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소댕 Jun 29. 2024

This City

The city of ...

많이 어설펐던 대학생 시절 대전의 교외에서 자란 첫 남자친구였던 H가 무심코 해줬던 말이 있다. 일곱살 무렵 대전 시내에서 7층짜리 높은 건물을 보고 처음으로 큰 빌딩을 봐 놀랐다고 했다. 그 말이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여태 기억에 내리 남는건지.


도시는 많은 것을 담고 있어 누군가에게는 녹진한 사연을, 누군가에는 어두운 골목의 공포, 또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무언가를 의미한다. 6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서울은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익숙해서일까 얼마나 큰 규모인지 잘 체감이 안나곤 한다. 브롱스와 브룩클린을 포함한 뉴욕시티 전체라고 해봐야 서울보다 1.3배 정도 크달까. 인간은 어디선가 가장 작은 규모의 사회구성인 '어느 동네' 부터 시작하고는 하는데, 이것이 곧 고향이된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마포구 성산동과 상암동을 오고 가며 자랐지만, 스무살 성인 나이를 훌쩍 넘은 지금은 학창 시절을 대부분 보낸 뉴질랜드라던게, 이십대 대부분을 보낸 뉴욕이 오히려 친숙한 곳이기 때문에 고향이라는 곳이 있긴 할까 의문이다.


시드니도 호주의 최대 도시라고 알려져있지만 모든 유학생과 워홀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생각보다 '심심하다.'고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아름다운 미항 도시인 건 분명하지만, 시드니의 매력은 교외지역이지 도심이 아니다. CBD는 말그대로 금융과 상업 지구의 역할을 할 뿐 대부분의 카페는 2, 3시면 문을 닫고 쇼핑센터 또한 5시에 닫으며 직장인이 없는 주말에는 오히려 황폐한 느낌이 들 지경이라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우리는 당황스럽기 마련.


내게 정말 '도시'란 느낌을 준건, 뉴욕과 런던, 파리, 도쿄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 힐러리 더프의 Wake Up 노래 가사 중 '뉴욕일 수도 있고, 할리우드나 바인, 런던, 파리, 도쿄 일 수도 있겠지' 라는 구절에 서울을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넘치는 인구로 인한 에너지의 들끓음, 그리고 그 이면의 쓸쓸함은 서울 또한 다른 메트로폴리스에 견주어 겸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 도시, 내 고향이지만 뭔가 이질적인, 그리고 친해질 수 없는 느낌은 그 폭팔적인 변화와 감정이 내게는 너무 벅차다.


시드니는 나에게 조금 친절했을까. 한국인의 급한 성질에는 조금 답답할 지 몰라도 이 도시는 여유로움이라는 게 존재한다. 급한 걸음으로 재촉하는 콘크리트 정글의 샐러리맨도 출퇴근 시간 지하철 2호선의 갑갑함도 이곳에는 없다. 다들 한 걸음 물러서서 낯선 이가 먼저 가도록 배려를 하는 마음의 여유. 그래서 이 곳에 살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바쁜 생활 속 모든 스케줄을 다 소화냈다는 쾌거가 아니라, 나와 나의 가족들, 내 친구들을 소중히 돌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기에. 도시의 생명은 인구 수 만큼 무한하지만 인간 개인의 생명은 짧기에 내 인생을 작은 규모로 꾸려나갈련다.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쓴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