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행복주택 & SH 역세권 청년주택 공고에 대한 반가움
"저는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설명이 이 한마디만 있을 때 당신이 상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언가 모자란 사람일까? 뭐, 어느 관점에서 보면 돈이 모자란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임대주택에 살면서 그리고 임대주택 졸업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글로 써가면서 가장 억울했던 댓글은 이것이었다.
"왜 그 전에는 열심히 안 살아서 임대주택 같은 데를 들어가게 됐냐?" 일종의 비꼼이었다. 뭐, 지나가던 사람이 생각 없이 더진 돌이었지만, 참 억울했다. 열심히 살았다. 그렇다고 집을 결혼할 때 마련하는 것은 열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집을 갖지 못했고 주거 대안으로 임대주택을 선택했다는 것이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으로 읽힌다는 것에서 오랜만에 화가 났다. 우리가 열심히만 해서 되는 사회에 살고 있었던가?
작년에 일했던 곳에서 시간제로 일하다가 정규직 면접을 봤었는데,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이 왔었다. 회사 내부 채용 공고였다. 그럼 나 말고 같이 지원한 팀 멤버가 된 거냐고 묻자, 그것도 아니란다. 나 말고 다른 팀 멤버가 더 일을 잘해서 선택받았다면 당연히 받아 들일수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 왈!
"그게 위에서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하셔서..."
내부 채용 공고에 회사 외부 내정자가 있었단다. 그럼 우리는 굳이 면접도 볼 필요 없는 것이었다. 왜 우리가 열심히 면접을 보게 만든 걸까. 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던 묵묵히 열심히 살아왔었다. 사회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그냥 열심히 살아보려다가 그 날 나름의 충격을 만난 것이었다. 그 정규직 따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이었지만, 사회에서 흔해 빠진 이야기 일 수도 있는 '기만'을 당한 후, 한 책을 읽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뭐, 어쩌면 내용은 안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제목에 마음을 기대 보았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결과가 될 수 없다는 건 내 잘못이 아닌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때야 깨닫게 되었다. 난 지금껏 왠만하면 다 내가 뒤집어쓰고 '내 잘못인가 보네' 하며, 나를 고치려 애쓰고 나를 학대해 왔었다. 지금도 그런 습성에서 완전히 벗어났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그 이후 나는 기형적인 사회구조, 세상에 나름의 발언을 하려고 소심하게 애를 썼다.
나는 임대주택의 제도 중 4가지를 이용했고 내년에 졸업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받은 수혜라는 것에 감사하며, 나름 제도를 알리기 위해 또 주거를 고민하는 젊은 가정들을 응원하며 글을 써왔다. 내 브런치에 구독을 누르신 분들은 정보보다 글이 우선이었기를 나름 욕심내 본다. 여긴 브런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온 행복주택 공고, 역세권 청년 주택 공고에 대한 분석글을 기다리는 분이 계시는 것을 아닐까 혼자 염려를 해본다.
여성가족부 청년 참여 플랫폼에서 참가신청을 받을 때 관심분야를 설문 조사하셨는데 가장 많은 것이 일 그리고 직장에 관한 부분이었고 주거 관련 이슈도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가 커가면서 중장년들이 내 집 마련 걱정을 한 것이 주거 이슈의 많은 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청년들도 1인 주거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집' 빼고 나눌 대화가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 집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 사회이다. 모든 고민이 집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신혼 특별공급으로 감사히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초소형 아파트에 당첨이 되었다. 그럼 난 이제 집 고민에서 자유해진 걸까? 급한 불 껐고 1 주택자가 되니 이제 제도 등의 사회적 장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집 값 올라가는 것만 즐기면 되는 입장인가?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다르게 집의 가치를 가져야 할까?
내가 당첨된 동호수는 전체 임대동에서 7가구 인가, 극소수만 분양세대였다. 내게는 임대주택이 모여있는 동이라는 편견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선택지를 찾은 것뿐이었다. 그렇게 당첨이 되고 당첨자 단톡 방이라는 것이 생겼다. 종종 개인의 의견을 강한 논조로 말씀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이었다.
" 그런데, 우리 아파트에 임대가 있어서 가격 오르는데 방해되는 것 아닌가요? 임대가구가 섞여있는 단지 줄
알았으면 여기 안 샀을 겁니다. "
몇 백 명이 모인 오픈톡이었다. 나는 내 옆집에 행복주택으로 들어온 신혼부부가 산다면 "젊은 친구들이 제도도 열심히 알아보고 부지런하네." 이런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은데, 그분 눈에는 집 값을 떨어뜨리는 요인들로 보이는 건가. 그 오픈톡에는 어느새 나보다 용감한 분들이 그 발언은 옳지 못한 것 같다는 글들을 올려주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분은 꿋꿋이 마무리를 하셨다.
"열심히 살면 아직 서울 집 살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
허허허. 너털웃음이 몰려왔다. 열심히 산다는 게 많이 공부한다는 것이 소득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지나갔다고들 한다. 그게 우리 부모님 세대였고, 우리는 넘치는 고학력자들에 고 스펙이 기본이 되어 버린, 그게 아닐지라도 열심히 살아도 그만큼의 보상을 기대하기 힘든 사회적 구조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뉴스에서는 월소득 200 미만이 우리나라 절반이라는데, 인터넷에는 소득초과로 신혼부부 특공에 해당이 안된다는 글이 더 많다.
유명한 부동산 카페에 누군가 심심풀이로 올린 그런 글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번듯이 취직한 사람과 비싼 집 있는 사람, 누가 더 사회에서 인정받느냐는 웃픈 이야기였다. 결과는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의 압승이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번듯이 취직해서 돈 모아서 비싼 집을 산 경우도 종종 있을 수도 있을 수도 있겠다.
지금 비싼 집에 사는 게 지금껏 살아온 과정도 맞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비싼 집에 사는 팩트로 모든 것이 익스큐즈가 된다는 말인가? 그릇이 깨끗한 걸까, 그 안에 담긴 음식이 깨끗한 걸까?
임대주택 단어에 대한 편견을 깨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지금까지 대대적인 실패를 마주했다고 보인다.
아기와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사시는 친척에게도 행복주택을 추천했지만 "임대주택은 좀..." 이란 반응을 들었으니. 자산 그리고 소득이 해당이 넉넉히 되셔도, 임대주택을 선택하지 않으신다. 상황이 맞는 모두가 임대주택을 선택해야 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 이면에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도 거기 살면 그렇게 보인다는 의견이 깔려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나 하나도 못 바꾸고 내 옆 사람도 못 바꾸는데 무슨 사회를 바꾸겠다고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나는 "네가 열심히 살지 않아 집이 없었다."라는 편견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수많은 젊은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중에는 임대주택을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력하지 않고 산다는 질책을 들어야 할까.
새로운 임대주택 형태의 등장과 공급 확대 등의 뉴스를 들으면 그날은 기분이 참 좋다. 어느 가정에서는 어느 아기에게는 적어도 지금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 제공될 수도 있다. 어제도 SH 역세권 청년 주택이 등장했고, SH 행복주택 공고가 한 번 더 나왔다. 열심히 살지만 집을 사는 게 지금 옵션이 될 수 없는 가정들에게 캡처를 전달했다. 둘 다 물량이 워낙 적긴 했지만, SH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다양한 임대주택 그리고 좋은 주거복지 제도들을 공급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젊은이들이 가정을 갖고 아이와 함께 살 집을 사려는 생각이 들 때 또 다시 한번 장벽을 만나는데 그 영역은 백대일의 경쟁률은 뚫고 들어간 임대주택 진입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이미 가지고 계신 분들과 새로 진입하려는 자들의 세대갈등으로 까지 비치며 냉혹한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좋은 임대주택이 많아지는 것에 반대하지 않고 동의하는 것, 그것도 누군가의 호의일 수 있지만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사회 진입을 권장하고 격려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해주시는 것, 거기까지 바라면 너무 많이 일까? 임대주택이라는 단어에 편견을 없앨 수 없다면, 그 단어 사용을 없애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앞으로는 임대주택도 종류별로 브랜치가 있고 네이밍이 있으니 '행복주택', '청년 주택', '청신호' 등의 이름으로만 불러보는 건 어떨까? 따뜻한 세상에 살고 싶다. 눈빛 그리고 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