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빌라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벌레와 마주쳤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크기를 하고선 배를 발랑 깐 걸 보니 죽은 상태인 듯했다. 아니, 왜 아침부터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반가운 발견은 아니라 목 뒤가 좀 근질거렸다. 퇴근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던 벌레는 다음날 아침 사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닥이 덜 마른 물기로 축축했다.
엘리베이터에는 건물주 할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쓰고 붙인 종이 한 장이 있다. 한 번은 내용을 바꾸실 줄 알았더니 벌써 1년째, 같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건물주를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는 좀 유별나다. 이 건물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야 하나. 안내문이 그 애착의 증거. 전지 반 정도 되는 지면 빼곡히 문단속을 잘하길, 음식물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길, 지정 주차만 하길, 엘베에선 이웃 간에 서로 인사도 하며 지내길 바란다는 당부가 무려 8번까지 적혀있다. 입주민 안내문도 이렇게 사람 귀 따갑게 만들 수 있는 거였나. 투박하고 삐뚤한 글씨가 어쩐지 명절날 어르신들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 같아서 귀엽고 웃기다. 당부의 말씀 끝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건물 청소는 일주일 3회 하고 있읍니다
이따금씩 좀 이른 출근을 할 때면 고요한 빌라의 유일한 인기척을 맞닥뜨리곤 한다. 몇 층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퉁, 탁, 퉁, 탁 하는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문득 바닥을 내려다본다. 오래된 타일이 물기를 머금어 모래사장처럼 빛나고 있다. 그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반짝임.
무언가를 보여주고 드러내고 자랑하는 게 미덕인 세상에 살다 보니 자주 잊는다.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 대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자정을 넘긴 밤 도로에 울리는 청소차의 소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듬어지는 가로수 같은 것들. 자신의 일을 자랑하지도 드러내지도 않고 하루치의 성실을 기어이 해내는 수많은 이들이 만든 세상.
그러니 화려한 빛을 내는 것들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기로 한다. 그게 정답이라고 오해하지 않기로 한다. 쉽게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꾸준하고 성실하고 작은 것들. 그런 것들을 어여삐 여기기 위해 마음이 불투명해지려 할 때마다 닦아 내기로 한다. 투박한 글씨로 내 마음에 적어본다. 일주일 일곱 번씩, 나는 나를 깨끗이 청소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