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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Apr 09. 2021

원고를 넘기다

몇 년 동안 1년을 시작하는 단위가 3월인 일을 하다 보니, 나에게는 2월이 가장 절실한 달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찌 보면 간절했던 겨울을 지나 2월이 되면 어느 정도 포기가 되었던 패턴이 반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하는 일의 특성상 3월에 요이땅 1년 계약이 시작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형태이다. 음, 그만둘 수 없는 건 없을지도 르겠지만, 중간에 그만두는 건 이 업계 일을 다시 안 하겠다는 정리까지 되었을 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지난 친 책임감과 직업의식에서 나온 나의 오버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렇게 3월을 맞이하기까지의 매년 진통은 몇 해 간 반복되었다.


"1년만 더 해보자."


라는 간단해 보이지만 수많은 엑셀 로직이 걸린 간단하지 않을 말로, 시답잖은 파이팅을 해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이해가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무례한 걸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힘 빼'라고 해주는 사람이 더 고마울 정도라면 조금 웃플까. 3월이 지나면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열린다. 마치 게임에서 한 단계를 클리어하면 다음 판이 열리 듯, 한 달 한 달 쓸 수 있는 단어 선택이 늘어나는 것이 보상일지도 모른다.


"12분의 1일 지나갔어."


4월이 끝나면 이 계약의 6분의 1이 지나갔다고 말하며 조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까?

전쟁 같았던 3월도, 휴전 같은 4월도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할 겨울까지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돼 준 한 가지는 2월에 있었던 출판 계약 건 덕분이다. 첫 번째 책도 2월에 계약을 했는데 두 번째 책도 2월에 계약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안 이 직업을 하면서, 이번 12개월짜리 계약이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 시작해야 되는 2월 말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겉에서 보기에는 월급이 올라서, 승진해서 견딜만해 보일 수도 있겠다만 가끔은 내가 자리를 잡으려고 퍼포먼스를 높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과업을 클리어하고 졸업하려고 열 일한 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사지로 걸어갈 준비를 하는 2월에 이뤄진 책 계약은 나를 자유케 한 것이 아니라, 책이 나올 때 진실성을 증명해야 된다는 자기 기준으로 나 스스로가 나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첫 책을 출간하고 다시는 책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또 책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다만 첫 책의 물리적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제목을 잘 못 지었다는 말을 뼈 아프게 들어서 일까, 다시 책을 내면 제목을 Straight forward 하게 지어보리라 다짐을 했던 것 같다. 혹자는 책 내는 것이 좋지 않냐고 하는데, 놀이터에서 신난 아이 같은 혹은 공모전 당선된 것 같은 기쁨은 아니고 출판사와 일하는 프로세스가 나름 내가 태어나서 해본 일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다는 것 하나와 이 글이 지닐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무게가 공존한다.


자유를 꿈꾸며 글을 쓰는데, 글을 쓰는 순간은 자유할지 언정 글을 출산하고 나면 전혀 자유롭지 않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요, 나 스스로 내가 써놓은 말들에 대해 지켜내고 진실성을 더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이랄까. 내가 써놓은 글을 나에게 들이대며 네가 이렇게 살아냈냐 라고 말하면, 말한 대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답하겠지만 백 퍼센트 완벽하지는 당연히 못했을 것이다. 이런것이 인간미라는 걸까. 변명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기에 뱉어 놓은 글 이상으로 살아보려 또 애를 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출판 프로젝트는 읽어도 읽어도 계속 수정하고 싶은 것이 나왔다. 계약서를 쓰고 한 달이 지나 첫 번째 정리된 원고를 보냈다. 이번에는 원고 투고가 아니라 먼저 제안을 주신 것이라서 덜 떨릴 줄 알았는데, 원고 전문을 보내고 나니 또 긴장하고 있다. 읽어보니 재미없네요 하면 어쩌지 하고 말이다. 칭찬이라는 것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일까, 받을 줄 모르는 걸까. 혼날 걱정만 한다.


가족들은 첫 책을 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삶을 보며, 책을 낸다는 것이 별거 아닌 걸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안 좋은 예를 양산해 낸 건가 죄송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다시 꿈을 꾸고 싶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달라진다는 것은 부자가 된다거나 그런 걸지 모르겠으나, 나는  죽을 때까지 앞으로는 여러 가지 직업을 하게 된다는 사회에서 이 개념을 찾는 것이 우습겠으나 확고한 정체성이 찾고 싶다.


글을 목적을 가지고 쓰지 않고, 그냥 글을 써도 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런 꿈을 꾸다가도 나는 이내 회사에 다니는 나를 발견하며 좌절 하기를 반복했다. 글을 쓸 때 글을 읽을 때 행복하다는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노동으로 잊힐 때쯤 나는 잊지 말아야 해 꿈을 잊지 말아야 해 라며 나 자신의 뺨을 때려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의 원고를 넘기고, 이제 뻔뻔하게 세 번째 책을 꿈을 꾼다. 두 번째 책 원고 폴더를 열어보니 2019년에 첫 번째 책을 마친 직후에 만들어 놓은 제목이더라. 그때는 제목밖에 없었는데 2년 만에 구체화되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 책을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유튜버가 되는 걸지도 모른다. 첫 출판사 스텝께서 하신 말씀처럼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썼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라는 말처럼. 일단 유명한 사람이 낸 책이 팔린다는데, 유튜브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의 글이 선택받았다는 것만으로 참 감사할 사유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옆에서 내가 12개월짜리 계약이 얼마 남았으며 얼마나 버티면 되는지 카운팅 하는 걸 보면서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문득 선물이라고 박스를 내밀었다. 내가 이건 또 무슨 택배냐고 구박한 그 박스가 틀림없다. 마우스라고 박스에 있길래, 무선 마우스 인가보다 했는데 이게 곧 돌아오는 결혼 10주년 선물이란다.


어, 저기 친구 그러기엔 너무 작은 거 아니니 하고 대답하니 스스로 셀프 언박싱을 하신다. 그 박스 안에서 나온 것은 새 노트북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3번째 노트북을 맞이하게 된 순간이었다.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노트북을 구매했었고, 이제 또 십 년이 지나 새로운 노트북을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도 글을 쓰길 바란다며, 선물이란다.


아, 감동해야 되는 순간이다. 그렇기가 쉽지 않았다.

'저기, 남편, 이걸 살 돈이 어디서 나왔니?'라는 질문이 앞서는 걸 보니 나는 감성 충만 에세이를 쓰긴 그른 것 같다. 늘 검은색 노트북을 썼는데, 처음으로 새 하얀 노트북을 쓰게 되었다. 이제 나와 대학원 생활 5년을 같이 뛰어주고 책 2권을 완성하도록 함께 해준 이 노트북을 딸에게 하사하려고 한다. 꿈이 동화작가라는 딸내미가 첫 동화를 쓸 때까지 함께 하고 은퇴를 하길 노트북을 응원하는 마음을 품어본다.


이제 곧 저 새 하얀 노트북에 zoom 어플을 깔고, 회사 회의 때 쓰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전에 또 폴더를 하나 생성하려고 한다. 가제는 창작자의 특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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