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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12. 2016

알고 가면 더 재밌는 제주도 (1/2)


3번째 방문하는 제주도.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혈기왕성한 나이에 전문 장비도 없이 자전거만 달랑 배에 싣고 일주일간 제주도를 달렸다.

5년전,

소울메이트 친구와 파란 화살표를 따라 하루 종일 올레길을 걸었다.

오늘,

이젠 자전거를 탈 힘도, 오랫동안 걸을 지구력도 없는 나이가 되어 자동차를 렌트해 다녔다. ㅠㅠ

감사하게도 비수기라 소형보다 저렴하게 중형 세단를 빌릴 수 있었고,

아시는 분의 소개로 숙소도 무료로 사용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인복을 빼면 무엇이 남으랴!)

하지만 이번 여행에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홍준 교수님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최근에 나온 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이다.

이 책을 통해 제주도의 깊고 진한 역사와 문화와 정서를 가슴에 품고 제주도 땅을 밟을 수 있었고, 실제로 책에 소개된 곳들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아는만큼 보이고, 느끼고, 밟게 되는 것이 여행의 퀄리티라면, 이번 여행은 아주 순도 높은 여행의 멋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진한 제주도의 향기를 맡보고 싶다면 꼭 이책을 읽고, 아니면 읽으면서 가길 권한다. 



#1. 만장굴


이번 여정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만장굴이다. 그동안 제주도에 와서 한번도 굴을 간 적이 없다. 굴에 대해 특별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이제는 안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계문화유산은 제주도 전체가 아닌 '한라산'과 이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가 등재된 것이다. 만장굴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곳인데 일반인들에게는 1Km정도만 개방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거문오름'에서 시작되어 13km를 흘러 바다까지 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중간 중간 무너지고 끊어져서 각각의 동굴들을 합쳐서 용암 동굴계로 불린다. 이 엄청난 동굴의 길이는 세계에서 4번째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이처럼 대단한 용암 동굴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장굴의 입구는 나무숲 사이로 난 구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동굴 안은 작은 조명들로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동굴의 높이와 넓이는 상당했고, 갈 수 있는 끝부분에는 광장같은 크기의 넓은 공간이 펼쳐저 있어 신기했다. 웅장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자꾸만 그 수만년의 세월을 상상하게 만들며, 내 동공을 확장시키는 것만 같았다.
이 동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1946년 부활절날 근처의 김녕초등학교 '부종휴'선생님이 처음 이 동굴을 발견하셨는데, 발견하시고 난 후에 초등학교 학생들로 탐사팀을 꾸려 동굴을 조사하셨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게다가 부종휴 선생님은 결혼식도 이 동굴에서 했다고 하니, 얼마나 이 동굴을 아끼고 사랑하셨을지 그 마음이 따뜻하기만 하다. 



#2. 한라산의 미소


원래는 제주도에 와서 가장 먼저 한라산을 가려고 했다.

두 번 제주도에 왔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한라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제주도 여행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 있기도 했고, 그것 보다 더 큰 이유는 유홍준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한라산 '영실 코스'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주10경에 들 정도로 옛 선인들때부터 그 풍경이 남달랐던 영실코스...

영실코스는 한라산의 백록담까지 가는 코스는 아니다.  윗세오름까지 갈 수 있고, 가는 길에 펼쳐지는 오백장군봉과 진달래, 철쭉, 구상나무들,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레인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안 좋다. ㅜㅜ 

무리해서 갈 수 있는 시간도 넉넉치 않았고, 등산 장비도 없다. 

안전과 여러가지를 따져봐도 이번에는 무리다.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아~ 이 준비성 없는 나의 여행이여... 그래도 다시 올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니 후회는 말자. )

다음에 제주도에 온다면 아마도 한라산 영실코스가 나의 첫 목적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라산을 머리속에서 지워갈때 쯤이었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서귀포시 중문쪽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데로 가다보니 한라산 성판악 코스의 입구를 지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한라산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한라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한 방에 날릴만큼 한라산이 사랑스런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들로 시야가 자꾸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고, 구불구불 내리막 길이라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내리막길 끝자락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잠시 세워 두고 등 뒤의 한라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하루에도 12번씩 바뀌는 제주도의 날씨에 이렇게라도 한라산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다는게 참 감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데 어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제주도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큰 어른같은 한라산이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3. 송악산


제주도에서 만난 학교 선배 누님이 강력하게 추천해 준 곳이 '송악산'이다.

입장료를 받는 섭지코지보다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송악산이 훨씬 더 좋았다는 진심어린 간증에,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눈 앞에 보이는 악어 머리처럼 해안가에 툭 튀어 나와 있는 '송악산'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바로 송악산으로 향했다.

저녁 6시 즈음 이었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제주도가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고 불리는데, 지금 그 바람을 만난 것 같다. 반갑기도 했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반갑게 우릴 맞아 주는것 같지는 않다.  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엄청난 체감 추위를 느끼게 해 주었다. 


'송악산'은 소나무가 울창하다고 해서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려졌다고 하는데, '절울이 오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이곳에 더 잘 어울리고 정감이 가는 것 같다. '물결이 운다'는 뜻인데 이렇게 강한 바람을 타고 파도가 부딪치니 그 소리가 제주도의 모든 아픔을 대신 전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산책로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게 해안쪽의 동굴같은 것들인데, 이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해 파놓은 진지동굴들이다. 이러한 동굴은 성산 일출봉에도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새겨진 파괴적인 상처들은 여전히 저렇게 남아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물결도 저리 울게 만드나 보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그대로 투영시켜 주는 듯하다.

왼쪽으로는 '산방산'이 우뚝 서 그 위용을 뽐내고, 그 옆으로 '형제섬'이 사이좋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오름 분화구와 함께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볼 수 있는 곳이라 하니, 제주도에 이보다 멋진 곳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성난 바람의 거센 저항으로 정상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슬플 때 와서 물결과 함께 울고, 기쁠 때 와서 바람에 몸을 맡겨 춤을 추고 싶은 애틋한 장소로 마음에 곱게 심기어 둔다.



#4. 다랑쉬오름


제주도에는 330여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곳은 동부지역에 있는 '다랑쉬오름'이다.

오전 9시에 주차장에 도착 했는데 이게 무슨일인지, 아무도 없다!!

요금이 없는 곳이기에 매표소도 없고, 입구로 바로 직행한다.

다행히 날씨는 아주 화창하다.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코스이지만, 가파른 구간이 꽤 있어서 정상에 오를 때 쯤엔 온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10분쯤 오르다보면 가장 먼저 눈앞에 펼쳐지는게 '아끈다랑쉬오름'이다. 일명 '새끼다랑쉬오름'으로 다랑쉬오름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 있다. 아주 낮기 때문에 정상의 굼부리(오름의 분화구)까지 그 모습을 쉽게 허락해주는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다.

'다랑쉬오름' 정상에 오르면 굼부리를 중심으로 한바퀴를 돌 수 있게 길이 연결 되어 있다. 360도로 펼쳐지는 정상에서의 풍경은 나의 모든 오감을 사방에서 압도한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최고로 손에 꼽을 만한 풍경이다. 날씨가 좋아 멀리 있는 수많은 오름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나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올록 볼록 솟아 있는 오름들은 마치 수많은 병아리들이 어미닭을 쫓아 다니듯 한라산 주위를 빙빙 둘러싸고 있었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면 '아끈다랑쉬오름' 저 너머로 성산 일출봉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보진 않았지만 미국의 '모뉴먼트밸리'가 생각 난다. 과연 붉은 대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뉴먼트밸리'와 각종 오름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성산 일출봉', 둘 중 누가 더 멋지다고 할 수 있을까? 비교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다랑쉬오름의 굼부리는 상당히 크고 깊어 보인다. 깊이가 한라산 백록담과 같다고 하니 오름치고는 굉장한 분화구를 가진 셈이다. 출입금지구역이라 내려가 볼 수 없었는데, 굼부리 저 밑에서 마음껏 뛰노는 동물들은 '자유출입허가증'이 있나 보다.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기보다 한마리의 사슴이 되어 함께 뛰놀고 싶은 헛된 바램도 가져보게 된다.

볼 것도 다 보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건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다 담아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만족할 수가 없다. 이 감동을 다 담아가려면 마음의 창고에 큰 자리 하나를 비워놔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오늘 이 시간, 이 곳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나 뿐이라는게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이 특별함을 위안삼아 아쉬움을 잠시 잊고, 다시 평범한 지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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