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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마지막으로 남은 후회

by 써퍼
엄마와 1월.PNG


오랜만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누군가와 매번 자신을 비교하는 잣대를 스스로에게 가져오는 나는 언제나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좋아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니 자주 그리기 쉽지 않더군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 자주 밀어냈습니다. 조금만 내게 상처가 될 일을, 말을 감지하면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치며 경계선을 그었어요. 그리고 나면 꽤 괜찮아지는 듯했습니다. 경계가 희미해질 때쯤 내게 찾아오는 감정은 아쉬움이었어요. 스스로 그린 경계를 발로 벅벅 지워내며 넘어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럼 상대는 당황해요. 그럼 또 나의 예민한 감각들은 또 상처받지 않으려 덮어버렸어요. 그렇게 무너져버린 아쉬운 관계가, 사람이 몇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요. 그래서 제가 자주 과거에 머물고, 후회를 자주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제도, 애써 상처받지 않으려 먼저 지워버린 관계를 불쑥 꺼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돌아온 것은 무응답.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별 생각을 다 했어요.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될 땐 안 하는 게 맞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때 우린 친했잖아. 근데 왜 나랑만 이렇게 된 거지?'

'역시 이 관계는 끊어내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이 계속되니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자기 합리화를 하다 지칠 때쯤 응답이 왔습니다. 별 다를 것 없이, 그냥 평범하게요.


안도감이 들면서 나는 왜 이렇게까지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할까. 왜 그러려니 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이 불쑥 올라옵니다. 5번을 만났던 상담 선생님은 자라온 환경, 부모의 양육, 학창 시절의 관계의 영향일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어땠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스스로 찾기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랑 대화하면 쉬웠냐고요? 아니요. 거기서도 저는 방어기제를 스스로 만들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니까요. 어쩌면 그것 때문일까요?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이 생각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거든요.


우리는 왜 관계가 어려울까요. 내가 해주는 만큼, 혹은 해줬다고 생각하는 만큼 돌려받고 싶어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각자 같은 타이밍에 동일한 만큼 무언가를 나누긴 참 어려워요. 어떤 날엔 내가 더, 어떤 날엔 상대가 더 주게 되죠. 내 마음이 어떻냐에 따라 그 양을 받아들이기 나름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자주 과거에 살기 때문에 더 돌아볼 기회(?)가 많았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주기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받은 게 더 많더라고요.


아,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가 현재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꾸 과거에 머물러서 내게 남는 감정이 아쉬움, 후회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정답은 당신 안에,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엔 어떻게 질문하고 어떤 방식으로 꺼내어 오느냐의 차이일 것 같아요.


다시 연락했던 그 사람과의 관계로 돌아가서, 우리가 같은 직장에서 일할 땐 꽤 친했어요. 하지만 '일'이 빠지니 우리에게 남은 게 없는 것처럼 보여졌죠. 매개체가 있을 때 우린 가까웠지만, 연결점이 모두 빠지니 이제 우린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여전히 그 사실이 꽤 서운하고 아쉽고 속상하지만요.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가 그렇게 잘 맞는 사이였을까?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것도 과거와 현재에 남은 나의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럼에도, 저는 용기를 한 번 더 내봤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줬던 메모의 마지막에 남겨졌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를 꺼내어 보면서요.


하지만 아마도 우리는 여기까지 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젠 어제처럼 아쉽진 않네요. 또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떤 걸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그렇습니다.


그래도 오늘을 계기로 조금은 덜 과거에 머물러볼까 해요. 이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다시 또 새로운 인연들을, 관계들을 맺어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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