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안심제도 (무이자 대출)
전세 집에 대한 재계약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엄마가 왜 이사 혹은 전세라는 단어만 흠칫 흠칫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신혼집을 찾을 때만 해도, 당장 둘이 살 집이 이거였으면 좋겠다 하고 고른 것이지, 2년 뒤를 내다볼 여력도 없었지만, 보이지도 않았다. 2년이 지나고 시세는 3500만 원이 인상된 금액이라고 부동산에서 귀띔해주었다. 진심 잘못들은 줄 알았다. 1500만 원이라고 해도 깜짝 놀랐을 텐데, 3500은 그 당시 우리 가정같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가정이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직장생활로서는 2년 안에 모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하하하. 이사 나가야 하는 것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찾아보려고 했지만, 이 동네에서 나는 이미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평수에 살고 있었다. 즉, 동네를 떠나야 되는 위기였다.
그렇게 좌절에 좌절을 하고 있을 그때, SH에 공사의 공지사항에 뭔가 New가 떴다. 와우!
그때 얘기했던 언니는 장기전세주택이라고 했는데, 공지사항에는 장기안심주택이라는 글이 보였다. 한 줄로 요약해주자면, 1억 3천 이하의 전셋집에 대해 45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월수입 백이 안 되는 상황에서 대출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나에게서 나가는 돈 없이 4500만 원을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기안심주택이라고 말하면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안 오지만, 보증금 지원형이라고 붙으니 아 전세보증금에 대한 현금지원이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신청한 것은 이 제도가 최초로 생기던 그 해였던 것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보다 더 정보나 인식이 없었던 때였다. 기본 조건을 보자면, 물론 아무나 신청하면 해주는 건 아니 였고, 모든 임대주택의 기본인 무주택자가 필수 사항이었다.
사실 상담을 해 드리다 보면 유주택자도 가능한지 묻는 분들도 참 많으셨다. 유주택이라고 해서 다 더 자산이 많다거나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편견일 수 있다. 주택 가격이 2억인데 빚이 1억 5천이라거나, 부모님이 사시는 집의 계약이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다거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스토리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안타깝지만, 일단 모든 임대주택의 필수조건은 무주택자 여야 한다. 일단 한 번이라도 유주택자가 되고 나면, 임대주택을 포함한 모든 복지제도에서 해당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부모님이라도 명의를 빌려드리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들 결혼할 때 줄려고(?), 2억짜리 오피스텔을 전세입자 1억 8천을 끼고 사놓았다고 하자. 그렇게 아들은 무주택자 타이틀이 없어졌는데, 오피스텔이 많이 오른 것도 아니고, 전세입자를 빼 줄 돈은 없으니, 결혼할 때 거기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자. 그럼 시작부터 난감해지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책에서 드는 예들은 극단적이라서 뭐 그런 부모가 있나요 라고 할 수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것들이니 참고만 하기 바란다.
반대로 생각하면 무주택자라는 것은 꼭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임대주택 같은 경우, 월소득만 보고 현금자산을 보지 않기 때문에 현금이 10억이 있어도 무주택자라면 당첨이 가능한다. 많은 세금을 내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서 돈이 많아도 무주택으로 머물러 계신 분들도 계시다. 이러나저러나 정부 해서 시행하는 임대주택의 기본 조건은 무주택자이다. 그래서 임대주택에 사신다고 해서 모두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대적 시행착오는 버리셨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여러 루트가 있고 나름의 발버둥들이고 불법이 아니라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연히 장기안심을 신청할 때 무주택자였고, 신혼부부였다. 45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이 집 혹은 그래도 이와 비슷한 정도의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좋았다. 시프트라는 새 아파트로 간다는 그 언니 말이 귓가에 맴돌긴 했지만, 일단 당장의 주거가 너무 시급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댁 혹은 친정으로 들어가서 눈칫밥 먹고 살아가야 할까, 도망가야 할까, 이 상황을 이겨내 보아야 할까 머리에는 전쟁이 나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께서 10년 된 남편의 청약 통장이 있다면서 쓰라고 주셨는데, 엄마가 해 주신 거랑 무엇이 다른 건지 의아했지만, 그걸로 접수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SH공사에서 서류심사를 위해 통장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현장에서 빠꾸를 당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건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아니라 예전에 존재했던 청약예금이었던 것이다. 한바탕 난리를 겪고, 엄마가 만들어 주신 청약저축을 제출해서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