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상우 Aug 20. 2024

여름 같은 40 Part.1

미술 학원을 마친 아들과 함께 집에 가는 길에 아들이 나에게 아파트 단지에 피어 있는 분홍색 꽃의 이름을 물어봤다.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철죽을 진달래라고 엄한 대답을 해주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아들에게 해주었다.

개나리가 피면 봄이 시작하고 진달래가 지나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면 철죽, 철죽이 지나면 라일락 그리고 아카시아, 장미가 피고 그러면 여름이 찾아 온다고........

40년을 살아오며 꽃에 관하여 참 무관심한 삶을 살았던 내가 꽃과 시간의 흐름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던가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평생을 꽃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무의식 속에 그 존재의 씨앗을 뿌려 깊은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꽃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꽃이 피면 정말 단순하게 '꽃이 폈구나.', '꽃이 피는 계절이니 어디 나들이를 가야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나에게 시간 흘러간 그 자리에는 꽃이 흩 뿌려져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은 베란다 창문 바로 앞에 큰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있는 1층 아파트로 이사 온 3년전, 갓 40에 접어들었던 시기 인 것 같다. 여름 내내 화려하게 피웠던 꽃이 다 져버린 가을에 이사를 한 나는 처음에 집 앞에 있는 나무가 어떤 것이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나무에 하얀 봉우리가 생기는 것을 보고 목련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해는 정말 알게만 되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던 거 같다.  



1년이 지나고 그 다음 1년이 돌아와 다시 나무 가지 위로 하얀 꽃 봉우리를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목련이 피려고 하는 것을 보니 봄이 오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한 1년을 또 보내고 그 다음 1년 부터 마치 산 속 꽃이 핀 계곡 바위에 앉아 강으로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듯 꽃을 보며 시간의 냇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집 앞 목련이 피면 우리에게 봄이 찾아올 것이다. 목련이 떨어지면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면 곧 화단 곳곳에서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아카시아, 장비 그렇게 꽃들이 피고 지면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찾아 올 것이다. 짧지만 혹독한 여름 더위와 싸우며 주변에 어떠한 꽃이 피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지치고 탈진이 될  쯤 길 양 옆으로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가을이 왔음을, 그리고 곧 추운 겨울이 찾아 올 것임을 알려 줄 것이다.


꽃이 피고지는 1년을 보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한 봄 기운을 느끼며 땅 위로 올라오는 푸른 새싹처럼 태어난 아이들이 맑고 생명력이 가득한 개나리, 진달래 같은 작고 수줍지만 그 어느 꽃보다 선명하고 힘있는 어린이 시절보낸다. 그리고 언제 졌는지 모르게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나면 아름답게 피어 흩날리는 벚꽃처럼 때로는 꽃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질풍노도의 꽃 바람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누구에게도 잘 잡히지 않는 꽃잎 처럼 자유분방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정신없이 한바탕 분홍 봄 꽃 축제가 끝나고 나면  향기롭고 싱그러운 아카시아, 라일락 같은 20대의 청춘을 맞이한다.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설레이고 향긋한 10대, 20대가 지나고 나면 색과 모습만 봐도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며 생동감 있는 장미 같은 30대가 시작된다. 장미의 원색적이면서도 강렬함 처럼 꿈과 열정으로 30대가 지나가면 한 낮의 폭염과 한 밤 중의 열대야가 반복되는 여름 같은 40대가 찾아온다.



작가의 이전글 자각자능(自覺自能)_Part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