하는 질감의 밥을 밥그릇에 담고,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반찬들을 꺼낸다. 보통 같았으면 굳이 접시에 덜어먹지 않았을 반찬들을 가지런하게 꺼내어 놓고 한 입 한 입 오물오물 오래도록 씹었다.


딱 한 번 먹을양만 밥을 막 지어먹는 건 꽤 나를 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햇반이 아닌 밥솥을 찾게 되는 것 같기도.


사실 그러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이토록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배우자려나. 하고 새댁은 생각한다.


참아내야지, 생각하면서도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도무지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내뱉어야 하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조금 더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선이 느껴지는 날이 오긴 할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어느 날은 함께하는 게 사무치게 고맙다가도, 어느 날은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워진다. 그런 게 부부인 걸까. 아니면 동거인이라 그런 걸까. 부부가 아니더라도 살부대 끼며 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걸까?


어쩌면, 이런 고민과 삶의 지점들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결혼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 과정들을 다 겪고, 서로의 선을 찾아 맞추게 되면 정말 어른이 되는 건 맞는 걸까? 근데,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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