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지켜지는 추억
뭉뚝한 색연필을 깎으면서
두꺼운 색연필이 뭉뚝해졌다. 얼추 봐도 연필 깎기에는 들어가지 않을 사이즈였다. 아이들이 오기 전, 하얀 종이를 펴고 커터칼을 들자 원어민 파트너가 다가온다.
" 두꺼운 연필도 깎을 수 있는 연필 깎기 다른 교실에 있을 텐데 찾아줄까?"
0.1초의 찰나였다.
"아냐, 손으로 깎아볼게.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거든."
요즘은 상상조차 못 했던 기계들이 존재해서 연필 깎기 따위는 기계라고 할 수 조차 없지만, 왠지 연필 깎기에게 이 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20여 년 만에 커터칼을 색연필에 대는 순간 크기가 제각각인 가루가 떨어졌다. 마치 요정이 와서 가루를 털어놓고 간 것 같다는 느낌에 잠시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맞아. 공부하기 싫을 때, 쓸만한 연필들도 깎고 또 깎고 그랬었지. 커팅이 끝나고 끝이 여전히 뭉뚝하지만 심이 모습을 드러낸 색연필로 선을 그어보았다.
연필 깎기에 들어 있는 찌꺼기를 버릴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하얀 종이 위의 가루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가, 또 만나자. 그때 그 시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