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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May 17. 2019

신혼집에 모든 로망 실현?

집, 특히 신혼집은 자가 혹은 전, 월세 여부를 떠나서 더 애착이 간다. 

혹시 빌려서 쓰는 집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내 집이 아닌 게 무엇인지 실감이 안나는 

시기기도 하고. 그래서 얼마나 살지 모르는 

그 집에 돈을 들여 꾸미기도 하는 게 신혼집이다.


단어에 환상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그렇지, 그냥 집이다. 

학창 시절 젝키의 "예감"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신혼은 이렇겠지라고 

생각해 왔다. 


" 향긋한 모닝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주는 상큼한 입맞춤...

아직 달콤한 꿈에 흠뻑 취해서 '조금만 더...' 그러겠지...
하얀 앞치마 입고 내 아침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
나의 삐뚤어진 넥타이까지도 모두 다 너의 몫일 거야...
현실이 나를 속여도... 내 아침은 햇살처럼 눈부실 거야...
나의 아침을 깨울 너를 꼭 닮은 우리의 작은 아이..."


결혼 후 조금 지나 이 노래가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로 결혼 후 가정의 일상의 모습을 덧붙이면 

코미디 대상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의 가정, 현실의 집은 저런 여유 있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어제의 피곤을 고스란히 안고 자서, 아침엔 모닝콜이 나를 깨우며,

모닝커피는 웬 말 믹스커피라도 먹을 시간 있으면 다행.. 

하하하, 앞치마 부분은 정말 빵 터질만하다. 그리고 너를 닮긴 한 

우리 아이 또한 나를 Sweet 하게 깨우지 않는다는 거. 

아~~ 빠~~~ 하고 울면서 일어나거나 왜 자신이 좋아하는 빵이 없냐고 

투덜거리면서 아침 출근 전쟁이 시작된다. 


휴, 이건 일상의 단면을 잘라서 이야기한 것이고, 

우리가 그 일상을 살아내는 장소 신혼집을 한 단어로 소개해 본다면, 


"돼지우리"만 아니어도 다행일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더 심하지만 아이가 없어도 매일 집을 정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벗어놓은 양말부터, 

가스레인지의 찌든 때, 

개기 귀찮아서 한쪽에 모아 둔 마른빨래까지... ㅡ_ㅡ;


일상을 보내는 그 공간은 우리의 로망을 채워주기에 

아니 실현해 보기에 택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을 고르러 다닐 때는 그냥 그저 둘이 살 집이 생긴다니 

너무 좋아서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하나하나 등장할 시기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녹물이 나온다거나

좀 쾌적한 아파트인데 전철역에서 너무 멀다거나 

복층 오피스텔인데 냉, 난방이 잘 안된다거나


분명 알고 있었는데 당신이 최근에 더 저런 것이 거슬린다면,

집이 당신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말하기 전에 

남편 아내와 관계를 점검해 보는 게 어떨까... 


정말 살면서 제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나 고르라면 (불법이나 범죄는 당연히 제외하고) 

나는 "남 탓"이라는 단어를 고르고 싶다. 


그런데, 집을 어떤 경제적 판단에 의거해서 

어떻게 고른 건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집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많은 케이스에서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거나 탓하는 걸로 이어진다. 


" 오빠가 부모님께 조금 더 받아왔어야지."

" 네가 너무 모아둔 게 없어서 그래."

" 처음에 무리하더라도 집을 샀어야 했는데, 네가 반대해서"

" 조금 더 잘 버는 사람 만났어야 하는데."


정말 그럴까?.. 

결혼하기 전에 우스갯소리로 누가 그런 얘기 했던 기억이 있는데, 

"괜찮아 보이는 남자는 죄다 유부남이라고" 


그 말인즉슨, 누군가(어느 여자가) 노력해서 간신히 괜찮은 사람 만들어 놓은 건데, 

우리는 그 노력 없이 날로 괜찮은 사람만 만나길 원하다고. 


웃자고 한 말이지만, 난 이 말에 뼈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 혹은 내 마음에 벅차게 만족스러울만한 집을 

갖고 시작하면 행복할까? 


우리가 노력해서 갖지 않는 것은 그 가치를 알 길이 없다. 

결혼, 그 첫 발걸음부터 모든 게 세팅 완료라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무료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15평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 작은 집에서도 감사했지만, 기회를 만나 21평으로 이사를 갔다. 

21평에서도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감사했다. 

그 후 다시 24평으로 이사를 했고, 

한 번 더, 더 좋은 구조를 가진 24평으로 이사를 했다. 


작은 집에서 조금씩 넓혀가는 재미와 그것을 위해 

부부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과 과정은 참, 의미 있었다. 

그 과정에 없었으면 우리 가정이 지탱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 에반 올마이티를 아주 오래전에 봤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어 나누고자 한다.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누군가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뿅 하고 묘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할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여러분에게 집은 

가족이 가까워지는 소재로 쓰일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입장을 선택하냐에 따라서,

가족이 멀어지게 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래도 모든 로망을 신혼집에 실현할 셈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혼집이 내 로망에 차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을 셈인가?


내 남편, 내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들을 위해 더 좋은 집을 선사하려고 즐거이 혹은 이를 꽉 깨물고 노력할 것이다. 


신혼집, 그것은 부부가 첫 번째로 살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언젠가 거기 살았었지 하는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고, 

다시는 방문하지 않을 동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집은 어떻게]좀 안 되겠니?라는 질문을 

나는 이렇게 던지고 싶다. 


[네 마음 좀 어떻게 안 되겠니?]

집을 어지럽힌 건 재가 아니라, 

나라는 것..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 집에 대해, 

우리에 대해 조금 더 말이다. 


나와 네가 만들어 가는 건, 지금 공유하는 건,

단지 불만족스러운 현실이나 고생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가 갖게 될 집, 어떤 로망도 실현할 수 있는 집을 만날 때 

붙들 수 있는 힘, 그 관계이다. 


[우리 집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신혼 편을 

이렇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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