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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연락에는 위스키

Bar Olde Knives (올드 나이브스 성수)

여느 날과도 크게 다르지 않게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던 그날, 문득 메신저로 낯선 톡이 들어왔다. 익숙치 않은 영문 약자의 아이디로부터 이전 대화이력조차 없는 신선한 채팅 알림.


'누구지?'


찰나의 불안감과 기대감은 손끝 터치 한번으로 해결이 되었다. 상대방은 이미 나의 이름을 알고 있고 보내온 첫 문장과 구성된 단어 사이사이에서 호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친절하고 반가움이 팡팡 터지는 문자를 내게 보내준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을 때다.


'아오 누구지?!'


탈모에 나쁘다는 말만 안들었어도 머리를 벅벅 긁고 싶을 정도로 조바심이 났다. 결국 조심스럽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던지는 미안함 가득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 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식으로 흔쾌하고 빠르게 단답형으로 자신이 누군지를 밝힌 그는 연이어 안부를 묻는 톡을 짧게 툭툭 던져왔다.


오래된 인연이라면 인연. 다름 아닌 근 10년전 업무상의 갑과 을로서 만난 사이지만 비슷한 연배의 동질감과 고마움 그리고 각종 수고스러움을 주고받았던 여타 다른 업무상 파트너보다는 기억에 깊게 남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더이상 내가 그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인데 무슨 일로 연락을 했을까 싶지만 계산적인 생각따윈 바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그도 내가 기억하기에는 그런 좀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 밥이던 술이던 한잔해요

흔하게 상대방과의 대화를 우아하게 종료하기 위해 던지는 상투적인 말이건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음주 화요일 저녁 7시 성수동. 땅땅땅.



결과부터 말하자면 별일 아니었다. 하지만 수년간 연락 한번 없다 만나게 되니 별일 아닌 것이 오히려 별일같이 느껴지는 그런 만남. 적당한 고깃집에서 만나 서로의 누락된 세월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어색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보일세라 능숙하고 빠르게 소맥을 말아 틀어 막는다. 적당한 캐치업과 취기가 오를 즈음 한가지 몰랐던 공통 키워드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BAR'였다. 한남동에 잘생긴 사장님으로 유명한 그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바를 가려다 오늘 출근하지 않는다는 비보에 근처에 있는 바를 권했더니 몰랐다며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압생트 토닉은 체이서로 거들뿐, 발베니 더블우드 12y


재미있게도 교환할 추억의 조각들을 한두개씩 꺼내다보니 마치 제대로 짜맞춰만 주면 근사하진 않더라도 작은 그림 정도는 이뤄낼만한 퍼즐 같았다. 서로의 공통된 기억속에 있는 다양한 등장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공간들에 대해 쉼없이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채울 수 없을 것 같이 막막했던 빈 퍼즐 한판이 채워져가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맞춰가는 재미에 술이 또 술을 부르게 된다.


이전이 부담이 있던 계약적인 관계였다면 이제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부담없는 사이. 그러한 사실에 걸맞으면서도 그날 주고받았던 서로의 삶에 대한 크고작은 사건들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에 적당히 어울리는 친구로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발베니 더블우드 위스키를 선택했다.

발베니 아메리칸 오크 12y

바테이블 너머의 마스터 또한 오며가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 대화와 술잔이 마를 틈이 없었다. 게다가 발베니 아메리칸 오크를 비교해보라며 권해주시니 배우신 분은 역시 다르다고나 할까.


혀와 머리가 모두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질 때가 바로 집에 갈 때다. 사실은 이미 만취 횡단보도 앞에 선 두 사람이 오늘 만났을 때 나누었던 악수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힘차게 다시한번 악수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그가 건넨 뜻밖의 연락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것을 허투로 넘기지 않고 소중히 대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뿌듯해진 날이었다.


한켠으로는 언젠가부터 나도 특별한 이유없이 안부를 묻기 위해 연락하는 일이 부쩍 줄었는데 한번쯤은 반성해봐야할 문제 아닌가 싶다.






바 올드 나이브스_성수: DJ가 있는 클래식 칵테일 & 위스키 바. 밝고 쾌활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 현재 1주년 기념 행사중이다. 잠실 송리단길 근처에 위치한 <라이언하트> 바와 사장님이 같다.


photo by ssuroooo


이 글은 비마프(BMAF)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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