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단 첫 책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실패한 내 마음

by 스테이시

나의 첫 책은 부동산 코너에 위치해 있었다. 아직도 교보문고에 가면 아이들이 저기 엄마 책도 있지 라고 물어보지만 매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걸이라는 말 대신 미소를 한 번 짓고 만다. 요즘 애들의 내 집 마련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았지만 한 마디로 대한민국 임대주택 제도를 왜 이용했고, 어떻게 이용했으며, 이렇게 졸업하게 되었다. 이용자로서 애정을 담아 한 마디만 하자면 임대주택 제도가 대한민국 같은 부동산 상황에서 이렇게 이용되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담겨있었다.


출판사에서는 생소한 소재의 투고를 받아 주신 만큼 베스트셀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크셨고, 나는 그런 작가적 욕심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한민국 주거복지제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책을 내고 나서 라디오에 한 번 출연했는데 진행자 분께서 나 같은 사람이 서울 주택도시공사 직원을 해야 하지 않냐고 하셨는데, 사실 그런 자리보다 무언가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에 젊은이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아무도 주지 않은 무게감이 가득했다.


사실 낯선 소재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기대는 쉽게 접을 수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처절하게 실패한 것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 발버둥 치며 사는 젊은이의 외침을 조금이나마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라는 것이었다. 그 책은 임대주택이 인기 있어 지길 바라며 쓴 것도 아니었고, 임대주택에 살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만 내 집 마련이라는 인생 과제를 누구도 외면할 수 없기에 1 주택을 구입하려는 분들의 관점으로 그 결정하게 된 과정에 대해 쓴 에세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 이후 책은 심폐소생술을 못했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는 주거정책들이 나오길 기대하며 공기업의 시민 활동에 참여하려고 애를 썼다. 여러 참여활동을 생업에 매여 잘 참여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나마 다니면서 느꼈던 건, 내가 이미 위에서 설정한 정책들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허황된 꿈이었다는 것이다. 관련 주제 책 하나 낸 걸로 내가 뭐라고 정책을 논할 수 있겠냐 만은 결국 입을 열기를 포기해 버린 대가일까? 연일 신고가 행진이라는 부동산 뉴스를 보며 현기증을 느끼고, 매일 바뀌는 대출 규정에 신음하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있다.


어느 날은 신혼부부로 인천에 청약이 당첨되어 좋아했던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인천이 투기지역이 되면서 대출이 60%에서 40%로 줄어들어 머리가 아프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는 정책 발표일 전에 한 계약은 대출을 보장해준다고 하나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라며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내가 뉴스 기사를 쓰고 있는 거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쓰고 있는 것이 가상의 인물이 아닌 내 친구 이야기다. 정책이 너무 자주 많이 바뀌다 보니 세무사들도 부동산 세법에 손을 뗀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 또 뭐가 나왔으니 잘 모르면 불이익이 된다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시도 때도 없이 부동산 동향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렵다. 이게 이렇게 인생에 중요한 것이었나? 부동산이 유일한 길이라며 더 열을 내는 것과 아예 살 수 없는 안드로메다 가격이라고 포기해 버리는 것, 둘 다 부동산이라는 냄비에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메인에 걸려 있는 부동산 뉴스들은 내가 어느 포지션이든 간에 나를 패배자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집이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분류돼야 할까? 사람을 그렇게 두 그룹으로 나눠야 될까? 두 종류로 분류를 해야 한다면, 솔직한 사람과 덜 솔직한 사람으로만 나눠야 하나?


우리 아버지께서는 공직자로 은퇴하셨는데, 정확히 말하면 개발지 정보에 관여하시는 일을 하셨다. 즉, 어디를 사면 돈이 되는지 아는 분이셨는데 공직자는 그런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따라 살아오셨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이상적인 사회를 실천하시려는 아버지를 참 닮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나도 아빠처럼 살아야지 라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나 싶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공직자는 아니니까 아니 공직자여도 욕망에 충실한 분들도 많은데 나 같은 사람 하나 정도 더 고상하게 사는 걸 포기한다고 사회가 더 어지러워 지진 않겠지 라는 씁쓸한 웃음도 추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과 손을 잡고 집을 사기로 결정한 나는 집 가격이 올라가는 걸 보면 그때 안 샀으면 어땠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존경했던 아빠의 신념을 따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가시를 안고 산다. 2년 전 선비처럼 살지 말고 차라리 욕망을 들어내자 라며 집을 분양받은 나의 민 낯과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 것 같이 조급 해진 친구들의 아우성을 마주할 때, 나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하지 않은 것뿐인가? 졸지에 집값이 올라버린 사람도 불안하고 집을 아직 사지 않은 사람도 불안하다면, 전 국민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실패한 것일까?

얼마 전 아이들과 부루마블을 하는데 6살 조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서울을 꼭 사야지 이기는 거라고 했다는데 다른 플레이어가 서울을 사버린 것이다. 허허허, 그 뒤로 아이들은 게임을 할 때마다 누가 서울을 갖느냐는 것이 게임에 거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카가 들은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참 교육일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을 하다 가도 못내 씁쓸한 건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치기라도 하면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해도 덜 부끄러워지는 건가 싶다. 내 집을 갖게 되면 사람 노릇 하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얼마나 이 땅에 집착하게 되어 버린 건가 싶어 때로는 집을 얻고 꿈을 잃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것 말고 더 지불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내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았던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 빨간 약을 삼킨 상황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런 부동산 폭등기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15년 전쯤에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재계약 시점이 되니까 집 값이 엄청 오른 것이다. 그때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지나다니면 보이는 매매, 전세 가격표가 어찌나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던지 정말 안 본 눈 삽니다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놀랍게도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가 그랬는지 우리 동네가 그랬는지 창 밖으로 가격을 보이게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례가 생겨서 한 동안 어디서나 보이던 그 숫자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고, 나는 그것 만으로 행복했다. 파란 약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때 빨간 약을 선택했다면 지금 보다 쉬웠을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몰랐으면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내 책은 철저히 실패했는데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살아서 따라다닌다. 누구에게 미안 한 건지 정확히 규정을 못하겠으나, 정말로 미안하다. 내 책 실패 하나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집 주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