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알리미가 도착했다. 학급 임원선거라는 제목만 보고 본문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분명 나를 닮은 왕소심 딸내미께서 그런 것을 할 턱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만가지 일을 벌여서 세상 바쁘게 사는 인간으로서 행여나 그럴 리 없지만 이 녀석이 임원이 돼서 내가 학교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와서 딸내미에게
"임원선거한다며?"
물으니 딸내미는 학교에서 친구들 모두의 중심 화제가 그거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누구는 엄마가 꼭 나가야 한다고 했다고 하고 누가 누가 나가고 싶다고 했단다.
"너는 하고 싶은 생각 없어?"
정말 예의상 물어보았다.
선생님께서 회장이 되면 학원에 못 가고 학교에 남아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면서 자기는 지금은 학원에 빠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하하하. 일단 여기서 빵 터졌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뭐든 따르려는 녀석에게는 학교 선생님 말씀만큼이나 빠지지 말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도 중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임원선거는 지난 간 일이 되는 줄 알았는데,
어제 가족 단톡 방에 우리 엄마가 아이를 찾았다며 메시지를 남기셨다.
"00 이가 부회장 선거 최종에서 4표 차이로 떨어졌단다. 그래도 도전한 것이 멋지다고 칭찬해줬다."
하하하. 분명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어찌 된 걸까 싶었다. 엄마의 멘트는 이어졌다.
"회장 선거에 나온 아이가 발표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단다. "
라는 톡까지 받고 "제가 부회장이 되면, 우리 반을......"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려져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이가 첫 도전에 실패를 해서 낙담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 보다 당선이 안돼서 학교에서 활동을 안 해도 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든 못난 엄마이기도 했다. 참, 이 녀석이 뭘 몰라서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들던 찰나에 엄마의 마지막 톡이 왔다.
"그래도 00은 용감하다. 너네보다 낫다."
가족 단톡이었기에 우리는 모두 "ㅋㅋㅋ"을 연발했다. 엄마 말이 맞다. 내 딸내미가 나보다 낫다. 나랑 내 동생은 왕소심해서 그 나이에 도전하기보다는 마음만 썩어냈는데 말이다. 이 녀석은 지난 학기에 전학 오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그마저도 몇 번 안 가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면서 덜컥 임원선거에 나갔다니, 더 놀라운 건 상당한 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친구들이 왜 너를 찍었을까"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녀석은 부회장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만큼이나 선거에 참여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서,
좋은 경험으로 남기자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제 좋은 경험을 했으니, 다시 안 할 거지?"
라는 나에게 그녀는 반전을 선사했다.
"아니 엄마 2학기 때 다시 도전할 건데. "
"아, 그래...... 그렇구나. 근데 나간 김에 왜 회장은 안 나가고 부회장 나간 거야?"
"응, 회장은 학원 못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영어학원은 가고 싶어서."
하하하.
회장이나 부회장이나 역할이 같은 건데,
선생님이 회장이 되면 이라고 이야기하신 것에 너무 귀를 기울이신 딸내미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체육부장을 뽑는단다.
허허허, 당선 수기는 언제쯤 들어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