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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30. 2016

닮아가는 글쓰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고 아리토텔레스가 말했다.

정말일까?
모방은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 끝이 배움에 있다면 모방은 나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끝이 탐욕에 있다면 모방은 나를 하찮은 짝퉁인간으로 만드는 이기적인 도구이자 무기가 된다.


# 1. 문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닮고 싶은 문체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나에게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그러했다. 다정하고 진솔하면서도 깊이와 무게감으로 가득한 선생님의 글에는, 지식과 지혜와 더불어 사람 냄새가 풀풀 난다. "감옥으로의 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 문체를 흉내 내어 독후감을 써 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저자의 문체를 흉내 내다보니 어느 순간 저자와 비슷한 방식의 감성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저자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저자의 글과 생각에 더욱 공감하게 되고, 더 높은 차원의 교감과 소통을 하게 되는 듯했다.  



삶의 지혜를 깨닫기보다,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나를 차분하게 정독하게 합니다. 시간에 쫓기어 다급한 마음에 글자만 슥슥 읽어 나가면, 내 머릿속을 지우개로 지우듯 그 글자들을 따라 지워나가며 다시 읽게끔 나를 다독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조곤조곤 그 내용을 곱씹으며 풀이해 나갑니다.
책장은 더딜지라도 마음은 유하여지고 머릿속은 바삐 그 내용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해집니다. 그래도 그 내용과 한자성어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식의 부족이요, 사색의 결여가 내 안에 습관화되어진 연유일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일상의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은, 그에겐 깊은 사색의 결과물일지언정 나에겐 새로운 사색으로의 초대장이 되어 줍니다.
닫친공간,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적지 않은 무기수로서의 삶 속에서 더 넓고, 개방적으로 인식의 창을 성장시켜 나가는 그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나를 많이 반성케 합니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으로 흐르는 이 시대의 조류 속에 올바른 신념을 세우고 그것을 지탱시켜 나갈 힘을 기르는데 나 또한 더욱 매진해야 함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많은 부분에서의 해답을 '사람'에 두는 것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신분과 성품과 성별과 노소에 관계없이 사람이 나의 삶에 큰 스승이 되고, 재산이 되고, 친구가 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 2. 주제

책 속에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다. 저자는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들을 사용한다. 그것이 아주 논리적인 증명이든, 상상 속의 소설이든 자신만의 방식대로 그 주제를 풀어내는 글을 쓴다. 그것이 어떠한 문체와 구성인지, 얼마나 섬세하고 창의적인지, 얼마나 감각적이고 공감이 가는지에 따라 그 책과 저자는 독자들에게 평가받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주제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만의 방식과 이야기로 그 책을 다시 써볼 수 있는 작은 용기를 품게 된다. 때로는 헛다리를 짚을 수도 있고, 때로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도 한 번은  창조적이고 문학적인 확장으로 그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 확대될 때, 나의 생각과 글이 더욱 후자 쪽으로 그 무게추가 기울게 되지 않을까?

예전에 조세희 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다가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극명하게 대립적인 두 계층의 삶에 주목하며 "나만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글로 표현해 본 적이 있다.



난장이와 거인은 같은 힘의 크기로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서 있다. 땅이 난장이와 거인을 잡아당기는 힘은 동일하지만, 공을 쏘아 올리는 것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난장이는 거인보다 더 낮은 곳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힘의 크기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난장이는 힘이 약하고, 대부분의 거인은 힘이 세다. 태생적으로 그런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 운동을 열심히 해서 힘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몇몇의 난장이는 열심히 운동을 한다. 부지런히 운동을 해서 힘을 키운 난장이는 때때로 게으른 거인보다 높게 공을 쏘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1회성에 그칠 뿐이다. 태생적인 불리함을 계속해서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난장이는 거인의 품에 안겨 비굴하게 살기로 결정한다. 마치 자신이 거인이 된 양 착각하며 살기도 하지만 결국 거인들에게 구걸하며 사는 것일 뿐이다.

난장이에게는 공도 턱없이 부족하다. 거인은 불의의 나무에서 무한의 공을 시도 때도 없이 공급받는다. 난장이는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공은 제한적일 뿐이다. 힘들게 찾은 공은 행여나 잘못 던져질까 노심초사해하며 온 신경을 집중시켜 쏘아 올린다. 무한의 공을 가진 거인은 그것도 부족한 듯 난장이들의 공도 빼앗으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난장이들의 빛을 잠식시킨다.

설상가상으로 난장이들의 공은 작고 무거워 있는 힘껏 높은 곳을 향해 쏘아봐도 더 빠르고, 더 큰 힘으로 다시 땅에 떨어질 뿐이다. 반면에 거인들의 공은 크고 가볍기까지 하다. 가볍게 던져도 높고, 멀리 날아간다. 때로는 풍선처럼 손에서 놓기만 해도 하늘 높이 둥둥 날아간다.

신은 공평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



모방으로 시작된 글쓰기로부터의 배움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나를 만들고 단련시켜 준다.

모든 저자가 그렇듯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닮아가고, 그렇게 또 다른 저자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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