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 것이 있다.
언젠가 내가 서울에 살고 있지 않을 때, 친구 따라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으로 핸드볼을 보러 갔었다.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5호선 거의 끝자락에 있는 곳이었다. 올림픽공원역.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핸드볼 경기를 재미있게 보고 난 후, 친구들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데 너무나 좋았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정도였어서 아직 덥지도 않았고, 맑은 날씨에.
우리는 가만히 사람들을 구경하며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걷고 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고, 너무나 평화로웠다.
와, 언젠가 서울에 오게 되면 이곳 근처에서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서울 같지 않은 맑은 공기, 평화로운 풍경.
그렇게 문득 생각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몇 년 후에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약국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또 그 후에 취직하게 된 직장이 올림픽공원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게 난 올림픽공원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실제로 그 미래가 실현된 것은 우연인 걸까 나의 무의식의 귀결인 걸까.
가끔 생각해 본다.
오늘 다른 볼일이 있어서 올림픽공원에 갔는데, 지하철에 내리면서부터 사람들이 많다.
오늘 또 공연이 있나 보구나.
포스터를 봐도 누군지 잘 모르겠고, 그래도 호기심이 일어 글자를 읽어본다.
10cm. 오. 내가 아는 이름이다. 어느 날부터 가수들의 이름도 모르겠고, 멤버들은 더더욱 모른다.
10cm의 노래는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천막이 크게 쳐져 있다. 보니까 10cm의 콘서트다.
오 언젠가 지인이 10cm 콘서트가 좋았다고 했었는데,
한번 가볼까. 티켓이 있나.
호기심에 안내 직원에게 물었다. 어머나 티켓이 있단다.
충동적으로 난 티켓을 구매했다.
그런 날이었다. 먼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날. 충동적인 소비도 감수하고 싶은 날.
6시 시작이란다. 한 세 시간 정도 남아있는 상태.
일 보고 서점이나 가려고 했는데, 오고 가다 시간이 다 가버리겠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부스스 일어났더니 이제 콘서트 갈 시간.
대충 저녁을 챙겨 먹고 나왔다.
그리고, 콘서트 장으로.
이 얼마나 호화로운 여정인가.
조금만 가면 콘서트 장이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
언젠가 콘서트나 뮤지컬을 예매하고 기다리며 설레기도 한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좀 귀찮다. 예매하는 것도 그렇고, 약속 잡는 것도 그렇고, 또 그곳까지 가는 것도 좀 많이 귀찮다.
그래서 특별한 일 아니면 잘 안 가게 되는데,
이렇게 편하게 가까운 곳에서 눈귀를 호강시켜 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특히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게는.
그렇게, 난 오늘 뜻하지 않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10cm 콘서트는 역시 브라보!!!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고영배 얘기를 계속해도 무슨 얘긴가 했지만,
머 문맥상 짐작하고 나중에 구글로 찾아봤다. 하하
옆에 앉은 젊은 친구 덕분에 야광봉 사용법도 배워서 잘 즐기고 왔다.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한 나에게 그 친구는 야광봉이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의자 사이 빈 공간에 살포시 놓여있었다. 요즘은 이런 것도 공짜로 주나 보다). 요즘 친구들 참 친절하네. 살짝 감동했다.
공연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이런 감성적인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잊고 있었네.
행복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이 있어서. 즐길 수 있어서.
그렇게 난 오늘 호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콘서트 보고 나오는 길에 손난로도 나눠줬다.
와 요즘은 이런 섬세한 배려도 하는구나.
덕분에 따뜻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