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코트, 비싼 드레스, 비싼 구두는 다 가벼워
환혼도 거의 끝나고, 재벌집 막내아들도 끝났고, 웬즈데이도 이미 끝낸 나는 볼 게 필요했다.
요즘 넷플릭스에 더 글로리가 있었다. 어두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안 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안 보려 하기에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환혼 방송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결국 시작하고 말았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어두운 면을 보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지만 넷플릭스에 너무 적응되어버린 건지 나의 한계 수위도 좀 높아졌는지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진이가 딸에게 말해주는 대사였다.
“비싼 보석, 비싼 시계, 비싼 백, 비싼 차는 원래 다 무거워. 비싼 코트, 비싼 드레스, 비싼 구두는 다 가볍고.”
나에게는 이 대사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이었다.
비싼 보석, 시계, 자동차는 가져본 적 없어서 잘은 모르겠으나. 아. 그래서 그 가방들은 그렇게 무거웠나 생각했다. 사지 않을 이유가 늘었다. 보석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에 반클리프 앤 아펠 전시회에 가서 보석을 구경했을 때 별 생각 없이 구경하던 중문득 궁금해졌다. 무거울까.. 어떤 목걸이가 예뻐서 도슨트분께 설명을 요청했다. 도슨트님 왈. 전시된 것 중에 제일 비싸단다. 무려 91억. 42캐럿이 넘는 사파이어… 마욜리카 네클리스. 머라고 머라고 소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지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무게. “이거 무겁나요?” 무겁단다. 아 그렇구나. 비싼 보석은 무겁구나. 팩트 체크 완료.
비싼 코트, 비싼 구두는 가볍다. 글쎄 엄청 비싼 것은 입고, 신어보지 않았지만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의 코트와 구두는 가벼운 것 같다. 막스마라의 코트를 입어보기 전에 나는 코트는 멋 부리다 얼어 죽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재에 따라 이렇게 코트가 가벼울 수도 따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새로이 세상에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파리에 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된 구두 브랜드가 있다. 지안비토 로시. 당시에는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은 브랜드였다. 세르지오 로시의 아들이 만든 브랜드라고 패션 코디가 설명해 줬었다. 나는 공룡 발톱을 가졌다. 엄지발톱이 위를 향하고 아주 강하다. 가끔 부잡스럽게 움직이다 내 발톱에 긁혀서 피를 철철 흘린 적도 있다. 일반적인 구두를 신으면 압 쪽 코가 좁은 건지 아니면 내 발톱 때문인지 신고 나면 엄지발톱이 아팠다. 또 신다 보면 구두의 엄지발톱 닿는 부분이 파여서 안쪽에 구멍이 나곤 했다.
그런데 이 구두는 내 발과 맞다. 신기하게 이 구두를 신으면 내 발톱의 단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이 브랜드에 빠졌다. 물론 발가락이 길어서 구두와 닿는 부분에 반창고를 붙이지만 내 발이, 내 발 모양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느낌이어서 난 이 브랜드 구두가 좋다. 그동안 무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드라마를 보고 들어봤다. 아. 가볍다.
난 더 글로리의 그 대사가 가장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