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나기 3주 전 우리, 그 당시 남편 나 그리고 20개월이던 첫째는 이사를 했다. 그날은 1월 18일이었고, 남편은 그날이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둘째 생일이 1월 18일이냐고 종종 묻기까지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난생처음 새 아파트에 살게 되는 일을 맞이했다. 우리 셋이 살던 원룸형 구축 아파트도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일이었지만, 같은 보증금 아니 그 보다 더 싼 가격에 훨씬 넓은 새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게 벌써 7년 전일이다. 가끔은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12시가 되면은 모든 기적이 사라져 버리고 초라한 나만 덩그러니 남으면 어떡하지 라는 염려가 들기도 했었다. 이제 한 달 뒤 임대주택에서의 졸업식만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나름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했다는 격려를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다. 처음에는 너무 연약하고 무력하고 한편으로는 무지했던 내가 숨을 수 있는 곳이자 보호받는 곳이 그 집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어떤 집에 사는지가 나에 대한 내 평가가 되길 원했던 때도 솔직히 분명 있었다. 그런데 몇 주 전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다 문주를 보았다. 반포로 시작하여 열 글자가 다되어가는 아파트 이름이 훨씬 나보다 커서 내가 압도되던 때도 있었는데 퇴거를 결정하고 나서 보니, 무모한 근자감일지도 모르지만 이 아파트보다 내가 더 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이제 내가 어디 살고 있는지가 나를 소개하는데 아니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데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안 밖으로 거의 모든 이사 준비를 마쳤다. 아이들에게 에어컨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이야기도 해놓았고, 5번째 팀워크를 맞추기 될 영구 이사 아저씨께도 연락해놓았고 마지막 남은 일 하나는 SH서울 주택도시 공사에 퇴거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건 계약자 본인이 직접 센터를 방문해야 가능한 일이니 남편에게 공을 넘긴다. 첫 번째 임대주택에 살면서 같은 단지 내 더 넓은 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퇴거 신청을 하러 갔던 게 기억난다. 첫 번째 임대주택 퇴거 신청을 했는데 갑자기 두 번째가 당첨 취소라고 하면 어떡하지라고 하며 벌벌 떨었었다. 감사히 모든 과정은 순적했다. 그리고 돌아온 마지막 퇴거 신청이다. 사실 우리는 자발적으로 퇴거를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편지가 있었다.
바로, 현재 임대주택에 재계약 시즌이기 때문에 SH에서는 갱신 자격심사 안내문과 동의서를 보낼 것이 분명했다. SH의 제도를 이용해서 아파트에 입주를 할게 될 경우, 입주 지정기간을 2달 정도 주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입주 지정기간의 마지막 날을 첫 사용일로 보기 때문에 9월에 입주한 경우도 11월 말일 기준으로 재계약을 하고 11월에 입주한 경우도 2년을 11월로 본다. 즉 예를 들어 9월에 입주하신 분들은 26개월 동안 같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니 나름 팁이라면 팁이겠다.
어제 퇴근하고 보니 1층에 모든 우편함에 정겨운 SH봉투가 꽂혀 있었다. 우리 동의 거의 모든 세대가 신혼부부 행복주택인 덕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기한 내에 서류 미제출 시 재계약 의사 없음으로 간주한다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우편함을 확인 안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오지랖에 조금 걱정도 된다. 어제 받았으니 제출기간까지 만 일주일 정도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니 조금 촉박한 느낌이 드는 시간 설정은 맞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우편물을 수령을 안 해서 서류제출 기한을 넘기시는 사례가 인터넷에 종종 올라온다. "금요일까지였는데 못 냈어요. 지금 주말인데 월요일에 내면 받아줄까요?" 그 뒤 후속 사례로 퇴거되었다는 말은 못 봤으니 어느 정도 늦은 것은 받아주시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온 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해야 다음 편지 재계약 안내문을 받을 수 있으니 재계약 4달 전부터는 우편함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받은 건 "소득과 자산 조회에 대한 동의서"를 내라는 것이다. SH와 계약을 여러 번 했던 지난 7년 동안 새로운 서류들이 자꾸 생겨났는데 위와 같이 생긴 서류의 마지막 칸에 서명 또는 인이라고 쓰여있는 곳은 그냥 정자로 이름을 쓰는 게 가장 안전하다. 처음에 저기다가 사인했다가 저 서류 미비라고 다시 보내라고 전화받아서 철렁했던 것이 기억에 난다. 행복주택의 장점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임대주택에서 유일하게 퇴거 기준 소득이 없는 유형이다. 보통 임대주택은 들어갈 때 소득의 일정 부분 이상이 되면 나가야 하는데 행복주택은 할증을 최대치로 올려주는 고마운 제도이다. 그렇지만 자산에 대해서는 점차 더 엄격해지고 있다.
2억 8천8백만 원의 자산 기준. 저 기준은 공공분양 특별공급 기준과도 같아서 마곡 9단지 생초를 준비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저 기준을 넘으면 안 되다는 이상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하하하. 사실 자산기준보다는 소득기준에서 많이들 어려움을 겪으신다.
제도는 계속 바뀌는데 그중에서 2020년에 가장 큰 변화는 1인 가구 2인 가구 기준 소득이 생겨난 일이다. 작년까지 임대주택의 소득기준은 1인 2인도 3인 기준을 사용해왔었다. 그러므로 한 동안 1인 가구 젊은이 들도 당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1,2인 가구 소득이 생김으로 조금 더 타이트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내가 이용한 제도에 들어오신 신혼부부들은 3인 가구 소득을 적용받았었기 때문에 계약서에서 말한 2인 가구보다 소득이 높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원래는 이번에 할증을 세게 맞으실 뻔한 건데, 이번과 다음번 재계약까지는 종전 기준을 적용해 주겠다는 말이다. 즉 6년은 보장을 해준다는 말이니, 나름의 배려를 했다고 보인다. SH는 집주인으로서 멋진 편이다. 특히 재계약 시 말이다. 왜냐하면 통보받은 금액은 정확히 5%였다. 보증금은 700만 원 월세는 2만 원만 올려달라는 젠틀한 집주인님이시다.
이사를 나가면서 이제 일반 전월세 물건을 찾아보았고 8월 이사지만 빠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에 조금 이른 5월에 계약을 했다. 월세로 계약을 했는데 물론 그때도 지금 이용료에 비하면 큰돈을 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올여름 지속적으로 부동산 정책이 손봐지면서 정말 전월세 폭등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내가 5월에 계약한 집의 지금 시세는 내가 낸 보증금보다 2억이 더 올랐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내 머리가 아니라 시장이 판단하겠지 싶다. 사실 임대주택 제도에서는 자유 해지만, 한편으로는 분양을 받아 1 주택이 될 사람으로서 경제뉴스에서는 자유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 매일 출근길마다 업데이트되는 부동산 뉴스를 이해하고 뭔가 대처해야 하는 것이 있나 늘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1인, 2인 가구 소득 기준 신설 외에는 소득 기준이 자꾸 위로 완화되어 가는 임대주택이라는 제도의 가장 큰 기준점은 유주택이냐 무주택이냐가 된다. 물론 당장 집을 매매하시는 경우는 거주하시려고 사시게 되는 경우가 많을 테니 자진 퇴거를 하게 되는 것이고, 분양권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바로 즉시 퇴거는 아니다. 우리 가정이 이 제도에 들어올 때 2년 전에는 분양권이 있어도 들어올 수 있었고 그 집을 짓고 있는 동안에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위에 쓰여 있는 것처럼 2018년 12월 11일 이후에 분양권을 소유한 경우에는 재계약이 안 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SH공사에서 받은 마지막 편지에서 본 신선한 양식이다. 새로 생긴 서약서 인 듯하다. 음, 물론 맞는 말인데 서약서라고 하니 뭔가 굉장히 무거운 느낌의 족쇄같이 느껴지는 건 뭘까. 사실 소득조회는 2년에 한 번만 하지만, 주택 소유 여부는 6개월마다 한 번 씩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여하튼 재계약을 하고 바로 유주택이 되는 경우 사실 조회해서 적발될 때 까지는 살 수 있다는 악용사례들 때문에 자진명도 하고 퇴거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가 생겼나 싶다.
이게 나의 임대주택 마지막 포스팅이 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임대주택 제도에 대한 편견을 깨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필요한 분들에게는 정보가 제공되길 바라며 글을 쓰기 시작했던 초심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임대주택 이용자들을 향한 편견을 버려달라는 이야기는 모래보다 가볍게 묻혀버렸지만, 이렇게 퇴거를 맞이하면서 더 이상 내가 말하게 될 당위성이나 진심들은 얕아져 가겠지만, 모두 집에 대한 마음, 그 간절함이 같다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집 가격이 폭등하고 정치판에 뜨거운 감자가 되어 매일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정작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살고 싶은 것뿐이다. 다들 지금 당장이 아닐 지라도 언젠가 우리 집에 살고 싶은 것이다.
지난 7년의 동안 장기안심, 국민임대, 장기전세, 행복주택까지 이용을 했고, 임대주택을 졸업한다. 임대주택 대기자 중복 불가라는 정책이 나오면서 한 동안 나 때문인가 라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다. 한 제도를 이용하면 다른 제도 이용은 어렵게 된 상황인 걸로 보인다. 내가 책을 통해 말한 것이 이런 사례가 나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임대주택 제도의 중복수혜라던가 여러 사람이 혜택을 봐야 한다는 논리로 바라보면 한 번 들어간 사람은 그 제도에 평생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소득이 늘어감에 따라 더 많이 벌어도 퇴거할 준비가 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제도, 그 안전망을 찾아 옮겨야 하는 생존에 공감이 어려울까? 이용자가 이 제도를 이용하려는 이유가 조금 더 깊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누구보다 이 제도들이 존재함에 감사했고 감사한다.
내가 집에 담겨야 할까? 집이 나에게 담겨야 할까?
모두의 이사의 이유는 다 다르고, 그 이사를 통해 각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나에게는 그게 우리 가족이다. 우리 가족을 지키는데 힘이 돼 준 지나온 우리 집. 끝까지 깨끗하게 쓰고 반납하고 가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