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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지만,

꽤 평안합니다.

by 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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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한다고 하니, 엄마가 집으로 아침 일찍 부르셨다. 전날 짝꿍과 성탄전야제를 마치고 늦게 잠든 터라 제대로 된 수면을 하지 못하고 본가에 도착했다. 짝꿍과 야심 차게 준비한 케이크를 쫄래쫄래 들고 왔는데 엄마 아빠 반응이 시원찮다. 아침부터 갑자기 아빠의 컨디션이 뚝 떨어진 탓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구태여 티 내진 않았다.


아빠의 컨디션이 더 좋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컨디션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고아이고 하면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아빠가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컨디션 좀 좋아지면 하면 되지 왜 굳이 지금 하고 있냐고. 그래도 엄마가 계속 움직이니 나에게 네가 좀 못하게 말려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중에 힘든데 안 도와줬다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전까지는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턱 막혔다. 그래서 나도 괜히 "이럴 거면 괜히 왔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금 더 다정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내 성격이, 성향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질적으로 나는 불안이 높고 그래서인지 걱정이 많다. 그게 뭐 꼭 나쁘기만 했냐 하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꽤 좋았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니다. 물론 이걸 부모를 탓할 일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성탄의 아침이지만 기분도 컨디션도 꽤 평안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또 별 수없기도 했다. 거의 감긴 눈으로 엄마랑 둘이 돈가스를 먹었다. 그리고 본가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에 갔는데, 오랜만에 온 나를 알아본 사장님이 오랜만에 오셨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커피를 받아 나오며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라고 했더니,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하는 곳의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꽤 좋아졌다. 사실 즐거움과 평안이 별 것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이제 간다고 엄마 아빠한테 인사했더니, 아빠가 "딸. 미안해."라고 하셨다.

"뭐가 미안해?"

"아빠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런 모습을 보였네."

"그게 뭐 미안할 일이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하고 말하고 나오면서 괜히 마음 한편이 시큰해졌다.

아빠는 사과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든 탓인지 요즘따라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신다. 그게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건 아빠가 이제는 잘못을 잘 인정하게 되었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이기도 해서 그렇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은 딸이라서, 나도 사과를 잘 못한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뭐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어릴 때부터 잘못했단 소리를 잘 안 했다. (아빠가 그렇게 키운 영향도 있겠지만) 사과보다는 변명을 더 많이 해왔던 것 같다. 미안해 한마디면 될 걸, 네가 이래서, 상황이 이래서 여러 탓들을 하며 살아왔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내 탓도 많이 하긴 했다. 그냥 사과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변해가는 아빠를 보며 나도 변해가기도 한다. 아니, 나도 나이 먹어 가는 걸 지도.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러 왔다. 나를 위해 선물하고 싶었던 공간이었는데, 얘기를 들은 짝꿍이 선물해 줬다. 그래서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쓸쓸하거나 외롭게 느껴지진 않는다. 뭐, 워낙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혼자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지만 꽤 평안하다.

오픈하실 때부터 애정하던 카페의 사장님은 내가 오랜만에 찾아가도 알아보고 안부를 전해주고, 마무리하러 온 공간은 꽤 멋지고, 그곳에서 글을 쓸 수 있으니. 어쩌면 평안은 멀리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안에 이미 있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결국 알아챌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니, 혼자 보내는 어떤 날들을 너무 쓸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anyway,

marry chir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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