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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댕 Dec 27. 2023

워홀을 하다 이별을 했다.

궁상맞게 딸기따다 챙이 넓은 모자에 숨어 눈물을 주르륵 할 때의 심경이란

속으로는 진짜 엄청 찌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새벽 세시에 열 두명이 함께 쓰는 쉐어하우스에서 우당탕거리며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데도

계속해서 지난 밤의 대화를 곱씹다가 세삼 비참해졌다.


'너는 너대로 행복하게 살아.'

'나 너를 좋아하지 않는거 같아.'


이게 말이야 방구야. 진짜 사람한테 이렇게 배신당해보기도 오랫만이다.

불과 두달전에는 바람폈다 걸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결국은 이모양이 되어버렸다.

연애의 참견에서나 보던 사연들처럼 어플에서 만난 여자애가 먼저 눈치를 채고 DM을 보내오더라.

통화까지 끝냈다. 그러고도 추억에 사랑에 못이겨 정말 흔해빠진 연애처럼 또 용서해주고 만나다 이런 엔딩으로 2년의 연애는 끝이 났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을 오지게도 당한 거 같은데 망할 놈의 마음 여전히 구멍이 숭숭난거 같다.

내가 잘못한건 사랑을 너무 많이 줘버린거 같은데.

그래. 잘지내. 라고 쿨한 척했지만 추억이 차오르면 어쩔 도리없이 눈물만 줄줄 흐른다.


진짜 최악의 상황.

전투적으로 딸기를 따야 이번주 방세를 낼텐데, 날은 왜 이렇게 덥고 망할 트롤리는 왜 이렇게 안 끌리는 지. 

주변에 보는 눈들은 많고 같은 방쓰는 룸메이트 H의 눈치가 보여 소리내 엉엉 울어본 적도 없다.

그나마 슈퍼바이저의 눈 피해 딸기따면서 눈물만 도르륵 흘린다.


딸기따는 트롤리. 엄청 무겁다. 삐걱거리는 바퀴를 열심히 방향 조절해가며 딸기 픽킹을 해야한다.


내려간 커플 프로필 사진 때문일까 농장일 하는 딸이 괜찮은지 오랫만에 통화한 엄마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냥 그렇게 됐어.' 라고 답했다.

딱히 살가운 딸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혼자 해내는 게 익숙해 감정내비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냥. 우리집 고양이들이 너무나 보고싶다'고 하니, '그래. 어쩔 수 없지.'라고 답한다.

짧은 대화지만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래도 나에겐 나를 몇 번이고 믿어주는 가족들이 있어.


그래서. 그러니까 아직도 진심으로 너의 행복을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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