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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Mar 13. 2021

글쓰기는 투잡인가요?

너무 오랜만에 글을 써서 자판에 다가가는 손가락의 초당 스피드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 글쓰기를 아마 책 읽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 같지만, 자주 하지 못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글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탓이다. 호기롭게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서로를 더 이해해 주는 곳으로 바꾸고 싶다고 시작한 글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심지어 비난의 여지가 될 때 창작자의 후회는 실로 깊다.


"아, 쓰지 말았어야 했나?"


이 고민이 "쓰고 싶다. " 보다 진하기에, 글을 쓴다는 것에 아주 많은 잠금장치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부러 오래된 노트북을 고수하면서 가끔은 인터넷이 느리다는 핑계도 해보고, 브런치 앱도 꺼놓기도 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거 너무 큰 사치로 비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애를 쓴다. 이런, 바보가 따로 없다.


시간이 벌써 꽤 흘렀고, 발표된 브런치 북과 연계해서 후속작업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 또한 하나씩 중계하듯 전하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어느 날 빵 터드리듯 공개하려는 것은 참 못난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내 브런치를 소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댓글에 영어유치원 교사가 퇴근 후 이중 직업을 가지면 안 되지 않냐는 일종의 타박성 글도 있었다. 음,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너무 내 유리한 쪽으로 빠져나갔나?


글을 씁니다.


이것이 투잡인가? 많은 분들이 퇴근 후 유튜버를 하는 세상에, 학원강사가 글을 쓰는 것 혹은 그게 책을 되는 것이 당연히 불법은 아니지만, 투 잡(?)을 위해 본 업(?)에 에너지를 풀로 쏟지 않는 사람으로 비춘다는 뜻인가. 허허허.  개인 수익성이 아니면 된다고 할 수도 있으니, 글을 쓰는 것이 개인 수익성을 쫒는 일인가 돌아본다면, 글 쓰는 사람이야 진심으로  말하지 않으면 칠 것 같아서 쓸지라도 외부에서 훅 한 번 보기엔,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라고 읽힐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글을 쓴다. 최근에 만났던 출판사 대표님께


"아니 근데 어떻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을 이렇게나 쓰게 되신 거예요?"


라고 물어보시길래


"아, 그런 시점이 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수도꼭지 튼 것처럼 글이 쏟아져요. "


그렇다. 나는 글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발표하는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신중하다는 단어를 애정 한다. 그래서 글을 써놓고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보는 것은 맞춤법이 아니라, 이 글의 날이 사람을 향해 있지 않나 돌아본다. 글이 내 직업이 아니라 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내가 밝을 때 다니는 회사와 어두워질 때 컴퓨터와 하는 일 두 개 다, 내 직업으로 소개되고 픽스하는 것에 조금의 아니,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 내 직업이 영어유치원 교사로 평생 픽스된 것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찾는 하이에나 작가도 아니 기에, 자기소개는 늘 어렵다.


그냥 말을 잘 못해서 글을 씁니다 정도면 나를 잘 소개하는 글인 것 같은데, 이 또한 자유하지 못하는 것이 학원강사인데 말을 못 하면 왜 그 직업을 합니까 할까 봐 브런치 자기소개에 저 멘트를 몇 번 썼다가 지운적도 있다. 올해 새로운 시작한 업무의 바운더리가 달라졌는데, 아 이걸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답이 새롭지 않은 것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답게 하는 것


억울해도 답답해도 슬퍼도 기뻐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 버리면 곧 날아가버리니, 요리조리 돌을 돌려가며 정제를 한다. 곧 벽돌 하나로 만들어서 이내 쌓여있던 곳에 한 장을 얹는다. 그럴 때, 내 마음은 더 튼튼해져 가지.


이렇게 글을 쓴다. 직업이 뭐예요 물어보면, 나도 모른다.


인생에 이 시기에는 이런 회사를 다니고 있고, 계속 글을 쓰려는 DNA의 보유자입니다. 작가라는 칭호가 필요했다기보다는 이왕 심사숙고해서 쓰게 된 글이 많이 읽히게 되려면 책이 출판돼야 하기에, 작가도 거쳐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혹은 고물 키보드가 주는 타이핑 감이 좋아서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버사진:  생각정리기획력 by 복주환님 카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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