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라이프 스타일?
사실 앞에도 잠깐 얘기했지만, 둘이 살 때는 최대한 작게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솔직히 원룸형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것도 이제 막 가정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에게 녹록지 않은 가격을 지불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위에서는 최대한 작은 집에서 시작하라는 이야기의 물리적 이유를 얘기 했었는데, 지금은 경제적 이유를 생각해 보자.
회사를 다니는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임대주택제도를 이용해 신혼집을 찾아보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두 사람의 월평균 소득의 합은 500만 원 미만이라는 이야기가 성립될 것이다. 혼자서도 500만 원 버시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많은 자료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한 달에 200만 원을 넘지 않게 버는 직장인이 절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월급의 제약 속에서 가정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현실이 시작되면,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돈이다. 그동안 부모님이 제공해 주셔서 알지 못했을 뿐이지, 한 가정을 굴려가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큰 고정비용이 요구된다.
여기서 정말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해야 되는 부분이 발생하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중고로 되팔 예정이 아니라면, 역시 빨간 별을 다섯 개 그려 놓으셨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맞벌이 월급의 합이 500이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매달 고정비용이 얼마가 적당한 것 같은가?
물론 전세자금 대출 등 이자 얼마나 나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과금, 통신비, 식비, 카드 값 등을 다 포함해서 50%를 넘지 않게 설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 즉, 월급이 들어오고 은행 및 카드회사에서 다 가져가고 적어도 절반은 아직 통장에 남아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재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가정이나 노력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없을 때, 매달 100만 원을 저금할 정도의 여유가 안 나온다면, 그 가정은 아이가 있을 때는 마이너스 예산이 집행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여기서 100만 원을 말하는 것은 둘이 합쳐 버는 돈이 300만 원일지라도 100만 원을 남길 수 있는 내공을 지금부터 길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500만 원 버는 집은 100만 원 저축하기 더 쉬운 것 아니에요?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까지 보아온 바라는 절대 아니다. 많이 버는 사람은 그것을 알고 씀씀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이 합쳐서 300을 벌든 500을 벌든 그중에 어느 정도를 떼어놓을 수 있는 가정경제 규모를 아이가 없을 때 조절해 놓지 않으면, 아이를 낳고 외벌이가 되면서 상대적 상실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
둘이 500만 원을 벌어서 애기 없을 땐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많이 하고, 문화생활도 하고, 이러면서 삶의 사이즈가 거의 매달 500만 원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때도 저금을 거의 못했을 것이다. 난 사치스럽게 살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 하는 정도지 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곧, 임신을 하고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외벌이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월급은 잠정적으로 250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때는 아이를 위해 쓰고 싶은 것, 또 써야 하는 것들이 계속 늘어나는 시기이다. 단적인 예로 아이가 태어나서 예방접종을 정말 무지하게 많이 맞게 되는데, 그중에 주사 한방에 가격에 십만 원인 것들도 있다. 그러하면 여태까지 둘이 누려왔던 라이프 스타일은 순간에 아스러지는 것이다. 물론 저금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다음 달 카드 값을 막을 수 있나 고민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내가 꼰대 같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애기 없을 때 종자돈을 모아야 해 라기보다는, 절제된 삶의 규모를 연습해 놓지 않고 YOLO로 살다가는 골로 갈 수가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안 하던 것은 안 해도 박탈감이 없지만, 처음부터 누리던 것을 못하게 되거나 빼앗긴다는 느낌이 들면 그 우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절제된 삶을 살고자 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바로 목표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 가족에게 그 시기에 필요한 주거를 꼭 제공하겠어 라고 장기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멀리 달릴 준비를 한다. 아마 그런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이 책을 선택하셨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래서 저흰 애기 갖지 않고 둘이 살 건데요 라고 대답하실 수 있겠으나, 그것도 나는 존중한다. 그러나, 삶은 어떻게 변화될지 알지 못하고, 당신의 마음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우리 아닌가.
하지만 어떠한 변화가 와도 절제된 삶의 규모를 길들여 놓은 다면,
그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는 돈보다 큰 의미를 갖는 종자씨가 될 것이다.
작은 집에서 절제된 삶의 규모로 살 수 있는 것도 가능한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말이다. 우리의 작은 원룸형 아파트, 미성에서 태어난 첫 아가는 곧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점퍼루, 소서, 붕붕카, 미끄럼틀 등 장난감을 중고로 주시기도 했지만, 결국 거의 다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집이 너무 작아서였다. 뭐 하나를 펼쳐놓으면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없었다. 사실 장난감은 늘 그 자리에 펴 놓고 아이가 관심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게 해야 의미가 극대화되는데, 이건 뭐 한 장난감을 갖고 놀면 그다음 판을 벌일 장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첫째는 밥도 침대 위에 상을 펴놓고 먹고 과자도 침대에서 먹고 참 그 작은 집을 어떻게든 극대화해서 활용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계가 너무 명백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할 때였다. 우리가 거실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아기의 작은 걸음으로 열 번 정도면 현관에 도착해 버렸다. 아기는 우리 집보다 넓은 할머니 집에 가면 엄청 신나 하면서 좋아했다. 나중에 둘째를 키우고 보니 첫째는 엄청나게 정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엄청 성격이 입체적이거나 활발하지 않아서 내 영향도 있겠지만, 너무 좁았던 집에서 2년을 지낸 것도 영향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더 넓은 공간을 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 가격에 그곳에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지금 까지 살아온 집에 대해 불평의 마음이나 탈출 의도를 가졌던 적이 없다. 늘 내 능력보다 넘치는 집에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현재 상황에 더 맞는 환경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지금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자라고 그래서 마음이 조급하시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탈출이 아니라 성장이다. 꿈을 꾸자. 상상은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