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임대주택 첫 만남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가 둘째를 임신하셨다고 했다. 언니 집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신도림동 뒤 편 공장 지대 사이에 있는, 다세대 주택에 2층이었다. 언니의 첫째는 예쁜 남자 아기였다. 그 아기가 돌이 안 된 것 같아 보였는데, 벌써 둘째를 갖으셨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조금 빠른 것 아닌가 하면서 의아해할 때, 언니는 곧 이사를 가신다고 했다.
"어머 어디로 가세요?"
"응, 천왕이라고"
"네 천안이요?"
"아니, 서울 구로구에 천왕동에 시프트가 됐어"
"네 시프트요?”
출퇴근하는 2호선 전철에서 만화로 된 시프트 광고를 본적은 이었지만, 그때는 당연히 뭔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었다.
언니 말로는 20년 동안 거주가 보장되는 장기전세 임대주택을 시프트라고 부르는데, 신혼부부 3년 이내 2 자녀면 당첨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서 둘째를 갖게 되었다고 언니가 가입해서 활동하는 카페에는 이런 일이 많다고 하였다. 그런 이유로 아이를 갖기도 하는구나라는 컬처 쇼크가 있긴 했지만,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로 입주하다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사실 지금 그 집에선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제약이 있어 보이긴 했다. 일단 2층이었는데, 매번 유모차를 접어서 가지고 올라오고 내려 오고를 해야 했으니, 언니는 더 이상 유모차를 접었다 폈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으로 매우 흥분되어 보였다. 언니는 남편의 나이가 연상이었는데, 나이가 많아야 그런 제도에서 유리하다고 하셨다.
음, 나랑 남편은 동갑이었고, 내가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혹시 해당이 될까 고려하던 때 우리는 28살이었다. 한 마디로 그 당시에는 신혼부부 치고는 정말 어린 편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90년생이에요 결혼했어요 이런 친구들 빼고는, 우린 꼬마 신랑 신부 축에 속하였다. 우리도 물론, 아직 결혼 3년 이내였지만, 처절한 경제적 상황을 돌아보면 둘째는커녕, 내가 이 결혼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도 매일매일 의문의 연속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떠도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때, 나는 아이가 젖을 끊을 때가 가까이 오자 주 2회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는 시댁, 하루는 친정에 아이를 데려다 놓고 코엑스 무역센터까지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첫날 다녀왔더니, 아기가 밥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쫄쫄 굶었단다. 나를 보자마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모유를 먹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내 밥줄 어디 갔던 거야 라는 서러운 눈빛. 그렇게 젖을 다 끊지 못한 아이를 두고 가끔이지만 일터에 가는 것이 그래도 내가 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발버둥이었다.
오가는 출퇴근 길에 SH공사를 즐겨찾기 해놓고, 뭔가 나오는 것이 있나 하고 들어가 보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길을 고집하느라 내가 뭘 하든 공감해준다거나 도와준다거나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마지막 발버둥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가 연말이었고, 내년 말까지 어떤 변화도 없다면 그땐 정말 헤어지는 수밖에 없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