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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생활 Jan 31. 2024

지하철 맞은편 그녀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성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먼가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뜨개질을 처음 배웠을 때가 그랬다.


처음으로 실을 샀던 그 가게는 앉아서 뜨개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몇 분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도란도란 나누고 계셨다.


뜨개질을 하는데~ 그 순간 어떻게 그렇게 몰입이 되는지 엄청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몰입을 할 수 있었다 해서 그 작품이 뛰어난 것인지는 별개다. 참 흥미로운 사실.


똑같은 동작인데 왜 이렇게 제대로 안 되는 것인지.


그것 또한 참으로 신기하다.

결국 내가 시작한 뜨개질을 엄마가 마무리해 줬다. 중간에 엉망인 그 목도리를 난 친구에게 선물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목도리라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병실에 계실 때 엄마가 간호를 했었다.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계속 간호에 온 신경을 썼던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남아버린 신경과 시간에 혼란스러워했다. 처음 시집와서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엄마 안에 쌓였던 그 모든 감정과 할머니의 빈자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순간 엄마가 당황스럽고 황망해 보였다. 그래서 난 뜨개질 실을 몽땅 사서 엄마에게 갖다 줬다.


엄마는 뜨개질에 몰두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무사히 그 시간들을 극복한 것 같았고, 난 색색의 다양하고 긴 목도리들이 생겼다. 지금도 그 목도리는 나의 곁에 있다.


건너편의 그녈 보고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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