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이라고 소개해도 될 법했던 신혼집에서 소원은 분리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보통 밤 9시 이전에 잠이 들고 새벽에 일어나서 부스럭부스럭 활동하는 나는 일어나서도 곤히 자는 남편을 깨울까 봐 내 나름의 시간을 못쓰고 있었다. 그 뒤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거실과 방 2개를 갖춘 대궐 같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엄마 방'이라는 것이 있다. 조금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 아직 수면 독립을 하지 못한 우리 애들은 아빠와 셋이 잔다. 자다가도 '엄마' 하고 울지 않고 '아빠'하고 울던 조금은 웃픈 히스토리를 우리 아이들은 간직하고 있다.
남편은 진심 아이들을 너무 잘 돌보았다. 내가 못했다기보다는 남편이 너무 잘했다. 무서운 엄마와 받아주는 아빠의 독특한 조합 가운데 우리 아이들은 감사히 잘 자라 주었다. 적어도 아직 수면 독립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10년이 되기 전에 '아이들을 재우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 혼자 편안하게 자는 것에 미안함이 들던 어느 날, 우리는 아이들의 침대를 질렀다. 그리고 그 침대의 배송 날이 오늘이다.
너무 오랜만에 가구 배송을 받는 터인지라, 잠이 안 오는 것 같다. 나는 프로이사러 지만 그렇다고 미니멀 라이프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구들을 샀다가 버리기도 했고, 육아 템들은 더 어린 아가들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대부분 넘겨주었다. 심지어 이케아에서도 일했다고 말하면, 나의 가구에 대한 애증은 내가 늘 이야기하는 집 못지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가구 혹은 우리 집을 거쳐 간 가구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들 이 가구가 꼭 필요한가 라는 긴 고민 과정과 앞으로 이사 갈지도 모르는 수많은 집 후보들의 구조에서 잘 배치될 수 있을까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 백번 돌린 후, 그 과정을 통과한 아이들만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계획 및 검증을 해도 실물이 우리 집에 등장했을 때 결과론적 실패를 겪은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도전과 실패 사례를 겪은 아이들 침대 건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보통 다른 가구들은 엄마의 간택을 받아서 집에 입성하게 된다. 그런데, 유독 아이들 침대만큼은 엄마의 센스가 방해가 되나 싶다. 어른들은 이왕 가구를 사게 되는 것, 공간 및 수납에 효율적이었으면 좋겠고 예쁘고 우리 집 톤이랑도 잘 맞으면 좋겠고, 가격도 멋지길 바란다. 그래서 너무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게 되는 걸까. 지금까지 아이 침대를 3번 들였다가 실패하고 떠나보냈으며, 오늘 우리 집에 오는 녀석이 4번째가 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침대 세대가 아니었다. 이불 깔고 잔다라는 표현이 익숙한 세대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첫 침대를 갖게 되었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침대라는 제품이 대중적으로 필수품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전에도 2층 침대라는 녀석이 존재했으며, 나와 내 여자 동생, 즉 우리 쌍둥이는 2층 침대를 사달라고 했던 것 같다.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아이들, 심지어 성별이 다른 이들에게 시도해 보고자 했으나 그 또한 실패였다.
첫 번째 침대는 자동차 침대였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첫째에게 선물한 침대는 아이 눈에 놀이터였던 것 같다. 자동차 놀이터로 쓰이던 그 침대는 지붕까지 있어서 생각보다 너무 컸고, 답답을 느끼던 나는 집에서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침대는 아래 옷 수납이 되는 효율적인 벙커침대였다. 물론 매장에서 실물을 보았을 때는 다 괜찮아 보였는데, 집에 들여다 놓으니 너무 높이가 놓아서 아이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 녀석도 2년 정도 있다가 추방되었다. 세번째는 하이 벙커였는데, 두둥 그 녀석은 배송 온 지 며칠 만에 다시 돌려보냈다. 피부가 예민하신 따님께서 알레르기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휴유. 험난하구먼.
때때마다 아이 침대를 구매하려고 했던 이유들의 조합은 상이했지만, 이번 결정까지도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아빠 구출 대작전' 아닐까 싶다. 남편의 고생과 공로는 무엇으로 인정해줘도 아쉬울 정도 아닐까. 아이들이 어려서 밤에 한 시간마다 깰 때도 한 번 도 화낸 적 없이 같이 일어나던 남편. 중이염으로 눕혀 놓기만 하면 귀가 아파 울던 둘째를 밤새 안아주던 남편. 농담으로 당신이 육아 유튜브 찍으면 '1가구 1 보급 국민 아빠' 된다고 그랬다. 그런 여보에게 이번에 산 침대는 부디 일말의 자유를 줄 선물이 되길 바라본다. 가끔 아빠가 출장 가서 내가 애들 옆에서 자면 이제 너무 묵직해진 첫째가 굴러다니면서 다리를 턱 나에게 얹을 때 난 무심코 화가 난다. 매일 그 부대낌 속에 지냈을 남편에게 내가 "잘 잤어요?"라고 물어보건 너무 무심한 인사를 건네 것이 아닌가 돌아본다.
그냥 아이 침대 하나 물건을 구매 한 거지만, 우리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를 해봄직한 영역이다. 일단 몇 달간 높아진 카드 값, 그 변화가 예상된다. 이제, 배송 10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