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들이 왠 종이를 건넨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린 종이를 가져왔나 보다 하고 습관이 된 칭찬 한 마디나 건네줘야지 하던 차에 종이를 받아 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야 말로 누워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종이는 바로 우리 아들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몇 일 전부터 어린이집에서 결혼식에 대한 주제를 배우고 있었는지 신랑 신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는데, 자기가 신랑이라고 주장하곤 했었다. 나는 그 애기를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않았었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신랑 신부 역할을 해보는데 자기도 해봤다는 애기이겠거니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스무명의 아이들이 제비 뽑기를 해서 역할을 정했는데 자기가 나름 주인공 신랑에 뽑힌 것이었다.
그래서 금요일에 결혼을 한다며 이야기를 몇 일 전부터 했었던 것이었다. 남편은 그 애기를 진지하게 들어 준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신랑이 멋져야 한다면서 말이다. 실감이 안나던 나는 청첩장을 받아 본 후에야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얼개를 잡아주고 아이들이 꾸민 청첩장에는 우리 아들과 신부되는 예쁜 여자친구의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고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작은 사진이 할당되어 있었다.
아,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이 주인공이 되서 기분이 좋았던 거구나 라고 말이다. 그것에 대한 확인을 받기위해 아들에게 말을 걸자 아들이 대답했다.
"아니야, 엄마. 내가 좋아하는 OO이가 신부에 뽑혀서 내가 신랑으로 뽑히길 빌었어." 라고 말이다. 하하하. 그 말은 아들이 옆에 있는 여자 친구를 보며 함박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담긴 청첩장을 받는 것보다 더 충격이었다. 세상에나, 우리 막내의 마음에 이렇게 누군가 들어오다니 이 엄마의 마음은 살짝 착찹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 여자 친구는 너무 귀여운 아이여서 신랑을 하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근데 이 녀석은 결혼이 무엇인지 알까? 예쁜 옷을 입고 멋진 하루의 결혼식을 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 라는 것을 엄마 아빠를 보며 어렴풋이 알고 있는걸까? 그래도 엄마랑 아빠가 지내는 것이 행복해 보였겠지? 그러니까 자신도 당연히 결혼을 하고 자신의 와이프와 살것이라고 꿈을 꾸는 거겠지? 그녀석은 할머니가 가끔 나중에 커서 누나를 지켜줘라고 하면 자기는 자기 아내랑 살고 있어서 누나랑 같이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는 했다.
예쁜 여자 친구가 아들을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짝궁이 될 아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잘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짝꿍 옆에서도 그러하겠지. 아들! 지금 네가 엄마 아빠를 하염없이 웃게 해주는 것 처럼, 너의 미래의 신부에게도 네가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너의 미소를 그대로 비춰주는 듯한 너를 닮은 짝꿍을 만나길!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