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편지 받을 일 없는 우편함에 연노랑색 종이가 꽂혀있었다. 모를 리 없는 종이가 괜히 낯설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초면인 셈이다.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세금 청구서. 그건 태어나서 처음 받는 것이었으니.
거슬러 올라가면 아홉 살 즈음인 것 같다. 어디서 온 건지 누가 보낸 건지 모를 희고 누르스름한 편지봉투들. 지금이야 문자나 푸시 알람 같은 한 손안에 볼 수 있는 도구들로 다 바뀌었지만 그게 물체의 형태로 오는 게 전부이던 때엔 조금만 부지런을 덜 떨어도 우편함은 만석이 됐다.
그즈음 맏이이자 이 집안의 첫 유졸자인 나에게 잡다한 소일거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거 별로 없다는 체험 삶의 현장의 시작이었다. 왜 엄마는 만화에서 중요한 장면 나올 때만 기다렸다 심부름을 시키는 걸까. 그 아홉 살이 커서 서른 된다고 달라지는 건 물론 없습니다. 세일러문이 맛있는 녀석들로 바뀌었다는 거 정도를 제외하면, 한층 더 교활하고 게으른 불효녀가 됐을 뿐.
우편함을 확인하는 임무도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다른 것 보다야 좋아하는 축에 속했다. 어쩔 땐 속을 뜯어보고 싶을 정도로 두툼하고 어쩔 땐 얇고 팔랑거리는 것들. 그걸 양손 가득 쥐고 배달하노라면 꼭 집안 대소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기분이랄까. 엣헴 내가 우편함 바닥까지 확인 안 했음 빠뜨릴 수도 있었단 말입니다, 예?
우편물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할 땐 버릇처럼 수취인을 일일이 확인했다. 편지 올 데도 없으면서 그랬다. 왜 진짜 혹시나 하는 맘 있잖나. 물론 열에 아홉은 다 클라이언트 2(=아빠)의 것이었다. 나머진 클라이언트 1(=엄마). 내 건 왜 없냐고 별 같잖은 소리로 징징거리면 엄마는 이게 좋은 건 줄 아냐며 웃었다. 그게 기억이 난다.
다시 돌아와 서울시 어느 원룸. 편지가 왔다. 바라던 바, 내 이름 세자 꽝꽝 박아서. 이거 안 좋아, 안 좋은 거 맞았네. 종이에 찍힌 숫자 때문에 쫄리는 건 시험 성적표 이후 간만이었다. '멋모르고 전기세 폭탄 맞은 썰', '가스비 10만 원 나온 썰' 같은 게 설마 내 얘기는 아니겠지, 구차하게 빌며 첫 청구서를 열었다. 전력공사에서 온 청구서엔 고작해야 커피 한 잔 값의 숫자 4개가 적혀있었다. 기분이 희한했다. 오롯이, 내 몫의, 홀로 지내며 사용한 전기에 대한 대가. 그렇게 독립 후 첫 한 달이 삼천 원가량의 돈으로 환산되었다.
독립하면 새사람 될 줄 알았다. 당연히 안 됐다. 누가 그러던데, 게으른 사람은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새로운 게으름뱅이가 될 뿐이라고. 물리적 장소는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여전히 비슷한 패턴의 비슷한 일상. 달라진 건 그거 하나였다. 이제는 그 일상을 유지하는 대가를 스스로 지불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익숙한 낯선 종이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었다. 새삼 독립이 실감 났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세대주가 되었구나. 환영한다, 1인 가구의 가장이 된 것을.
매월 도착하는 청구서가 이제는 익숙하다. 우편물과 메신저로 이달 사용 요금이 날아오면 어김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니, 지난달에 좀 뜨끈뜨끈하게 살았기로서니 가스비가 이렇다고? 어떻게 줄여야 하나 핸드폰으로 '가스비 절약법' 같은 걸 검색하며 머리를 굴리는데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한겨울에 보일러 온도 올릴 생각은 않고 온 집안 식구 발에 수면양말 끼워 넣는 사람. 그러면서도 기침 소리 조금만 나면 세상에서 가장 호들갑을 떠는 사람. 이번 주는 본가에 가야겠다. 아직까지는 나를 절약하지 않아도 되는, 지구 상의 유일하게 하나 남은 안전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