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윗 집은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그 기간 동안 매우 시끄럽고, 우리 집에 들어와서 무언가 배관을 만져야 된다며 몇 번 방문도 하셨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빵 한 봉지라도 사 올 텐데 생각했지만, 코로나 시대니까 먹는 것 주고받는 것도 뭐하지 하면서 말았다.
인테리어가 끝나고 이제 괜찮겠지 했는데, 그 집에 4살 정도 되는 꼬마가 있는 가족이 이사를 오셨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자는지 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몇 달을 그 아이가 후다 다다다 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 6시 반쯤 강제 기상을 했다. 뭐 어차피 몇 분 뒤 나도 일어날 참이었지만, 그 아이로 인해 깨는 것과 내가 계획한 알람을 듣고 깨는 것은 느낌이 매우 달랐다.
사실 내가 이런 추측을 했던 것이고 2달 뒤쯤 첫 방문을 드렸을 때,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젊은 엄마가 바닥에 매트도 다 깔았지만 시끄러웠다면, 죄송하다고 하셨다. 나도 화나서 갔다기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느끼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서 간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 몇 달 동안, 그 아이 엄마가 아이를 조금이라도 제지하려는 마음이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더 극심한 소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몸집이 더 커져가고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밤에는 자겠지 라는 말들로 이해해 보려 무단히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이 아닌 곳에서 잘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의 소리를 듣지 않고 일어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아이를 키웠고, 당연히 웬만하면 모든 것에 넘어가는 성격이지만, 그 아이가 내 스트레스의 꽤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자 또 그 아이가 자기 집을 운동장삼아 뛰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서 벨을 눌렀다. 할머님이 나오셨다. 이러저러하다 최대한 차분히 말씀을 드렸더니.
"우리 집이 아닐 건데, 우리 애는 안 그래요. 매트도 다 깔려있는데, 그리고 뭐 앤 데 뭘 어쩔 수 있나요."
"저도 다 아는데, 다시 와서 말씀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아이 어머니가 등장했다.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 아이 때문에 언젠가 컴플레인받은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던 태도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배려하면 할수록 고마운 줄 모르는구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서 말해야겠다고 느꼈지만 나보다 더 순한 남편이 나를 막아서고는 했었다.
아이 어머님께
"저희도 매일 인내를 발휘하고 있으니,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문을 닫았다. 할머님은 끝끝내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셨다.
아, 정말 집에서까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더 에너지를 쓰면서 근무하는 태도로 살아야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내년 여름에 이사를 갈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래서 그냥 침묵하고 살려고 했던 건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이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 것 때문에라도 빨리 가고 싶을 지경이니 조금 슬프다.
사실, 이 정도 이야기는 애교다. 나의 저번 집 위에는 이보다 더 심한 강도의 소음을 주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도 3번 정도 올라갔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 집은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뛰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 우리 집 천장에 전등이 흔들려서 자다가 지진인 줄 알고 깬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사과 한 봉지를 가져다 드렸다. 두 번째는 빵. 세 번째는 그냥 갔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그 집 배관이 막혀서 우리 집 화장실에서 올려서 뚫어야 된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 공사는 화장실 타일을 깨고 하는 공사라서 약 3주가 소요되며, 그동안 우리 집은 그 화장실을 쓸 수 없다고 했다. 화장실이 두 개였기에 망정이었지만 정말 좋은 마음으로 불편하시겠구나 싶어서 그것마저도 이해하려 했었다. 이 때도 나같으면 미안해서 라도 빵 한 봉지라도 들고 오실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내가 무언가 바란다기 보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든지 선물을 들고 가라고. 참 그래서 그분이 그 공사가 시작되던 날 우리 집에 들어오시게 되었는데 돌아보시니,
"두꺼운 매트를 다 깔으셨네요. 저희는 매트 하나도 없는데."
그날 받은 충격은 진짜 대단했다. 내가 3번이나 올라가서 심각하게 말하는 동안 매트 한 장 사는 액션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인가. 초등학생이니 매트 깔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우리 집 전등이 떨어져서 수리해야 되면 그 비용을 더 내셔야 할 듯했다. 감사히 전등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이사를 나왔다.
그 다음 집은 나름 괜찮았다. 그리고 그 다음 집이 지금 이 집이다.
와, 정말 이제 아파트에 사는 게 두려울 정도이다.
소음에 취약하게 지어진 아파트가 문제라고 많이 하시는데, 당해 보면 이 안건에 너무나 당당한 태도가 제일 당황스럽다. 적어도 불편하셨겠어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 한마디 들었다면, 몇 달은 다시 참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도 가져보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말해보았지만 내일 아침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너 피이스를 어딘가에서 발굴해 오는 게 더 빠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