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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Apr 06. 2016

루저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독서


무엇이 나를 루저로 만드는 걸까?
루저라는 존재로 규정하기 위한 기준이나 법이 있을까? 없다면 누가 정말 나를 루저화 시키는 것일까?

그 가장 무서운 심판자는 바로 '나'일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반응에서 규정되어질 것이다. 각박해지고 차가워진 사회 탓으로 돌릴 수도 있고, 금수저를 물지 못한 집안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최종 판결을 내린 사람은 '나' 스스로이다.  

'나'는 현재의 비참한 모습들을 하나 둘 수면 위로 끄집어내며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는 불안감을 키워가며 스스로를 더욱더 루저화 시킨다.  누군가 그러한 나의 모습을 꼬집어 내 평가라도 하면(보통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들 하지만 그 말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루저로서의 나의 모습은 증폭되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마냥 자포자기하게 된다. 결국 루저로서의 최후의 사망 선고는 내가 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관의 문제


보통은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을 위너라고 생각한다. 돈의 힘은 자본주의 시대에 너무나 막강하고 절대적이어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억누르고 정서적 노예화를 부추긴다. 가진 자들은 자신만만해지고 기고만장해지기 쉽다. (그것이 가진 자들의 가장 큰 유혹이자 올무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자본주의적 배경 안에서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며 루저가 아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이 변할 수 없다면, 내가 변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변화될 때,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렇기에 루저를 극복하는 본질적인 시작점은 나의 세계관의 변화와 확립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너의 세계관은 무엇일까?
부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척 아는 척하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진정한 위너는 부와 명예가 있고 없고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 아닌, 부와 명예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은 견고한 철학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가진 게 없으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삶이고, 가진 게 있어도 더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상대적 빈곤과 열등감 때문에 불행한 삶이고, 더 가진 사람은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며 지키느라 더 소중한 행복을 놓치고 살기에 불행한 삶이 된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 루저의 인생으로 막을 내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관을 어떻게 개선하고 확립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배운 세상을 향한 시선과 태도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두가 이와 같을 필요는 없지만,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기준과 철학이 있다면 최소한 루저로서의 삶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없는 것이 아닌 가진 것에 집중하라.


우리는 대부분 내가 가진 것보다 네가 가진 것에 더 포커스를 두고 산다. 그럴 때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나에게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물론 이윤의 극대화라는 달콤한 유혹의 기치 아래 과도한 경쟁과 부익부 빈익빈의 가속화로 이러한 시각은 더욱더 견고 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고 감사한 것인지 깨닫고 살 수 있게 된다.


세계의 절반은 2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고, 7초에 한 명씩 지구 상의 아이가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당신이 대학교육을 받았다면 세계에서 7% 안에 드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된다.

*(참고_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우리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금수저의 삶인 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치열한 사회이고, 각박한 사회가 되어갈수록 더 넓은 시야로 나와 너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네가 가지지 못한 것에 포커스를 두는 삶을 산다면, 더 많은 루저가 없어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규모에 맞는 삶을 사는 것 (자족하는 삶)


직장인들 중에 연봉이 2,000만원인 사람이나 5,000만원인 사람이나 하나같이 월급이 부족하고 빡빡하다고들 말한다. 각자의 씀씀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가진 한도 내에서 규모 있게 살지 못한다면 누구도 부족과 결핍의 루 저화 된 삶을 이겨 낼 수 없을 것이다. 규모에 맞는 자족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욕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의 규모와 관계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만든다. 반드시 가져야만 하고, 반드시 누려야만 하는 것처럼 광고와 비교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 배어들게 해 낳은 결과가 욕심과 이기심인 것이다. 누군가가 과도하게 풍족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과도하게 부족해져야만 한다. 이것이 루저와 위너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족하며 산다는 것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고, 누구도 루저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욕심이 많은 자는 금을 나누어 줘도 옥 얻지 못함을 한탄하고, 공작으로 봉해줘도 제후가 되지 못함을 원망하며, 부귀하면서도 스스로 거지노릇을 달게 여긴다. 그러나 족함을 아는 사람은 명아주 국도 고깃국보다 맛있게 여기고, 베 두루마기도 여우와 담비 가죽옷보다 따뜻하게 생각하니 서민이면서도 왕과 같으니라."

 -채근담 -



더 큰 것을 꿈꾸라!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은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행복이 돈과 반비례하는 것은 목적과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성공한 삶 그 자체가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을 가진 사람이냐가 아닌, 그것을 어떻게, 왜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의미 있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꿈꾸는 사람이 아닌 더 큰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을, 더 아름다운 것을 꿈꿀 때 우리는 진정한 위너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우리에게 더 큰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고, 꿈꾸어 보자.


루저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독서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나에게는 이러한 철학이나 기준이나 생각이 없었다.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지식과 정보를 주고, 문제 제기를 해주고, 같이 고민해 줄 수 있는 수많은 멘토들을 책을 통해서 만나면서부터 나의 세계관은 변화되고 확립되어져 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평생 루저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변화시켜 준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독서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작업은 쉽지 않다. 수많은 책 속의 조언과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내 온몸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하는데 이것은 평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할 과업과도 같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읽는 이 책이 나를 당장 변화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언젠가 내가 변화되었을 때, 오늘 읽은 이 책이 밑거름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루저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책장을 펼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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