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을 갖고 싶다.

by 스테이시

새로운 시대가 왔단다. 더 이상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면 안 되는 사회가 도래했단다.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져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가치관도 손보아야 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변화라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거부할 생각도 없다. 변화의 흐름이라는 파도는 힘겹지만 때로는 즐겁게 서핑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변화는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는 유행이라 하는 외적인 부분부터 대중의 심리, 개인의 마음과 생각까지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손댈 수 없는 바뀌어지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본능이라는 영역일 것이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배고픈 것이 건강에 좋은 것이니 참으라 라고 말한다면? 어떤 아이가 키가 커서 옷이 작아졌다면, 그래도 너는 옷이 있으니까 새 것을 살 생각은 하지 마 라고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의, 식, 주를 이야기한다. 위에서 옷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럼 본능이자 기본적 욕망에 속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집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집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니 참으라 라고 이야기한다면? 가족이 늘어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이 있는 것이 어디냐 더 넓은 것을 살 생각하지도 마 라고 이야기한다면?


한 마디로 이상하다.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본능은 바꿀 수 없다. 사람이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은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을 때부터 생긴 문화이거나 갑자기 집 가격이 급등한 요즘 들어 생긴 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밖을 보니 잎이 하나도 남지 않은 나무에 새 집이 보인다. 새 두 마리는 새 집을 짓기로 자신들의 집을 갖기로 결정했다. 아니 필요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가 틀림없다. 하물며 새들도 가족이 생기면 집부터 갖으려고 하는데, 인간은 왜 아니 그러겠는가?


우리는 집을 갖고 싶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면 보수화가 된다라고들 흔히 말하더라. 보수라는 말에 색이 너무 바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발표한 글들은 그대로 인터넷에 남아있고, 심지어는 프린트되어 책으로도 나와 있으니 그것들은 내가 어느 정치색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나는 정치가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는 일인 줄 알았다. 사십이 다되도록 너무 순진했나 보다. 그래서 정치라는 옷을 입지 않고도 무언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고 임대주택에 대한 책을 쓰려는 결단을 했었다.


임대 주택을 졸업해서 내 집 마련을 한 이야기에 관한 책을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여기저기 관련 공직자들에게 건네기도 했었다. 임대주택 이용자들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임대주택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잠재적인 내 집 마련의 수요자 들입니다. 임대주택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서 내 집 마련의 본능은 줄어들 수 없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했거나, 너무 책이 두꺼워서 아무도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안 읽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정부의 주택정책을 정확하게 거슬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저기서 "임대주택에 들어가라. 중산층도 들어가라."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집이 없어도 살만한 세상이 온다."라는 것을 믿으라고 한다. 음, 나는 임대주택을 7년 이용하고 졸업한 사람으로서 임대주택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이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 않나 싶다. 임대주택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사회에 임대주택이 존재하느냐 라는 것이다.


임대주택이 매력적인 제도라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아닌 매력적인 선택지 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오죽하면 한 참 장기전세를 준비할 때 들었던 말인데 그때 유행하던 가요 가사를 따서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가 임대주택이라는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10년, 20년 길게는 30년을 살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임대주택에 살면서 돈을 모으면 된다? 는 이야기는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이다. 임대주택에 가장 큰 약점은 일정 소득이 초과되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맞벌이가 되면 거주가 어려워지는데, 그럴 때 지금 거주지를 포기하겠는가, 맞벌이를 포기하겠는가? 미친 결단력이 아니고는 후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케이스는 일부러 소득을 낮게 신고해서 살고 있었는데 막상 대출받아 집을 살려고 하니 소득이 낮게 신고돼서 대출이 다 안 나온단다. 아, 이거 참 진퇴양난이다.


그리하여 임대주택을 선택= 집을 사지 않겠다 라는 뜻이 아니다. 집을 지금 당장 못 사니 조금 미루겠다 정도 일 수 있겠다. 임대주택에 7년을 살면서 집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었다. 심지어 그 집들은 서울에 초역세권 방 3개, 화장실 2개의 신축 아파트였으며, 기간은 30년, 20년을 보장하는 제도였는데도 나는 매일 걱정이 되었다. 집은 언제 살 수 있지? 애들이 크면 어떻게 하지? 국민임대 제도를 이용할 때는 재계약 시 2번이나 보증금 인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에 감사하면서 불안했다. 내가 돈을 못 벌어서 불안했다기보다는 물가가 오를 경우, 이 가만히 있는 보증금으로 임대주택 졸업 후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컸다.


나는 임대주택에 대한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내가 졸업하고 1 주택자가 된 이상 어떤 말을 해도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뉴스에서 높으신 분들이 임대주택에 대해서 한 마디 할 때 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었으나 정말 백 번은 참은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글 하나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 라는 마음에 그냥 직장일에 몰두했다. 그런데 둑이 차면 넘치기 마련인 것 같다. 임대주택은 내 고향 같은 곳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가족이 미칠 듯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큰 도움이 된 제도였고, 내가 임대주택 이용을 선택했었던 것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내 집 마련에 (자발적, 비자발적) 포기한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선택한다고 오해하지 말아주길.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임대주택이다.


정부의 반대쪽에 서신 분 중에서는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고 입장을 내신 분도 있던데,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 줄은 알겠다. 정책을 낸 분이 솔선수범을 해서 집 없어도 살기 좋은 사회를 증명하라는 뜻으로 하신 이야기 인 줄은 알겠으나, 공공임대를 가기 싫은 곳으로 보는 프레임은 여전히 같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임대주택은 언론에서 통칭해서 말할 정도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도 제도를 연구하던 것을 1년 넘게 멈춰서 수 없이 변해 버린 제도를 다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어느 제도를 이용하든 간에 거주자들은 대부분 내 집 마련의 대기자이다.


언론에서 보면 높은 분들은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빈 집에 가서 둘러보시고 충분히 좋네요 라고 하시지만, 충분히 좋은지는 이용자들이 판단하게 두면 된다. 공고를 내 보면 얼마나 수요가 있는지 명백하다. 옛날에는 의, 식, 주로서의 역할만 하면 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의, 식, 주 앞에 형용사가 조금 필요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렇게 해주는 게 어디야 라는 말은 맞으나 조금 슬프다. 그중 가장 슬픈 것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것이 나쁜 일인 것처럼 묘사된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 이 네 글자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대한민국을 일으킨 힘이다.


대한민국이 몇 만불 수출을 하고 그런 애국심에 열심히 사는 어르신들도 계셨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가족을 보호할 집 하나를 가지려고 애를 쓰며 사셨다. 내 집 마련은 목표이자,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본능이었고 인생의 결과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오늘도 뉴스에 엉뚱하게 끌려 나와서 매를 맞고 있는 임대주택이라는 단어를 보니 한편에 안쓰러운 마음이 시큼하게 든다.


우리는 집을 갖고 싶은 것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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