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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댕 Dec 27. 2023

그래서 블루베리는 어떻게 따는건데요

워홀의 실체는 이런건가요.

블루베리 나무 잔가시가 손에 박혀 빠지지 않는건에 대하여.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워홀 경험을 여자 회원의 감점 요인으로 본다고 한다. 근데 그게 왜?

당연히 세상만사 복잡한 이런저런 사유가 있겠지만 농장에서 과일 따던게 마이너스라면 살짝 억울해진다.

36도까지 치솟는 날씨에 무릎꿇고 '썬라이즈 제리카' 나무를 열 몇 시간씩 땄다거나,

카불쳐 일명 '헬불쳐'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는 곪아버린 물 웅덩이에 빠져가며 새벽 4시에 딸기를 딴다거나 하는 경험들은 오히려 우리 워홀러들의 인내심과 굵은 심지에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 않을까?

잔나무 가시가 박힌 손은 크고 작은 생채기가 잔뜩 생겨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 안소댕 만 서른살됐지만 아직 뗑깡을 못 버리는 중.


크고 나니 누구보다 평범했던 한국인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유학생 신분을 벗어나고 나니 외국경험이 있는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

매일 아침 9시 선릉역 10번 출구 아이티회사에서 스크럼 회의로 근무를 시작한다.

정시에 도착하는건 과장님 눈총 받기 좋기 때문에 사당역에서부터 밀리는 출근 인원 체크 후 항상 삼십분 전 도착하는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해주는 일층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은 필수.

조금 피곤한 날에는 더블 샷. 아니면 작은 플렉스로 한잔 더 시켜본다.

개발자의 유일한 복지라면 적당한 캐주얼 차림이 용서가 된다는 것. 벌써 몇 년째 휘뚜루 마뚜루 신던 토앤토 쪼리를 분주히 움직여 오전 미팅, 오후 미팅 분주히도 다녔다. 




알고 보니 친구 대학 후배님이였던 H님.


옆집 사는 H님은 놀러올 때 양손 가득히 무언가를 들고 온다.

가장 큰 사이즈의 락앤락 통에는 새벽부터 분주히도 만든 닭갈비라던지 라이스 페이퍼로 감싼 꿔바로우라던지가 들려있다. 중국까지가서 배워온 중식은 거를타선없이 맛있고, 반주하라며 가지고 나온 바삭 구운 토스트와 요거트 디핑은 정말 환상적이다. 캐드버리 초콜릿은 맛 별로 구비해둔 덕분에 저녁 늦게 안주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사람 좋은 미소와 둥글둥글한 체형. 정감있는 동네 정육점 아저씨 비주얼로 바게트집 사장님이 꿈이란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샤워를 하고, 보라빌 작은 시골마을 산책도 하고 제일 분주한 분.

호주와서는 브리즈번 도축공장에서 일해봤는데, 생각보다 돈도 되고 괜찮단다.

'베리는 베리다.' 라는 주옥같은 멘트를 날리며 블루베리 팜을 떠나갔다.



이별은 전염이 되는건가.


'언니, 저 헤어졌어요.' J가 얘기했다. 얼굴이 뽀얗고 항상 앞장서서 남들 앞 접시고 음식이고 챙겨주던 아이다. '어쩌다.' 라고 물었는데, 역시나 '그냥 그렇게 되었다.'라는 답을 듣고, 운명의 장난인지 그 다음날 나도 헤어졌다. 서로 어이없어서 울다 웃다했다.


같이 강이 잘 보이는 까페가서 한풀이하다 뒷담도 조금 까다(?) 한국에 좋은 기회로 좋은 곳에 취업하게되어 급하게 떠나가더라. 이렇게 짧게 만나 깊은 얘기를 하게된 사이가 얼마만인데 너무 아쉽더라. 항상 예쁜 언니 예쁜 언니 해주던 친구가 떠나가니 내 마음 한조각 같이 보낸 느낌이다.



이거 놓으세요! 이빨로 문 거 놓으세요!


인천의 모 대학병원 간호사였던 D님은 주근깨 많은 다람쥐가 연상되는 외모에 은은하게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 블루베리 버켓을 호도도독 호도도독 떨어트리면서 걸어오는게 어찌나 웃기던지. 병원에서 카리스마 넘치게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 도무지 연상되지 않는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다 함께 식사를 하다 병원에서 만난 이상한 환자 얘기를 하다가 동료 간호사가 환자에게 팔뚝을 물려 응급실에 갔던 썰을 풀어주는데 파스타가 코로 나오는 줄 알았다.


'이거 놓으세요! 이빨 놓으세요!' 단호하고 강단있게 말해야 했단다. 그리고 응급실에 실려간 간호사의 진단명은 '휴먼 바이팅'.




그래. 이런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그슬린 얼굴로 농장 밭 한가운데 땡볕을 피해 그늘 숨어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까먹는다. 바켓을 두개 뒤집어 의자로 쓰고 테이블로도 쓴다. 호주 쌀알을 찰기가 부족해 볶음밥으로도 으레 잘 부스러지지만 빵이나 아보카도은 매우 신선하고 꼬슬하다. 슬쩍 농장주랑 눈이 마주치는 때에는 괜히 베시시 웃어보인다. 몇 달전만 해도 압구정 꽁티드 뚤레아에서 브런치를 먹었다느니 이런 투정 부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곳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바누아투인 등 모두가 동등하고 공평하다.


블루베리를 가장 잘 따는 사람, 일명 탑피커들은 손가락에 자석이라도 달렸다 손만 대면 블루베리가 당겨져 나오는건지 어이가 없을 정도. 심성도 착해 가르쳐달라면 다 성심성의껏 알려주는데 도대체 어떤게 하는거요? 손에 잔뜩 박힌 잔가시가 곪아 터져없어져 버릴때까지도 여전히 난 블루베리를 잘 따지 못한다. 사회에서의 능력이나 성실도 이런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고, 오른손으로 따면서 왼손은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찰과 근육통만 늘어가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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