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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Aug 08. 2020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지켜지는 추억

뭉뚝한 색연필을 깎으면서

두꺼운 색연필이 뭉뚝해졌다. 얼추 봐도 연필 깎기에는 들어가지 않을 사이즈였다. 아이들이 오기 전, 하얀 종이를 펴고 커터칼을 들자 원어민 파트너가 다가온다.


" 두꺼운 연필도 깎을 수 있는 연필 깎기 다른 교실에 있을 텐데 찾아줄까?"


0.1초의 찰나였다.


"아냐, 손으로 깎아볼게.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거든."


요즘은 상상조차 못 했던 기계들이 존재해서  연필 깎기 따위는 기계라고 할 수 조차 없지만, 왠지 연필 깎기에게 이 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20여 년 만에 커터칼을 색연필에 대는 순간 크기가 제각각인 가루가 떨어졌다. 마치 요정이 와서 가루를 털어놓고 간 것 같다는 느낌에 잠시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맞아. 공부하기 싫을 때, 쓸만한 연필들도 깎고 또 깎고 그랬었지. 커팅이 끝나고 끝이 여전히 뭉뚝하지만 심이 모습을 드러낸 색연필로 선을 그어보았다.


연필 깎기에 들어 있는 찌꺼기를 버릴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하얀 종이 위의 가루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가, 또 만나자. 그때 그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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