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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인생 안될게 뭐 있나

Bar WHYNOT (바 와이낫)

나에게 있어 2014~5년은 바 투어의 해라고 해도 좋을만큼 바를 많이 다녔다. 그때는 절실하게 술과 말동무가 필요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지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필요했다. 평소라면 주저했던 단어들의 조합을 술김에 내뱉어도 안심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합법적인 곳은 내가 알기에는 BAR라는 공간밖에 없었으니까. 


술도 마치 의류처럼 트렌드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 혼자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 시기를 전후해서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칵테일과 위스키에 빠져 살던 시기였다. 되돌아보면 즐겨 마시던 술에도 분명한 나만의 사이클이 존재했다.


알코올 사이클

소주 > 와인 > 칵테일 > 위스키 >
크래프트 맥주 > 소주 > 와인... 

인생이 돌고 돌듯이 소위 말하는 꽂히는 술도 돌고 돈다. 물론 한 주종에 꽂혔다고 해서 다른 주종을 전혀 안 마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마시는 술이 그랬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마시는 주종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도 바뀌게 된다. 쉽게 말하면 "저는 소주는 못마셔요" 라던가, "아 나는 맥주는 배불러서 별로..." 라는 경우의 상대라면 아무래도 억지로 그 사람이 싫어하는 술을 고를 이유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식의 만남을 약속하거나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술 때문에 사람이 바뀌다니 참 웃긴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초반에는 주변에 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지인들이 많았던지라, 퇴근 후 대부분 혼자서 바에 걸터앉았던 것 같다. 오늘은 어떤 술을 마실까 곰곰이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혼자만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보면 오글거릴 것이 분명한 글귀라도 떠오르면 메모앱을 켜서 남기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해외의 친구들에게 낯간지러운 톡을 날려보기도 하며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들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조심스럽게 내 앞에 스윽하고 다가오는 술 한잔. 내일이 오기 전까지의 적적함을 채워줄 그 술 한잔을 들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마시기 전 뜸을 들인다. 


그렇게 한잔 두잔, 마치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듯 마시다보면 스리슬쩍 취기가 오르고 그 틈을 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어차피 정답이 없는, 아니 내가 내려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들의 답.


그때 바테이블에 놓인 술잔 밑,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WHY NOT"



바 와이낫: 한남동의 합리적인 서비스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위스키 바. 혼자서 슬리퍼와 운동복인 채로도 편하게 와서 술 한잔 하고 갈 수 있는 친근한 바가 되길 바란다고 했던 사장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강남역에 위치한 "원가바"와 사장님이 같다.




photo by ssuroooo


이 연재는 비마프(BMAF)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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