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활 1급 실기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었다.
여러 가지 하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중에 나에게 와닿는 것은 엑셀을 공부하라는 것.
업무 중에 엑셀을 사용할 일이 이따금씩 있기도 했고 또 논문 통계를 내기 위한 밑작업을 엑셀로 하기에 엑셀 공부의 필요성이 나에게 와닿았다.
독학하면 가장 좋겠지만 나는 독학에 탁월하지도 않고, 온라인 강의는 잘 안들을 것 같고 진도도 안 나갈 것 같기에 학원을 알아봤다. 내가 가장 원했던 코스는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를 모두 배우는 것이었지만 이런 수업은 잘 없었다. 사무자동화라고 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다루기는 하나 너무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해서 맞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엑셀에 관한 과정을 찾아보니 개설된 것이 컴퓨터활용능력 시험 2급 실기 준비 과정이었다. 한번 해보자 싶어 등록했다. 내가 생각한 최선의 옵션이었기에. 2급 수업은 들을만했다. 평소 사용해 봤던 기능도 있고, 계속 반복하다 보니 할만했다.
그리고 1급 수업을 시작했다. 기왕 해본 거 더 배워보고자. 앗 그런데 이거 2급 같지 않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못 따라가겠다. 같은 선생님이어서 갑자기 말씀하시는 게 빨라진 건 아닐 텐데,, 내가 몰라서 못 따라가는 것인지.
어느 때는 답에 있는 것을 따라서 하다 보니 선생님이 다음 문제 설명하는 것은 놓치고 만다.
감기 기운으로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던 어제는 문득 선생님의 설명 하나를 놓치자 그다음부터 멍해졌다. 정답을 보며 혼자 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얼굴에 눈 맞추며 알아들었다고 끄덕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만히 정지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지금 머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걸 배우고 있는가. 지인의 엑셀 배워서 당장 써먹지 않으면 까먹는데 왜 배우느냐는 말도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령화 가족.
엄마는 세 번 이상 다른 남자를 만나 아빠가 서로 다른 아이들을 낳았고,
큰 아들은 조폭의 바지사장을 하다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가 또 동생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또 갔다 나왔고,
둘째 유일하게 대학 나온 아들은 영화감독이지만 제대로 된 영화도 못 찍고 자살을 하려다 엄마의 집으로 밥 먹으러 오라는 전화에 집으로 돌아오고,
셋째 딸은 만나는 남자마다 헤어져서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셋째 딸의 딸이 집을 나간다. 쪽지 하나를 남기고. 그걸 본 셋째 딸이 둘째 오빠에게 쪽지를 주며 닦달한다. 딸이 어디로 간 것 같냐고. 좀 생각해 보라고.
그걸 본 둘째 오빠(가족 중 가장 똑똑하다고 여겨지는)가 그런 말을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맞춤법이 하나도 안 맞다고.(여기서 그게 왜 중요한데?) 근데 그다음 말이 이렇다.
맞춤법이 이 정도였으면 학교에서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 따라가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아 탁월한 판단이군)
난 왜 순간 그 영화의 그 대사가 떠오른 것일까.
그 순간 그 딸이 이해됐다.
나야 내가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여기와 있는 것이지만. 또 이제 수업도 다 끝났고 다시 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게다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신 앞에 몇 년간 이 과정, 또는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나의 아이(미래의)가 이런 경험을 한다면 어떻게 하나. 이해해 줘야겠다. 이런 일을 겪지 않게 도와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의 상황으로 돌아왔다. 내가 흐름을 놓친 문제는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문제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느 스텝부터는 못 따라갔다고. 선생님께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의 1급 수업은 끝이 났다.
알아들으나 못 알아들으나 끝낸 것으로 만족한다.
이 기나긴 힘든 수험 생활을 모두 끝낸 학생들.
모두 수고 많았으리라.
괜찮다. 괜찮다. 이 터널을 지나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훌륭하고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