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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생활 Feb 28. 2024

서울대에서 본 엄마 아빠의 정반합

드디어 박사 졸업식이다!


약대 졸업식은 10시 반.


대학교 전체 졸업식은 2시.


나의 미션은 다음과 같았다.


약대 졸업식, 전체 졸업식 참석.


도서관에서 논문 프린트물 찾기.


정문에서 학사모 던지는 사진 찍기.


5시 안에 졸업 가운과 학사모 반납.


이 모든 것을 부모님과 함께.


이 미션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또 그렇게 많이 걷게 될 줄 몰랐다.


서울대는 정말 넓은 곳이었다.


약대 졸업식은 기쁘게 참석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식당은 어디지? 내가 공부한 캠퍼스는 연건 캠퍼스여서 나는 관악을 모른다.


약대 학생에게 물었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한식집이 있다고 한다. 검색하고 물어 찾았으나 그날은 코스요리뿐. 게다가 웨이팅도 있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새로운 식당을 찾아 떠난다. 이번에는 학생 식당. 가장 가까운 곳이 농업 생명 과학대학. 코스 요리에 비해 가성비 높고 만족스러운 식사.


이제 전체 졸업식이 이루어지는 체육관을 찾아가야 한다. 검색해 보니 20분은 걸린다.


전체 졸업식을 참석한 후 이제는 정문으로 출발.


또 걷는다. 그렇게 걸어서 정문 도착.


사진 기사님이 따라붙는다. 엄마가 사진을 맡긴다.


그렇게 목표했던 사진을 찍고 이제는 도서관으로 출발. 도서관까지 또 도보 20분이다. 지도 따라 가지만 감으로 갔더니 잘못 들어가서 또 헤맨다.

엄마가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이번에는 맞는 길이지?”

아 우리 엄마 힘들구나.


그렇게 도서관을 찾아갔더니 논문 받는 곳은 이 건물이 아니란다. 뒷 건물이란다. 60 계단 그 이상의 계단을 또 걸어야 한다.


논문을 찾고 이제는 가운 반납. 5시가 여유 있을 줄 알았는 데 바로 가야 제시간에 반납한다.


약대 건물도 여러 개여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건물이다.


아. 서울대생은 모두 날씬할 것 같다. 이렇게 걸어야 하는데.


물론 내가 대학 다닐 때 우리 과 근처만 다녀서 다른 과 갈 일이 없긴 했지만.


결국 졸업 가운도 다 반납했다.


계속 사진 찍고 영상 찍고 지도 찾고 했더니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핸드폰 꺼지기 전에 이미 만보를 걸었다.


아. 녹초가 되어버렸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힘든 소리 안 하고 딸을 계속 따라다녔다.


내가 앞장서면서 길을 찾으면서 갔는데 엄마 아빠가 뒤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따라왔다. 항상 차로만 돌아다녀서 이렇게 함께 많이 걸을 일이 잘 없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걷는 모습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걷는 엄마 아빠 모습이 참 좋았다. 예전에 여행 다니면 아빠가 혼자 앞장서서 가서 엄마가 툴툴거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닌가 보다.


한식당이 마음에 안 든다는 아빠의 말도 엄마가 나에게 부드럽게 전한다. 그리고 다른 식당 가보자고.

아빠가 엄마에게 편하게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또 엄마는 그것을 존중하고. 엄마 아빠는 긴 세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지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의견이 일치되는 게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새삼스럽게 볼 수 있어서 따뜻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배려인 것인지 엄마 아빠는 걸으면서 힘들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묵묵히 딸을 따라다녔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그랬다고 한다.


“한숨에 잤네.”


아빠는 다음날 지인들에게 기쁘게 회를 샀다고 한다. 딸 박사 졸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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