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어떻게?' 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왜?' 라는 질문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보면, 좀 더 본질적인 생각을 준비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그라들고 더 큰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몰려 올 수도 있다.
여행에 당위성을 제공할만한 그럴싸한 이유들을 많이 만들 수도 있고, 때로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이유를 다 알고 떠나는 것만큼 끔찍한 여행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완전함과 모호함의 혼재 속에 여행의 긴장감과 설레임은 극대화된다. 준비된 것과 또 준비되지 않은 즉흥성이 빚어내는 케미가 바로 그 여행의 즐거움의 크기이지 않을까?
혼자하는 여행은 이 여행의 즐거움을 날 것 그대로 마주하게 되기에 두려움도, 긴장감도 배가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주나 부산에 갈 때에는 버스가 호남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이 길은 별 감흥이 있는 길이 아니기에 책을 보거나 잠을 청하며 이동하곤 했었다. 그런데 강진으로 향하는 버스는 서해안 고속도로로 그 방향을 잡는다. 고속도로의 탄생은 우리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교통혁명을 일으켰지만, 서해안 고속도로 만큼은 낮은 가드레일과 넓은 시야를 제공하며 시간과 마음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곳이다. 어느순간 버스는 광대한 평야를 가르며 달리고 있다. 아름다운 창 밖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 그 중에서도 동진강변 김제평야쪽인듯 하다.
떠나는 길 위에서 서서히 떨림과 설렘이 부풀어 오르며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준다.
아침 일찍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를 타고 백련사로 향한다. 버스 안에는 군인들만 한 무리가 있을 뿐, 그들이 부대 앞에서 다 내리고 나니 혼자만 남는다. 혹시나 아직도 갈 길이 먼 이 버스의 마지막 승객이 나인건 아니겠지?라는 불길한 생각이 엄습할 때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고, 아무도 남지 않은 빈 버스에서 내리는 발걸음이 괜시리 미안하기만 하다.
다행히 날씨가 너무나 좋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푸르른 산과 나무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고, 있는 그대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눈 앞의 만덕산을 바라보며 잘 닦인 아스팔트 길 위를 토닥토닥 걷다보면 어느새 하늘과 기와 지붕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너와 내가 만나게 되는 지점. 그러한 지점이 있다면 여기가 그곳이지 않을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매점의 문도 자물쇠로 꼭 잠겨 있고, 어떠한 인기척도 없다.
청명한 아침의 기운을 받은 백련사는 빠르게 현대화 되어가는 듯 하다. 각종 문화체험을 위한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씁쓸하게까지 다가온다. 고즈넉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약숫물을 한사발 들이키며 만덕산과 백련사의 숨결을 몸 속으로 전달해 본다. 시대가 변하고 건물이 변해도 이 깨끗하고 시원한 물만은 변치 않기를 바라게 되는 그런 맛이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길이 좁아 마주오는 사람과 옷깃을 스쳐야지만 지나갈 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 같아 반대로 마음은 넓어지는 길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좁은 이 길이 참 마음에 든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좁은 길에 두 개의 정자를 만나게 된다. 먼저는 '해월루'이고, 다산초당에 다 다르면 '천일각'이 나온다. 두 곳에서의 풍경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비슷한 조망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해월루'에서는 가진자의 여유를 품은 채 야망과 도전의 기개가 솟아나는 기분이 든다면, '천일각'에서는 멀리 계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희미해져가는 희망, 삶의 막막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다산과 나란히 앉아 있는 상상에 젖어 이념과 사상의 유배객이 되어버린 정처없이 떠도는 미약한 나 자신의 삶도 한 껏 뒤돌아보게 되는 곳이다.
'천일각'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들어서면 두개의 현판이 눈에 들어 온다. 진품은 아니지만 추사 김정희의 글씨(보정산방)와 다산 정약용을 글씨(다산동암)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함께 걸어 놓았다.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성품과 삶 까지도 느낄 수 있을만큼 자신을 그대로 투영한 서체의 글자들이다. 나란한 두 사람의 글씨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지금은 그 이름과 명성에 걸맞게 정갈하게 지어져 있지만, 실제 다산이 살던 집은 아주 허름했다고 한다. 유배지의 삶이 어떤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지금 이곳은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을 만큼 (어쩌면 유배를 꿈꾸고 싶을 만큼) 잘 포장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선 다산의 진정한 삶의 정취를 느끼기 힘든 곳일지도 모르겠다.
다산초당의 제1경은 다산이 직접 돌에 새겼다는 '정석(丁石)' 두 글자 이다. 이곳에 진짜 다산의 흔적은 이 두 글자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다산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다산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처럼 모두가 알만한 간단한 두 글자를 통해서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산초당에서 '가우도'로 가는 '망호출렁다리'까지는 걸어서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시골의 한적한 분위기와 구강포 너머로 펼쳐지는 첩첩의 산들이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기에 수북한 발걸음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남쪽 끝자락이라 높은 산은 없지만 낮은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부대껴있는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게다가 해안도로는 자전거 도로와 함께 깨끗하게 잘 닦여 있어서 자전거 타고 싶은 충동을 마구 일으킵니다. 운치있게 멋진 풍경 속을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저 멀리 가우도와 망호출렁다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출렁다리는 절대 출렁이지 않는다.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어 안전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왜 그 이름이 출렁다리인지 의구심이 안 들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다리를 건너는 동안 어찌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지, 내 머리카락은 쉴새 없이 출렁 거렸고, 바다와 산과 하늘을 보며 내 마음도 한 껏 신이나 출렁 거렸다. 그러니 이 다리가 최소한 오늘 나에게 만큼은 충분히 이름값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영랑 '김윤식' 생가이다.
나는 시와 문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강진에 왔으니 강진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영랑을 보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다. 영랑 생가는 너무나 평범하고, 편안했기에 그 특별함이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강진인들은 편하게 툇마루에 걸터 앉아 수다도 떨고 간식도 먹으며 영랑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부럽게만 보였다. 진정한 분위기는 건축과 데코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과 태도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 어디든 내가 사는 그 곳이 이러한 툇마루가 되고, 나를 찾는 이들이 편하게 걸터 앉아 쉬기도 하고, 수다도 떨 수 있기를 꿈구며 강진에서의 걸음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