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탈독점화는 내가 임의로 만든 개념이고 립스틱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계열의 한 갈래라고 보면 된다. 립스틱 페미니즘에 대해서 부정하는 편이지만 지독한 얼빠로서 미인 탈독점이 립스틱 페미니즘을 지지할지 부정할지 궁금해서 이 글을 쓴다.
미인 탈독점은 내가 만든 개념이다. 혹시 누군가 이것을 쓰고 싶다면 출처 송시원이라고만 하고 마음껏 쓰면 좋겠다. 인용됨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미인 탈독점의 원래 이름은 미모의 민주주의였다. 이것의 의미는 과거 권력자나 부자들만 미인을 보고 그들과 결혼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미인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왕권정치 체제에서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한 것처럼 권력자만 보던 미인을 우리도 인터넷으로나마 볼 수 있으니 미모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민을 지배하는 형태, 즉 지배와 피지배가 일치하는 정치 사상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잘 담을 수 없기 때문에 ai와 대화를 나눈 끝에 미인 탈독점화로 이름을 바꿨다. 누군가에게서 독점되었던 미인을 평범한 대중도 볼 수 있어서 그 의미를 잘 담았다.
립스틱 페미니즘은 여성성을 긍정해서 아름다운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니 여성성과 성적대상화를 긍정하는 것이 여성권리를 신장하는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한 분파이다. (출처: 나무위키) 나는 이것에 대해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배라함은 지배자가 손쉽게 피지배자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립스틱 페미니즘식으로 남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 일단 매우 아름다워야 한다. 타고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매우 크다. 얼굴 관리 하려면 화장품을 사고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한 번 맞으면 20만원 정도 나온다. 화장품은 조그만 틴트 하나에 1만원은 가볍게 한다. 올리브영에서 그정도가 이제 기본이다. 백화점 브랜드로 가면 얼굴에 몇 십만원은 얹져야 한다. 혹은 성형을 해야하는데 무궁무진한 돈이 든다. 대략 300만원부터 시작해서 억까지 갈 수 있다.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려면 돈이 더 든다. 살이 없어야 하지만 가슴과 엉덩이는 나와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근육이 많아서 덩치가 커보이면 안 된다. 근육운동을 하지 않고 살을 빼기 위해서 하염없이 굶어야 한다. 피티를 받으면서 진행하면 100만원은 깨고 시작한다. 그렇게 살을 뺐는데 허벅지나 팔뚝에 지방이 죽어도 안 빠지거나 가슴과 엉덩이가 빈약해지면 성형외과에 가서 수술을 한다. 그렇게 돈이 또 든다. 대략 겉모습만 갖춘다고 해도 돈, 시간, 노력이 엄청나게 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가꾼 미모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배당할 남자를 찾아야 한다. 그 남자는 당연히 돈이 많아야 한다. 립스틱 페미니즘의 논리대로 보자면 이렇게 꾸며서 남자가 나한테 돈 바치고 사랑하는 게 여성의 인생에서 좋은 것이니 당연히 돈 많은 남자를 찾아야 한다. 과연 그 돈 많은 남자가 미모를 인정해서 그것을 돈으로 교환해줄 것인가? 아쉽게도 사람들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어느 정도 취향이 있다. 고양이상 미인이 좋다, 가슴 왕 큰 여자가 좋다, 뼈말라가 좋다, 근육질 여자가 좋다 등 사람의 취향은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 미모 가꾸기 단계에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미모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서 그 남자에게 돈과 감정적 지지, 로맨스를 얻고 행복해지면 립스틱 페미니즘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서 받은 게 있으면 그만큼 해야하 것이 많다. 그리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상대를 만나기 위해 쓴 돈, 시간, 노력을 보상받기위해 돈, 선물, 사랑을 강제로 요구할 수 없는 법이다. 연인 관계는 계약관계와 달라서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슈가대디를 만나면 돈은 받을 수 있겠지만 그 관계에서 진정 강한 자가 누군인지 생각해야 한다. 돈을 주는 자는 언제든지 돈을 수거할 수 있다. 립스틱 페미니즘의 진정한 남성 지배를 달성할 수 있는 여자는 최면술사이거나 능숙한 심리학자일 것이다. 결국 관계에서 내어주는 자의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서 미모라는 재화가 돈과 사랑, 지지로 교환될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미모는 권력자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권력자의 도구인 돈은 누구에게나 통한다. 빵을 사먹기 위해서 돈을 내면 그 돈이 구겨져있든 낙서가 되어 있든 간에 빵가게 주인은 마다하지 않고 빵을 내어 준다. 아주 쉽고 빠르게 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돈의 성질이다. 하지만 미모로 빵을 얻기 위해서 그 미모를 가치있게 평가하는 빵가게 주인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 많고 많은 빵가게 주인 중에서 미모를 인정하고 빵을 줄 한 빵가게 주인을 찾아야 한다. 마치 물물교환 시대의 어느 한 사람처럼 내 감자를 쌀과 바꿔줄 한 사람을 찾는 과정과 같다. 그 결과 인류는 돈이라는 무적교환수단을 만들었다. 미모는 아무리 꾸며도 감자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으로 환급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립스틱 페미니즘이 현실성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빠의 자세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소비하며 그들이 하는 광고도 보면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돈을 벌어다 주자 나는 느꼈다. 지금 시대에서 립스틱 페미니즘의 설득력이 상당히 높아진 것이다. 미모가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편재성을 얻게 되면서 미모의 환급성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지고 미모의 소유자인 미인의 권력 또한 높아진 것이다. 미모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았던 시기에는 미인은 한 사람의 권력자 혹은 부자에게 의존해야 했다. 미모에 대해 돈과 재화를 제공할 사람이 여러 명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명에게 미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했고 여성의 경우 강력한 일부일처제로 인해서 여러 사람에게 미모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소수만이 미인에게 돈과 재화를 주자 미인은 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름다움은 인터넷을 타고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온리팬스를 통해서 아름다운 사람을 볼 수 있게 그에게 작은 돈이나마 보낼 수 있다. 미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미모가 취향인 사람을 만나기 쉬워졌다. 또한 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돈 주는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줄었다. 전세가 역전되어서 아름다움을 공급하는 미인이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연예인들이 받는 막대한 출연료, 광고료, 혹은 인플루언서가 벌어드리는 광고료와 사업수익을 생각하면 지금은 미모의 전성시대다. 미모가 소수 권력자의 독점에서 벗어나는 순간 미모의 환급성이 높아졌고 돈을 벌게 되었다. 이것은 립스틱 페미니즘의 주장과 맞아 보인다. 실제로 해외에서 온리팬스를 통해서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버는 인플루언서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인 탈독점화는 립스틱 페미니즘을 지지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여자의 권리신장을 위한 운동이자 사상이다. 하지만 립스틱 페미니즘은 전제로 아름다움, 성적 대상화로 여성이 권리를 얻을 수 있음을 주장한다. 여성이라서 권리를 얻는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조건이 붙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돈을 벌 정도로 아름답지 않다. 그게 됐으면 당장 나부터 인스타그램 라방을 키고 공구하고 솔로지옥에 나가서 한 탕 거하게 땡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그만큼 립스틱 페미니즘은 제약사항이 많은 것을 여성의 권리 신장이라고 주장한다. 대다수의 여성이 할 수 없는 것을 권리 신장이라고 주장하는게 페미니즘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립스틱 페미니즘은 나무위키를 구경하다가 발견한 이론이다. 나름 페미니즘 관련해서 책도 읽고 수업도 들었는데 처음 보는 개념이라서 한 번 찾아봤었는데 그것으로 글이 하나 나와서 기쁘다. 요새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잘 안 썼는데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꾸준히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