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흙밭에서 꺼낸 와인

Milla Cala 2017 (Vina Vik) 비냐빅 밀라칼라



"라떼는 말이야 흙밭에서 뒹굴면서 놀았어"


그시절 동네 놀이터 바닥은 지금과 다르게 흙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창초주가 되어 건물도 짓고 마을도 만들어 니땅 내땅 하며 놀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댐을 건설하고 수로를 내어 물길이 흐르는 제법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경도 연출--아이의 눈높이에서--을 하곤 했다. 


시간 가는줄 모르게 놀다가 무의식중에 코를 한번 팔로 스윽 훔치면 흙투성이가 된 손과 팔 덕에 흙내음이 코밑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흙더미 위에서 세상을 주무르던 전지전능함은 엄마의 밥먹으라는 고함 한번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내일이면 나는 다시 전지전능함을 찾을 수 있을텐데.




이 와인은 이런 어린 시절을 떠올려준다. 처음엔 체리를 감자캐듯 땅에서 캐내 킁킁 맡으면 이런 향일까 싶을 정도로 거친 느낌이다. 마치 마시기 전에 이 와인을 물로 씻어내야할 것 같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한입 가득 입에 머금을 땐 향에서 기대했던 바와는 사뭇 다르게 어두운 밤바다의 부드러운 파도가 입안에서 잔잔히 일렁인다. 


하지만 그 묵직한 부드러움을 목 뒤로 넘기자, 격렬한 호흡을 급하게 달래던 운동 선수가 이내 평정을 서서히 되찾으며 기분좋게 나른한 피로감을 음미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거칠었던 첫 흙내음도 어느새 그 육체마냥 말랑해진다.


이제는 그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다시 얻기는 힘들겠지만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해야하나

작가의 이전글 어른이 추억놀이용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