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한 토요일 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친구가 부담스러울까 봐 회비를 걷어서 시키자는 이야기도 해보았으나 한사코 만류하던 친구였다. 늘 집밥의 정석을 보여주던 친구여서 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요리가 나올까 설레기도 했었기에 그럼 우리가 디저트를 사가는 걸로 마무리를 했었다.
사간 도넛 4박스를 건넸다. 친구네는 아이가 4명이다. 한 명씩 한 명씩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하는 아가까지 인사를 건네고 주방을 보니 역시나 만찬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는 "뭐, 별거 못했어."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한 시간 넘게 중노동을 분명히 했을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뭐 도와줄까?"
라고 진심을 건네보지만, 이미 내 손이 거의 손치 수준임을 아는 친구는 앉아서 콜라나 마시고 있으란다. 그렇게 보쌈고기 몇 킬로가 풍덩풍덩 삶아질 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몇십 분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들을 다 먹이고 다시 식탁을 치우고 어른들의 식사 타임을 돌아왔다.
그때 친구가 내가 봤던 메뉴가 아닌 옆에 있던 압력솥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게 또 있어?"
"응, 김치찜도 했어."
피자나 시켜먹자던 야속한 친구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메뉴임을 알고 날 위해 해 놓은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울컥했다. 너무나 맛있어 보이던 김치찜을 보며 친구는 한 마디 덧 붙였다.
"이거 우리 엄마 김치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 타이밍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친구의 어머님을 만나본적이 있었다.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몇 달 전에 응급실에서 돌아가셨다. 눈이 나빠서 밤에 운전을 안 하는 규칙을 깨고 밤에 미친 듯 운전을 해서 장례식장에 갔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실없는 애기들로 채우며 그 슬픔을 잊어보려 했다. 마치 친구는 엄마가 옆 집에서 건네 주신 것처럼 "이거 우리 엄마 김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어머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반응을 하고 싶었다.
어색한 찰나도 잠시, 식사에 아이들의 소란에 우리는 진지할 틈도 없는 시간에 휩싸여 밤을 맞이했다. 인사를 하고 차에 타서야 조용히 친구의 말을 그리고 마음을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작년에 마지막으로 담가놓으신 김장김치였겠구나. 김치를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겠다. 점점 줄어들고 있을 텐데, 이걸 다 먹어버리면 다시는 엄마 김치를 먹을 수 없다는 것에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그 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온통 내가 먹은 김치찜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울컥울컥 했다. 자려고 누워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까 그 말이 계속 생각난다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나눠줘서 고맙고 방금 헤어졌는데 또 보고 싶다고.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아껴먹고 있긴 하다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어머니가 오랜 투병이 아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것이라 친구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친구라고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의도치 않게 남겨주신 김치가 이렇게 우리의 위로와 눈물이 되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가 남기신 것 중에 최고는 어머니 평생을 다해 심어주신 내 친구의 따뜻한 마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